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클볼을 연마해 미국 독립리그 구단에 입단한 허민 구단주는 “세상이 날 어떻게 보든 행복해지고 싶은 게 가장 큰 야심”이라고 말했다.
메이저리거라…. 이때만 해도 기자는 허 구단주의 진의를 알아채지 못했다. 그저 원더스 선수들을 잘 키워 그 가운데 한 명을 메이저리거로 만들겠다는 뜻으로 알았다. 이미 5명의 원더스 선수를 국내 프로야구단으로 보냈기에 허 구단주의 대범한 목표는 현실성이 없지 않았다. 그러나 돌아온 대답은 바로 “내가 메이저리거가 되는 게 목표”라는 것이었다.
허 구단주는 세상을 놀라게 하는 ‘괴짜’로 유명하다. 서울대 응용화학부 출신인 허 구단주는 재학시절 총학생회장을 역임했다. ‘서울대 총학생회장’하면 투사를 떠오르게 마련이지만, 그는 재학 중 게임으로 미팅 상대를 구하는 ‘캔디바’라는 인터넷 게임을 만든 벤처 사업가였다.
그는 서울대 졸업 후, 18번의 실패와 막대한 부채를 떠안은 상황에서 온라인 게임 ‘던전앤파이터’를 제작했다. 3D 게임이 유행하던 시절이라, 2D로 제작된 ‘던전앤파이터’는 고전이 예상됐다. 그러나 결과는 대박이었다. ‘던전앤파이터’는 한국 PC방을 휩쓸고서 중국으로 소개되며 2억 명에 가까운 이용자를 끌어 모았다.
허 구단주가 세상을 또 한 번 놀라게 한 건 2008년이었다. 그는 승승장구하던 게임사를 갑자기 매각했다. 그리고선 매각 대금으로 1000억 원을 손에 쥐었다. 보통 사람이라면 그것으로 끝이었겠지만, 허 구단주는 매각 대금 가운데 상당액을 자신과 동고동락한 게임사 직원들에게 나눠줬다. 그리고 미국 버클리 음대로 유학을 떠났다.
거기서 허 구단주는 작곡 공부를 시작하며, 음악에 빠졌다. 방학이나 휴일엔 ‘너클볼의 대가’인 전 메이저리거 필 니크로를 찾아가 너클볼 투구법을 배웠다. 당시 허 구단주는 “나는 행복해지고 싶어 사업을 했고, 더 행복해지고 싶어 미국으로 떠나 작곡과 너클볼을 배웠을 뿐”이라며 “세상이 날 어떻게 보든 행복해지고 싶다는 것, 그게 내겐 가장 큰 야심”이라고 말했다.
원더홀딩스가 KBO와 MOU를 체결하는 모습.
지금은 성공한 사업가지만, 원래 그의 꿈은 프로야구 투수였다. 재능도 있었다. 서울대 야구부에서 투수로 뛸 당시 허 구단주는 “고교시절까지 비선수 출신이었음에도 제구가 무척 좋다”는 평을 들었다.
하지만, 갑작스레 어깨부상을 당하며 결국 서울대 야구부에서 퇴단해야 했다. 그가 너클볼에 심취한 것도 이 때문이었다.
“다시 투수로 마운드에 서려고 노력했지만, 한 번 어깨를 다치고 나니 속구 구속이 오르지 않았다. 그래서 찾은 대안이 너클볼이었다. 너클볼은 원래 공이 느리기에 어깨 부담이 거의 없고, 체력적 부담도 덜해 나이 많은 투수도 던지기 쉬운 구종이었다.”
게임사를 운영하면서도 허 구단주는 너클볼 연마에 심혈을 기울였다. 그러나 한계가 있었다. 국내 너클볼 투수가 전무한 까닭에 노하우를 전수받기 어려웠다. 허 구단주는 미국 야구 관련 서적과 동영상을 통해 순전히 독학으로 너클볼을 연마해야 했다. 버클리 음대 유학시절 니크로를 찾아가 너클볼 투구법을 사사한 것도 독학의 한계를 절감한 까닭이었다.
