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란음모 혐의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이석기 의원이 5일 수원남부경찰서에서 수원구치소로 이송되고 있다. 최준필 기자 choijp85@ilyo.co.kr
NL계서 학생운동…민혁당 전신 반제청년동맹 결성
경기동부연합 자금줄 CNP전략 이끌며 수백억 매출
이번에 내란음모 혐의로 체포동의안이 가결되면서 자신의 정치적 생명은 물론 통합진보당의 명운까지 뒤흔들게 한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51). 지난해 통합진보당 사태가 터지면서 실체가 드러난 경기동부연합의 핵심 인사로 소개됐지만, 이 의원은 의회 입성 전부터 지금까지 수수께끼 같은 삶을 살아온 인물이다. 알려진 것보다 알려지지 않은 부분이 더 많은 인물인 셈.
이석기 의원은 일찌감치 학생운동에 뛰어들었다. 1982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중국어통번역학과에 입학한 이 의원은 1985년 6월 학내 불법 시위로 인해 한 차례 제적됐다. 1987년 9월 학교 측의 구제 조치 허가를 받아 캠퍼스로 돌아온 그의 활동은 NL(민족해방) 진영 내부에서 더욱 두드러진다. 이 의원은 이후 ‘가면극연구회’ 등 교내 이념서클 활동을 꾀했다고 한다.
알려졌다시피 지하세계에서 이석기 의원의 활동이 본격화되던 시기는 1980년대 후반 ‘반제청년동맹’을 결성하던 때다. 보수진영에서는 이 조직의 성격을 두고 1927년 김일성 북한 주석이 청년시절 조직했다는 같은 이름의 ‘반제청년동맹’을 계승했다고 주장한다. 이석기의 반제청년동맹은 1992년 유명한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으로 개편된다. 당시 NL진영 핵심인사였던 김영환, 하영옥은 각각 중앙위원장과 중앙위원을 맡았다. 이석기 의원은 당시 지역도당 성격인 경기남부지역위원장에 불과했다. 당시만 해도 이 의원은 김영환, 하영옥 등 상부의 지시에 따라 활동했다.
조직 내 핵심이었던 김영환의 전향 이후 민혁당은 1997년, 사실상 해체 수순에 이른다. 이석기 의원의 행보는 이때부터 미스터리로 남아있다. 기자와 만난 한 전향 인사는 “김영환과 사이가 벌어진 이후, 이석기는 하영옥과 조직 재건에 나선 것으로 안다”며 “하지만 그 조직 재건 수준은 아무도 모른다. 얼마나 무섭나. 만약 지난 10년여 동안 외부에 노출되지 않은 채 재건이 상당한 수준에 이르렀다면, 이석기는 그야말로 A급인 셈”이라고 말했다.
1999년 민혁당 조직 발각 이후 실형을 선고받은 이석기 의원은 2003년 특별사면 이후 현실정치에 뛰어들게 된다. 보통 2004년 이후 주류인 NL진영, 특히 경기동부연합이 민주노동당의 당권을 쥐게 됐다고 판단된다. 이 의원은 현실정치에 뛰어든 이후 지금은 경기동부연합의 자금줄로 지칭되는 리서치업체 CNP전략그룹을 이끌며 수백억 원대의 매출을 올리기도 했다. 매출의 상당액은 통합진보당과 관련된 것으로 알려졌다. 이 의원은 총선 출마 직전인 2012년 2월에서야 대표직에서 물러났다.
이석기 대학 후배…한총련 대의원 당시 수배생활
당내 청년 사업 이끌어…청년 비례로 국회 입성
조직 내 핵심이자 이번 내란음모 혐의의 당사자인 이석기 의원과 함께 김재연, 김미희, 이상규 의원은 경기동부연합 인사로 분류된다. 현재 김재연, 김미희 의원은 ‘RO(Revolutionary Organization·혁명조직)’ 모임에 참석했던 것으로 확인된 상황. 특히 김재연 의원은 경기동부연합 내 핵심이라 할 수 있는 한국외대 용인캠퍼스 출신으로 이석기 의원의 후배다. 김 의원은 지난해 총선 출마부터 ‘제2의 이정희’라 불리며 진보진영의 상징적인 존재로 부각돼 왔다.
