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히 통합진보당이 이석기 사태를 겪는 과정에서 보여준 상식 이하의 변명이나 대응에 대해 국민들은 상당히 격앙된 반응을 보이고 있다. 헌정질서 자체를 부인하고 그들만의 영웅놀이에 빠진 나머지 여론에는 귀도 기울이지 않는 듯한 태도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오로지 ‘당’의 존립과 투쟁심만 있을 뿐 어디에도 상처 난 민심 보듬기에 나선 노력은 보이지 않는다. 이런 통합진보당의 일방주의적 행태는 이석기 의원이 연행되기 직전 당원들과 가진 저녁 자리를 보면 그대로 드러난다. 이석기 의원은 연행되기 전 통합진보당 당원들의 저녁 자리에 나타났다. 식사는 하지 않았지만, ‘최후의 만찬’이나 마찬가지였던 셈이다. 그 자리에 기자도 동행해 그들의 ‘민낯’을 샅샅이 들여다보았다.
지난 4일 오후 4시쯤 통합진보당 이석기 의원의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직후 국회 앞은 어수선한 분위기가 가득했다. 본회의장을 빠져나온 이석기 의원과 통합진보당 소속 의원들은 국회 본청 앞 계단 위에 서서 취재진들과 통합진보당 당원 및 지지자들 앞에서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이 자리에서 이석기 의원은 “사랑하는 국민 여러분. 제가 내란음모죄랍니다. 아니 대한민국 국회의원이 왜 내란음모를 합니까. 이 나라가 너무 좋아서 지리산 산자락만 봐도 가슴이 설레는데”라고 주장했다. 이석기 의원 옆에는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입을 굳게 다문 채 이석기 의원의 손을 잡고 있었다.
발언이 끝난 후 이석기 의원은 지지자들의 성원 아래 국회의원 회관으로 이동했다. 회관으로 들어가기 직전까지도 이 의원은 지지자들에게 손을 흔들고 하트를 그려 보이는 등 과장되게 연출한 쇼맨십을 시종일관 보여주었다. 그 순간 사람들 사이에선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데 혼자 영웅놀이에 빠져 있는지”라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렸다. 이윽고 이 의원의 모습이 사라지자 지지자들은 사방팔방 흩어졌다.
이석기 의원이 발언을 끝낸 후 당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대화를 나누고 있다. 30여 분에 걸친 ‘행사’를 마친 이 의원은 당원들에게 손을 흔들며 식당을 빠져나갔다. 2시간쯤 후 이 의원은 전격 구인됐다.
저녁식사가 이어지고 30분 후 식당 내 분위기는 술렁이기 시작했다. 이석기 의원이 곧 식당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전달됐기 때문이다. 이윽고 비서진을 대동한 이석기 의원이 식당으로 들어왔다. 한 당원이 “미소천사 이석기 의원님이 입장하고 있습니다”라고 크게 소리쳤다. 식당 안에서는 박수가 쏟아졌다. 이석기를 연호하는 열기가 식당 내에 가득했다. 이석기 의원은 테이블 맨 앞에 서서 발언을 하기 시작했다. 그는 불과 몇 시간 전 국회에서 체포동의안이 통과돼 ‘범법자’로 추락하기 바로 전이었지만 그런 것에는 전혀 아랑곳하지 않는 듯 보였다.
“동지들!” 크게 한번 소리친 이석기 의원은 또다시 “목소리가 작습니다. 다시 한 번 동지들!”이라고 운을 뗐다. 당원들이 “네”라고 크게 화답하자 이석기 의원은 “우리는 절대 이 싸움에서 지지 않는다. 저들이 세게 나오는 것 같지만 사실 별 것 아니다”라고 자신만만하게 발언했다. 2시간 전 본회의장에서 지은 곤혹스러운 표정과는 달리 발언을 하는 이석기 의원의 표정은 상당히 상기되어 있었다. 그는 이어 “우리가 이길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다. 전국 곳곳에 퍼져 있는 당원들의 힘이 있기 때문이다. 그들은 내가 이런 말을 하면 또 RO 조직원 전국에 심어놨다고 그럴지 모른다”라며 농담을 던지는 여유를 보였다. ‘RO’가 언급되자 발언을 듣고 있던 몇몇 당원들 사이에서는 똑같이 웃음이 터져 나왔다.