허 구단주는 “니크로 선생으로부터 3개월간 너클볼을 배운 뒤 ‘이 정도면 메이저리그에서도 통할 수 있다’는 평을 들었다”며 “‘던전앤파이터’가 대박을 칠 때만큼이나 벅찬 감동을 느꼈다”고 회상했다. 그렇다면 과연 허 구단주의 너클볼 수준은 어느 정도일까.
LG-SK를 거쳐 일본 독립구단에서 활약했던 ‘원조 너클볼러’ 김경태 SK 재활코치는 허 구단주의 너클볼을 “기대했던 것 이상이었다”며 호평했다. 김 코치 역시 현역시절 각종 부상 때문에 독학으로 너클볼을 배웠다. 일본 독립구단에서 뛸 땐 아예 너클볼 투수로 변신해 꽤 성적을 거뒀다. 당시 일본야구계에선 김 코치의 너클볼을 ‘마구’로 불렀다.
김 코치는 “우연한 기회에 허 구단주를 만나 그가 던지는 너클볼을 눈앞에서 본 적이 있다”며 “너클볼의 구속은 시속 100㎞ 전후를 기록했던 내가 시속 80㎞대의 허 구단주보다 빠를지 몰라도, 너클볼의 심한 움직이나 정확한 제구는 허 구단주가 나보다 한 수위였다”고 털어놨다.
허민 구단주가 프로에 진출한 원더스 선수에게 입단 축하 격려금을 전달했다.
너클볼에 자신감이 붙은 허 구단주는 올 초 미국 애리조나에 개인 훈련 캠프를 차렸다. 그곳에서 허 구단주는 미국 마이너리그 선수들을 상대로 너클볼 시범을 보였다. 결과는 호평 일색이었다.
6월 중순 허 구단주는 기자에게 ‘미국 독립구단 입단을 알아보고 있다’는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일단 독립구단에 입단해 두각을 나타내고서 마이너리그를 거쳐 메이저리그에 도전하겠다는 게 그의 계획이었다.
하지만, 8월 초 그는 미국이 아닌 서울에 있었다. 목동구장에서 한화-넥센전을 관전하는 그의 얼굴이 언론을 통해 보도됐다. 순간, 기자는 허 구단주의 미국 야구 도전이 무산된 줄 알았다. 그러나 아니었다. 허 구단주는 “회사 일로 서울에 온 김에 원더스 소속이던 안태영이 넥센에서 얼마나 잘 뛰나 싶어 잠시 목동구장을 방문했을 뿐”이라며 “그즈음에도 미국 독립구단 입단을 알아보고 있었다”고 밝혔다.
드디어 8월 29일. 허 구단주는 ‘독립구단에 입단하게 됐다’는 반가운 문자 메시지를 보냈다.
그가 입단한 팀은 미국 독립리그 가운데 하나인 캔암리그의 ‘록랜드 볼더스’다. 미국에선 마이너리그 싱글A 수준으로 평가받는 캔암리그는 유명 메이저리거를 다수 배출한 곳이다.
허 구단주는 “9월 초 데뷔 등판을 할 것 같다. 반드시 독립구단에서 좋은 성과를 내 빅리그 무대까지 밟겠다”며 “포기하지 않으면 꿈은 언제나 현실이 될 수 있다는 걸 많은 이에게 증명해보이겠다”고 다짐했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꿈은 이뤄진다’
꿈은 이루어지는 건가. 캔암리그의 록랜드 볼더스는 30일(이하 한국시간) 공식 홈페이지를 통해 “우완 투수 허민이 2일 오전 6시 미국 뉴욕에 위치한 프로비던트 뱅크 파크에서 뉴어크 베어스를 상대로 선발 등판할 예정이다”라고 밝혔다. 구단주 허민이 아닌 투수 허민으로 마이너리그 무대에 정식 데뷔전을 치르는 셈이다.
허민 구단주가 미국 독립리그 ‘록랜드 볼더스’에 입단해 정식 선수가 됐다. 사진제공=고양 원더스
박동희 스포츠춘추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