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세대 전투기 사업의 단독 후보인 F-15SE가 5세대 스텔스형 전투기가 아니라는 점이 대두되면서 네티즌과 군사 전문가들 사이에서 사업 전면 재검토 주장이 일고 있다. 보잉의 F-15SE
먼저 보잉사는 애초에 F-15SE의 수직꼬리날개를 양쪽으로 15도 정도 눕히고 엔진 부분에 레이더 블로커를 설치하는 등 스텔스 기능을 향상시키겠다고 제안했으나 최종 입찰에서 가격을 낮추기 위해 이 계획을 철회했다. 보잉사는 전면 스텔스 여부와 관련해서는 “보안 문제이므로 대답해 줄 수 없다”로 일관 중이다. 한데 방사청은 이 부분을 문제 삼지 않았다.
반면 방사청은 유럽항공방위우주산업(EADS)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복좌기 15대 및 단좌기 45대를 납품하겠다고 했다가 가격을 맞추기 위해 복좌기 6대와 단좌기 54대로 조정한 사실에 대해선 서류 하자로 배제시켰다. 이에 대해 전투기조종사 출신 한 공군 예비역 소장은 “사실상 탈락 사유가 될 수 없다”고 의문을 제기했다. 국회 국방위 소속 한 의원실 관계자는 “유로파이터의 경우 사실상 탈락이 적합했느냐에 대한 의문이 존재한다”며 “왜 EADS사에게만 다른 미국계 회사에게 요구하지 않은 옵션을 굳이 요구했는지에 대한 의문이 있다. 차후에 이것을 따져 봐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실제로 최근엔 복좌기에 대한 요구와 중요성이 점점 낮아지는 추세다. 세 후보 중 스텔스 기능이 가장 우수하다고 알려진 F-35A의 경우엔 단좌기 모델만 존재한다. 즉 복좌기가 한국공군이 반드시 필요로 하는 필수옵션은 아니라는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정부가 미국산 전투기 구매를 통한 한미동맹을 더 중요시한다’는 의심의 눈초리가 커지고 있는 것이다.
보잉사의 막강한 로비력이 이번 F-15SE 채택에 영향을 준 것 아니냐는 시선도 존재한다.
그러나 지난 7월 갑자기 기재부에서 20% 한도 내 예산 증액 불가를 통보해와 1조 6600억 원 이내에서 예산을 증액할 여지가 있다고 기대했던 국방부 및 방사청, 입찰 회사 등 관계자들이 크게 당황했다는 후문이다. 이에 대해 기재부 국방예산과 관계자는 “방사청에 문의하라. 우리는 규정대로 할 뿐이다. 죄송하다”며 답변을 회피했다.
이러한 기재부의 태도에 대해 한 군사전문가는 “총사업비 8조 3000억 원이라는 예산의 한정성이 F-15SE를 최종선정하기 위한 사전의 포석이었을 수 있다”며 “나머지 두 기종의 경우 60대로 그 예산에 맞출 수 없다는 것은 업계 관계자라면 모두 아는 내용”이라고 못 박았다.
공군은 이번 3차 F-X 사업과 관련해 국방부로부터 일체 함구령을 지시받았으나, 공군이 오랫동안 스텔스 기능을 갖춘 전투기를 원해왔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이에 대해 앞서의 공군 예비역 소장은 “미국과 한국이 오랜 동맹 관계이나 미국 입장에선 ‘한국에 과연 스텔스기를 줘도 되나’라는 의문과 의심이 존재할 수도 있다”고 조심스럽게 밝혔다. 반면 지난 2011년 일본정부는 미국 록히드마틴사의 F-35A를 차세대 전투기 기종으로 선정하고 42대를 도입하기로 한 바 있다. 이에 대해 일부에선 미국이 반세기 전 전 세계를 상대로 전쟁을 일으켜 2000만 명 이상을 학살한 국가에 대해선 별다른 제재 없이 최신기종의 스텔스기를 팔면서도 정작 오랜 동맹이자 분단국가인 한국에겐 스텔스기 대신 생산라인이 중단되기 직전인 노후 기종을 강매하는 이중적 태도를 보인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실제로 이희우 충남대 군수체계종합연구소 소장은 “미국은 한국을 고정적인 자기 시장으로 생각하고 고압적인 태도를 취한다”고 지적하기도 했다.
EADS의 유로파이터 타이푼
익명을 요구한 또 다른 군사전문가는 “만약 이번에 노후 기종인 F-15SE를 구매하게 된다 해도 차후 5~6년 안에 스텔스기에 대한 전 국민적 요구가 반드시 일어날 것”이라며 “중국이 J-20 개발을 완료하고, 일본이 F-35A를 구매해 오는 2017년이면 동해상을 날아다닐 것이다. 독도에 대한 위협이 가중되면 우리도 스텔스기를 구매하자는 여론이 득세할 것이다. 그때 뒤늦게 스텔스기를 구매하면 사실상 KF-X 사업은 물 건너가고 한국은 영원히 미 군수업체의 고객으로 남을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 군사 전문가에 따르면, 앞으로 또다시 미국으로부터 스텔스기를 60대가량 구매한다면, 한국형 전투기 120대를 독자개발 및 생산한다는 목표를 가진 KF-X 사업은 불투명해진다고 한다. 120대를 생산하는 것은 대량생산이라는 전제하에서 원가 절감이 가능한데, 생산 대수가 줄어들면 개발비 상승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한국정부는 KF-X 사업에 터키와 인도네시아를 끌어들여 합작하려는 계획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두 나라는 미국에게도 큰 고객으로, 특히 터키는 미국으로부터 무기를 사들이는 1위 국가다. 미국 군산복합체가 자체 기술을 개발해 독립하겠다는 한국의 의지를 막고자 한다는 주장이다.
이어 이 전문가는 “지난 5월 박근혜 대통령 방미 당시, 박 대통령과 오바마 미 대통령이 전시작전통제권 이양과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문제, 원자력협정 개정 및 한미자유무역협정(FTA)을 비롯한 경제통상 분야의 협력 등을 주요의제로 다루면서 한미동맹을 강화하는 차원에서 모종의 언질이 있지 않았겠느냐”고 추측했다.
록히드마틴의 F-35A.
그렇다면 전면 ‘재검토’ 가능성은 존재할까. 재검토가 가능하다는 의견과 그러기 어려울 것이라는 의견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신인균 자주국방네트워크 대표는 “9월 중순 열릴 방위사업추진위원회에서 강력하게 반대하면 사업이 부결될 수도 있다”면서도 “하지만 현재로선 그럴 가능성이 매우 낮아 보인다”고 우려했다.
반면 국방위 소속 한 의원실 보좌진은 “지난해 국감부터 올해까지 일관되게 8조 3000억 원 예산으로 가능하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있어왔다”며 “아직 진행 중이라 결과가 나오면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협상 결과를 보고나서 사업방식 재검토 등 다시 논의할 여지가 있을 것 같다”고 밝혔다.
취재에 응한 관계자들은 하나같이 방사청의 전략 및 사업관리능력 부재를 이번 혼란의 원인으로 꼽았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항상 기한을 정해놓고 협상을 시작하는데, 기한을 정해놓으면 협상이 촉박해진다”며 “결국 기한 안에 사업을 시행하지 못하고 계속 미뤄지지 않았나. 방사청 스스로 혼란을 야기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3기종 중 어떤 것을 선정하더라도 실제 도입 시기를 예측하기가 어렵다”면서 “무엇을 선정해도 논란이 일 것이고 후폭풍이 있을 것”이라고 염려했다.
신상미 기자 shin@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