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과 이정현 홍보수석이 이야기를 나누며 걸어가고 있다.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을 국정원이 단독으로 터뜨렸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적지 않다. 일요신문 DB
물론 이번 사건이 박근혜 대통령과 여권에겐 호재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현역 국회의원이 국가 전복을 꾀한 의혹을 받고 있는 이번 사건은 야권에겐 그야말로 ‘쓰나미’다.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을 고리로 천막당사도 모자라 노숙투쟁에 들어간 민주당의 시도는 더 이상 국민들의 시선을 끌기 어렵게 됐다. 다시 한 번 복원될 기미를 보이고 있던 민주당과 통합진보당, 정의당 등의 야권연대 역시 도루묵이 돼 버렸다. 경제살리기에 올인하면서 성과를 내는 데 집중하려고 하고 있는 박 대통령으로선 ‘목구멍의 가시’가 빠졌다고 볼 수도 있는 셈이다.
이러한 효과 때문에라도 정치권에서는 이번 사건과 청와대를 떼어놓고 보지 않는다. 우선 청와대의 부인에도 불구하고 이번 사건을 국정원이 단독으로 터뜨렸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언론 보도를 보고 처음 알았다”는 이정현 수석의 발언이 기사화되자마자 인터넷에서는 “그 말이 사실이라면 직무유기이고, 거짓이라면 대단한 연기력”이라는 비아냥 섞인 반응이 쏟아진 것도 이 때문이다.
이석기 의원 등에 대한 사정당국의 내사가 이명박 정부 시절인 지난 2008년 무렵부터 시작됐고 합법적인 감청 등 본격적인 내사가 시작된 것도 2010년부터라고 하지만, 최소한 이들에 대한 검거와 사법처리 시점에 대해서는 청와대와 조율이 있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청와대와 정부 주요 인사들의 면면 역시 사건 관련성을 부추기는 한 요인이 되고 있다. 공안검사 출신들이 법무부 장관과 청와대 비서실장, 민정수석 등에 줄줄이 배치되는 바람에 진작부터 ‘공안정국을 꾀하는 것 아니냐’는 우려를 낳았다.
황교안 법무부 장관은 대검 공안 1·3과장, 서울지검 공안2부장, 서울중앙지검 2차장 등 검찰 내 공안라인을 두루 거친 정통 공안통이다. 지난 2005년 서울중앙지검 2차장 근무 시 국정원 불법도청 사건 수사를 지휘했다. 그는 강정구 전 동국대 교수의 국가보안법 위반 사건 수사 때는 불구속 수사를 종용했던 당시 천정배 법무부 장관과 마찰을 빚기도 했다. 김기춘 비서실장 역시 중앙정보부 5국장을 지낼 정도로 공안통이었고, 홍경식 민정수석도 서울지검 공안1부장과 대검 공안부장을 지냈다.
이번 사건의 타이밍도 온갖 정치적 해석을 낳을 수밖에 없을 정도로 너무 절묘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정기국회 개회를 앞두고 야권은 국정원 대선 개입 사건과 관련한 대여 공세 수위를 한층 높여가고 있었다. 주말인 31일에는 민주당이 부산으로 내려가 장외집회를 여는 등 서울 중심의 투쟁을 전국 각지로 확산시키기로 돼 있었다.
특히 정기국회 개회에 맞춰 9월 초에는 국정원이 자체 개혁안을 내놔야 하는 상황으로 내몰리고 있었다. 외부에서 요구하는 국정원 개혁의 핵심은 국내 파트의 대대적 축소나 폐지였다. 이번 사건을 두고 국정원이 조직의 운명을 걸고 승부수를 띄운 것 아니냐는 해석이 나오는 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는 셈이다.
타이밍과 관련해 새누리당의 한 중진 의원은 “이석기 의원 등이 낌새를 알아채는 바람에 압수수색과 체포를 앞당겼다는 얘기가 있다”고 전했다.
박공헌 언론인
“점조직이 대규모 회합? 말도 안되는 얘기다”
국정원 등을 통해서 흘러나온 사건의 정황 중 쉽게 납득하기 어려운 대목도 적지 않다. 이석기 의원 등이 만들었다는 비밀 지하조직 ‘RO(Revolutionary Organization)’가 이 의원의 지령에 따라 점조직 형태로 움직여 왔다는 게 국정원 등 사정당국의 설명이다. 이런 점조직이 130여 명이나 한꺼번에 모여 국가변란을 모의하는 회의를 열었다는 것은 누가 봐도 석연치 않다. ‘강철’로 유명한 1980년대 주체사상파의 대부 김영환 씨 역시 언론 인터뷰에서 이 부분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정도다.
한때 주사파 조직에서 활동했었던 민주당 관계자는 “점조직이라면 같은 조직원들끼리도 서로를 모르는 게 정상인데, 조직의 전모가 통째로 공개되는 집단 회합을 가졌다는 것 자체가 말이 안된다”며 “국민들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꼴통 주사파’ 일부가 국가변란을 꾀했을지 몰라도 130명이 모인 자리에서 그 계획을 밝히고 지령을 내렸다는 것도 말이 안 되는 얘기”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이번 사건은 이제부터 시작일 뿐이고, 그 결과가 청와대와 여권에 호재가 될지 악재가 될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전망을 내놓는 사람도 적지 않다. 한 민주당 당직자는 “사안의 엄중함 때문에 말은 못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나온 정황과 팩트들만으로는 무리한 짜맞추기 수사로 볼 수밖에 없다”며 “앞으로 검찰 수사와 재판 과정에서 국정원이 제대로 된 물증을 내놓지 않는다면 거센 역풍을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검사 출신의 한 새누리당 의원은 “1980년 김대중 내란음모사건 이후 33년 만에 내란음모죄를 들고 나오면서 국정원이 허술하게 준비했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면서 “법원이 내란음모와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청구된 영장을 발부한 것만 봐도 상당한 수준의 증거가 확보돼 있음을 알 수 있다”고 말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