전두환 전 대통령 일가가 추징금 자진납부에 대한 의견이 갈리고 있다. 장남 전재국 씨(왼쪽)와 차남 전재용 씨. 사진제공=우먼센스,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전 씨의 한 측근은 “친인척 구속이라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했는데 평정심을 유지하긴 힘들 것이다. 이 씨의 구속으로 이순자 여사가 상당한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것으로 안다. 재산 압류에 바깥 활동도 제대로 못한 채 벌써 한 달이 넘도록 검찰의 수사를 받고 있으니 지치는 게 당연한 것 아니겠느냐. 이로 인해 자진납부라도 해서 빨리 사태를 마무리 짓고 싶은 기색을 조금씩 내비치는 등 심경의 변화가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정말 지쳤기 때문일까. 앞서의 전 씨 측근의 말에 따르면 수사 초기와 달리 전 씨 일가의 태도에 실제로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고 한다. 한바탕 검찰의 압수수색이 있은 뒤에도 전 씨 일가는 가족회의를 통해 자진납부를 거부하며 “뒤져서 찾아가라. 내고 싶어도 재산이 없다. 한두 명 구속되는 것쯤은 감수할 것”이라며 강경한 입장을 나타낸 바 있다. 하지만 검찰은 전 씨 일가의 예상보다 한 발 앞서 움직였다. 검찰은 지난달 22일 이순자 여사의 30억 원의 연금예금을 압류해 현금 줄을 끊어놓더니 매매가 끝나 이미 전 씨 일가의 손을 떠난 부동산까지 손아귀에 넣었다. 또한 이창석 씨에서 끝날 것으로 보였던 검찰의 수사가 전두환 씨 누나 아들인 이재홍 씨(57) 등 친인척에게까지 전방위로 이어지는 등 숨 쉴 틈 없이 몰아치자 내부에서도 “한 발짝 물러서야 한다”는 목소리가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는 것. 한때 전 씨 일가 측에서 “조만간 가족회의를 통해 일부 자진납부를 결정하겠다”는 뜻을 검찰에 전했다는 말도 나왔으나 이는 사실이 아닌 것으로 확인됐다.
이처럼 검찰 수사 한 달여 만에 일단 자세를 낮춘 전 씨 일가지만 당장 현실적인 행동은 불가능할 것으로 보인다. 가족 내부에서도 자진납부를 두고 의견이 갈리고 있기 때문인데 특히 장남 재국 씨(53)가 ‘결사반대’를 외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진다. 한 법조계 관계자는 “압수수색을 할 때만 하더라도 전 씨 일가의 표정은 여유로웠다. 이를 두고 전 씨의 인맥으로 어떤 거래가 있었을 것이란 말도 나왔지만 지금은 쏙 들어갔다. 온갖 카드를 다 꺼냈는데도 생각처럼 검찰이 움직여주지 않자 이제야 진짜 대책을 찾고 있는 듯하다. 처음엔 하나로 움직이던 전 씨 일가가 이젠 따로 대응책을 마련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누구 한 사람이 희생하면 피해가 최소화될 텐데 그런 모습은 전혀 없다”고 말했다.
실제 장남 재국 씨는 가족들과 함께 대응하던 기존의 태도를 버리고 개인 변호사를 선임하는 등 홀로 제 살길을 찾는 모양새다. 평소 재국 씨는 자신이 자수성가했다는 인식이 강해 아버지의 추징금 대납에 대해 강한 거부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또한 모든 재산이 사업과 연관돼 있는 데다 최근 경영사정이 악화돼 자진납부를 할 수 있는 능력이 되지 않는다는 말도 자주 한 것으로 전해지는데 이런 것들이 독자적인 대응을 선택한 배경으로 거론되고 있다.
124억 원의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처남 이창석 씨가 8월 19일 서울중앙지검에서 서울구치소로 향하고 있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반면 차남 재용 씨는 입장이 다르다. 또 다른 법조계 관계자는 “이창석 씨가 구속된 만큼 다음 소환 대상자는 차남 재용 씨가 아니겠느냐. 이 씨와 직접 부동산 거래를 한 데다 이를 통해 이득을 취한 것도 재용 씨이기에 검찰 소환을 피해갈 순 없을 것”이라며 “현재 검찰은 이창석 씨가 소유했던 오산 땅을 이번 추징금 환수에 있어 핵심 물건으로 보고 이에 대해 집중조사를 벌이고 있다. 400억 원에 이르는 오산 땅만큼 가치 있는 재산을 찾기가 힘들어 쉽게 넘어가진 않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한 그는 “검찰이 추징금 환수팀에서 수사팀으로 전환했다는 것 자체가 무언가 ‘건수’를 잡았다는 뜻이다. 곧장 이 씨를 구속한 것으로 봐서 만약 재용 씨가 검찰의 수사를 받으면 쉽게 풀려나진 못할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4년에도 한 차례 구속된 전력이 있는 재용 씨 입장에서는 돌아가는 상황이 자신에게 불리함을 느끼고 자진납부라도 해서 하루빨리 지금 상황을 벗어나고 싶은 심정일 것”이라며 “재국 씨는 해외재산도피 및 역외탈세 혐의를 받고 있는데 이 경우 혐의입증에 시간이 많이 걸리고 형사책임을 묻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재용 씨는 조세포탈 등 이미 혐의점이 드러나 있기 때문에 구속은 재용 씨가 먼저 될 가능성이 있다. 그래서 재용 씨가 더욱 자진납부 등의 정치적 해결에 매달리는지도 모른다”라고 설명했다.
이런 이유 때문에 일각에서는 전 씨 일가의 형제들이 자진납부 등을 둘러싸고 내분에 휩싸일 가능성도 있다고 주장한다. 장남 재국 씨는 추징금 환수의 주체로 이번 사건의 핵심이긴 하지만 법적 처리가 쉽지 않은 반면, 재용 씨는 사법처리 1순위로 떠오르고 있다. 이 때문에 재국 씨 입장에선 시간을 끌면서 끝까지 항전하는 것이 유리한 반면, 재용 씨 입장에선 당장의 사법처리를 피하기 위해서라도 자진납부 등의 대책을 빨리 세우는 게 낫다는 것이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