김재연 의원(33)은 대학시절 한국외대 총학생회장을 지냈으며 이적단체로 규정된 한국대학총학생회연합(한총련) 10기 대의원을 지냈다. 이 당시 대의원 활동이 발각되면서 수배 대상자가 된 김 의원은 경찰을 피해 약 3년간 교내에서 생활하기도 했다.
김재연 의원은 지난 2008년 이후 당 내 청년사업을 이끌었다. 부대변인을 역임하는가 하면 등록금특별위원회 집행위원, 88만원세대희망본부 및 150만원등록금실현본부 본부장 등을 맡았다. 그는 현재 전국 최대 학생조직으로 남아있는 21세기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집행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18대 총선 당시 강남을 지역에 출마했지만, 한 차례 낙선한 뒤 지난 총선 청년비례 자격으로 당선돼 국회에 입성했다.
그의 남편 역시 한동안 화제가 되기도 했다. 김재연 의원의 남편인 최호연 씨는 고려대 법대 출신으로 자본주의연구회라는 단체를 조직하며 의식화 사업에 투신했던 인물. 경찰 조사 과정에서 여러 이적물을 소지한 것이 발각돼 지난 2011년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로 구속까지 됐다.
대학 시절부터 야학운동 등 성남 지역서 재야활동
시의원으로 정계 입문…총선서 야권 연대로 당선
김미희 의원(47)은 경기동부연합 내에서도 성남재야세력 출신 인사로 분류된다. 경기동부연합의 뿌리에 대해선 지금까지 여러 가지 해석이 나오고 있지만, 일각에선 성남지역 재야세력의 실체와 연결 지어 얘기하는 경우가 많다. 무엇보다 경기 성남은 과거 서울 도시계획에 따라 이주한 주민들이 대거 모여 살던 저개발 택지지역(당시 경기도 광주군 중부면)이었다.
당시 정부는 이주명령만 내렸을 뿐 이 지역 생활 대책에 대해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결국 이 지역 주민들은 1971년 대규모 봉기를 일으켰는데 그것이 바로 ‘광주대단지 사건’이다. 이 사건 이후 지금의 성남 지역에는 다양한 형태의 재야세력들이 모여 들어 활동을 지속하게 됐는데 그것이 바로 경기동부연합의 한 축을 담당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김미희 의원은 바로 이러한 성남 지역의 재야활동을 꾀했던 인물이다. 서울대 약학대학 84학번으로 약대 학생회장을 지낸 김미희 의원은 대학시절부터 이 지역 야학운동을 했으며 대학 졸업 후 1992년 성남에 정착하며 ‘터사랑청년회’에서 활동을 이어갔다. 그의 남편인 백승우 전 통합진보당 사무총장 역시 이때 만났다. 백 전 사무총장은 광주대단지 이주 당시 성남으로 입성한 진짜배기 이주민 출신이다.
김미희 의원은 이후에도 성남을 기반으로 노동과 교육분야 활동을 했는데 이를 토대로 1990년대 초중반 민선 2~3기 성남시의원에 당선되며 정치권에 발을 들여놓았다. 1999년 민주노동당 창당에 참여한 김미희 의원은 민주노동당 최고위원, 학교급식법 개정과 조례제정을 위한 특별위원회 위원장, 성남시지역위원장을 거쳐 지난 총선 민주당과의 후보단일화를 통해 성남 중원구에서 당선됐다.
법대 학생회장 출마했다 구치소 끌려가 ‘옥중 당선’
금배지 달기 전까지 건설현장 배관공으로 일해
이상규 의원(48)은 지난 총선 당시 통합진보당 부정경선 사태로 후보직을 사퇴한 이정희 대표를 대신하여 서울 관악을에 출마해 당선된 인물이다. 경기동부연합 계열로 분류되는 이 의원은 출마 당시 진중권 동양대 교수로부터 “얼굴마담(이정희 대표를 지칭)이 사퇴하니, 몸통이 나오는 격”이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을 정도로 강성으로 통한다.
서울대 법대 83학번인 이상규 의원은 지금은 앙숙이라 할 수 있는 새누리당 김진태 의원과 동기이기도 하다. 1986년 ‘미 제국주의 축출’이란 구호를 들고 법대 학생회장에 출마했다 구치소로 끌려가 ‘옥중당선’ 되는 독특한 이력이 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서울 구로, 영등포 등지에서 야학 및 청년 운동과 노동운동을 병행했다. 그는 1990년대 후반 민주노총 정책국장을 지내고 총선 당선 직전까지 건설현장 배관공으로 일했던 만큼 노동운동계에서도 잔뼈가 굵은 인물로 통한다.
이 의원은 진보진영 내에서 현실정치 입성을 위해 가장 꾸준히 문을 두드려 왔으며 선거 전략에서도 많은 경험이 있는 인사다. 국내 지방선거 민선이 부활한 1995년부터 서울 영등포구의원 선거에 나섰으며 2002년 서울시의회 선거 출마, 2008년 총선 비례대표 출마, 2010년 서울시장 선거 출마, 같은 해 서울 은평을 재보선에 나서는 등 지난 총선에서 당선되기 전까지 무려 6번의 낙선 고배를 마신 바 있다.
김선동 광주전남연합 계열
김선동, 오병윤 의원은 광주전남연합 계열 인물들이다. 알려졌다시피 광주전남연합은 주류인 경기동부연합이 당권을 쥘 당시 뜻을 함께하며 연합 및 동조했던 전국연합 내 지역 세력이다. 이를 통칭해 ‘범경기동부연합’으로 부르기도 한다.
김선동 의원(46)은 고려대 물리학과 85학번으로 총학생회 집행부를 지냈다. 1988년 미국 문화원 점거 사건 당시 핵심세력으로 활동했던 김선동 의원은 이 사건으로 인해 학교를 그만두고 노동 현장에 뛰어든 것으로 알려졌다. 이후 1990년대까지 울산현대중공업, 광주기아차, 광주금호타이어 등 주로 대기업 하청업체에서 근무하며 노동운동을 지속했다.
그가 입당한 것은 2000년에 이르러서다. 이제 막 진보정당이 조직되기 시작했던 당시 김선동 의원은 민주노동당 광주시당 조직국장을 맡으며 당 조직에 나섰다. 이후 김선동 의원은 당 사무총장, 전남도당위원장, 전남도지사 후보(2004년) 등 당 핵심요직을 두루 거치며 당내 핵심인사로 자리 잡았다.
김선동 의원이 대중적 인지도를 높이게 된 계기는 역시 초선 시절이었던 2011년 11월 22일 한-미FTA 비준안 통과 과정에서 헌정 이래 최초로 ‘최루탄 테러’를 자행했던 사건 때문이다. 당시 김 의원은 미리 준비한 최루탄 뇌관을 본회장 중앙에서 뽑아 던지며 “역사가 심판할 것”이라고 외쳐댔다.
당시 국회는 한마디로 아수라장이 됐다. 김선동 의원은 이후 이 사건으로 인해 검찰에 불구속 기소됐지만, 공식 석상에서 “서민들 피눈물 흘리게 할 협정문을 처리하면서 의원들도 눈물 흘리게 해야 한다는 심정으로 최루탄을 터트렸다”고 발언하는 등 자신의 행동에 대한 정당성을 줄곧 주장했다. 이밖에도 그는 2006년 사무총장 당시 선관위 미신고계좌로 144억 원 상당의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기소되기도 했다.
‘삼민투위’ 사건·김일성 주석 조문 파문에 연루
당 요직 두루 거치며 원내대표로서 지도부 이끌어
현재 통합진보당 원내대표를 맡고 있는 오병윤 의원(56)은 조선대학교부속중·고등학교와 전남대를 다니며 오랜 기간 호남지역 내 진보운동을 진두지휘했던 인사다. 그가 전국에 처음 이름을 알리게 된 계기는 5공 시절 가장 뜨거웠던 투쟁조직으로 알려진 전국학생총연합(전학련) 산하 ‘삼민투위’ 사건에 연루되면서부터다.
삼민투위란 1985년 전국 34개 대학 내 투쟁조직으로 민족통일, 민주쟁취, 민중해방이라는 삼민이념 구현을 위해 활동했던 단체다. 이 당시 삼민투위는 서울 을지로 폭력시위를 포함해 전국 대도시에서 약 2개월간 11건에 달하는 시위를 주도했다. 이 당시 검찰 수사에 따라 발각 및 구속됐던 인물은 허인회 전 열린우리당 청년위원장(삼민투위 위원장), 김민석 전 민주당 최고위원(전학련 의장), 그리고 전남대 총학생회장 출신으로 호남지역 전학련 조직을 이끌었던 오병윤 의원 등이었다.
오 의원은 이후에도 광주·전남지역에 머무르며 1990년대 전국연합 산하 광주전남연합 사무처장, 중앙집행위원장, 공동의장을 지냈다. 이 당시 오 의원은 1994년 김일성 주석 조문 파문에 연루된 바 있으며 이적단체인 범민련 지역행사에 참가해 대회를 주도하며 구설수에 오른 바 있다. 당시 한총련 산하 남총련 핵심 간부를 배후에서 조종했다는 혐의로 긴급구속되는 일까지 있었다.
2003년 민주노동당 광주시당 서구지역위원장에 오른 오병윤 의원은 2005년 광주시당 위원장을 거쳐 2008년 당 최고위원과 사무총장 등 당 요직을 두루 거친다. 그리고 지난 총선 광주 서구을 지역에 출마하여 국회에 입성하는 기염을 토했고 지금은 이정희 당대표와 함께 원내대표로서 당 지도부를 이끌고 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
불똥 튀기 전에 먼저 튀었다고?
이석기 통합진보당 의원이 내란음모혐의로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가결, 구속·수감되는 등 극단적인 공안정국이 지속되고 있는 가운데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4일,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리는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참석과 베트남 국빈 방문차 해외 출국했다.
물론 본인이 의도했는지, 안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정가에선 이러한 묘한 시기에 해외로 출국한 박근혜 대통령의 행보를 놓고 여러 뒷말이 나오고 있다. 유신 정권 내내 여러 차례 합법적 비합법적 수단으로 공안정국을 조성했던 선친 박정희 대통령과 묘하게 오버랩되면서 진보진영은 물론 야권세력 내에서 ‘유신의 부활’ 등 갖은 비판이 쏟아지는 찰나 비행기에 몸을 싣게 된 것.
이러한 묘한 타이밍에 대해 뒷말이 나오고 있는 것은 박근혜 대통령은 이미 비슷한 전력이 있기 때문. 박 대통령은 NLL(서해 북방한계선) 대화록이 공개되고 여야 충돌이 한창이던 6월 말, 중국 순방길에 오른 바 있다. 당시 야권에선 “중국 순방을 앞두고 기막힌 타이밍에 의도적으로 행한 짓”이라며 박 대통령과 국정원 간 사전 교감설을 제기하기도 했다. 출국 직전 박 대통령은 “NLL은 확고부동한 남북 군사분계선”이라는 말을 남긴 채 홀연히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야권의 한 관계자는 “의도 여부를 떠나서 참 기가 막힌 타이밍이다. 이런 타이밍 정치는 나중을 위해서라도 문재인 의원이 꼭 배워야 하지 않겠느냐”며 번번이 변변치 못한 타이밍 행보로 덫에 빠졌던 문재인 의원과 비교하며 쓴웃음을 지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