발언이 끝나고 이석기 의원은 당원들과 일일이 악수하며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일부 당원들은 울음을 터뜨리며 이석기 의원을 포옹하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로고가 새겨진 커다란 천에 사인을 받는 당원도 있었다. 30여 분 동안의 ‘행사’를 마치고 이석기 의원은 당원들에게 여유롭게 손을 흔들며 식당을 빠져나갔다. 이윽고 2시간쯤 후인 오후 8시경 이석기 의원은 국회의원 회관에서 국정원 직원들에 의해 전격 구인됐다. 식당에서의 당원들 만남이 이석기 의원으로서는 ‘최후의 만찬’이었던 셈이다.
한편 기자가 그 뒤에도 목격한 저녁식사 때의 통합진보당 내부 분위기는 침울함과는 거리가 멀었다. 오히려 서로를 다독거리며 “이제부터가 진짜 시작”이라는 의견이 주를 이뤘다. 통합진보당 한 고위관계자는 “현 상황에 대한 불만은 없다. 다만 실증적 증거도 없이 내란음모죄를 씌우는 것을 보고 법치주의가 제대로 서지 않았다고 보는 것이다”라고 전했다. 통합진보당 내부에서는 국정원이 내란음모의 유력한 증거로 내세운 녹취록을 증거로 보지 않는 시선들이 대부분이었다. 녹취록의 ‘유무’보다는 녹취록 자체에 ‘별 내용이 담겨 있지 않다’는 게 중요하다는 것이다.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흔히 청계천만 가도 완전무장 가능하다고 우스갯소리로 얘기하지 않나. 이것도 그런 맥락이다. 말 그대로 농담이다. 내부 당원들은 다 웃는다”며 “우리끼리 있으면 더한 얘기를 할 때도 있다”라고 전했다.
지난 4일 통합진보당 이정희 대표가 기자회견에서 발표한 “총기탈취니 시설파괴는 농담처럼 말하거나 누군가 말해도 웃어넘겼다”는 입장과 당원들의 입장이 정확히 일치하는 셈이다. 한때 통합진보당 당원으로 활동했던 한 관계자는 “일각에서는 이정희 대표가 국정원에 대한 대응논리로 ‘농담’을 꺼내들었다고 하지만 실제로 인식 자체가 그럴 가능성도 있다. NL(National Liberation) 계열 인사들이 흔히 하는 농담인데 뭐 그렇게 심각하게 생각할 필요가 있냐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하지만 이정희 대표의 ‘농담’ 발언은 “어떻게 그런 무책임한 변명을 할 수 있나”라는 격앙된 여론과 마주해야 했다.
사실 통합진보당 내부에서는 이번 사태를 국가가 벌이는 통합진보당에 대한 탄압으로 보는 시각이 많았다. 한 통합진보당 관계자는 “지난해 유시민 일당들이 분탕질을 쳐놓고 당이 쪼개질 당시에도 국가가 뒤에서 배후 조종하고 있다는 내부 여론이 있었다. 결국 민중정치를 표방하는 통합진보당 소속 국회의원들을 다 죽이겠다는 속셈이다. 이번 탄압도 그 연장선상에 있다고 보는 시각들이 상당하다”라고 전했다.
이석기 의원 체포동의안이 가결된 4일 국회의사당 앞에 모인 이 의원 지지자들(왼쪽)과 표결을 마친 뒤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와 손을 잡고 취재진 앞에 선 이 의원.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실제로 통합진보당 다수의 관계자들은 기자의 접근에 상당히 경계하는 모습을 보였다. 대방동 통합진보당 당사는 취재 불가 방침을 명확히 하는 한편, 수원에 위치한 통합진보당 경기도당 당사는 “기자의 출입을 금합니다”라는 안내문을 붙여놓기도 했다. 때문에 일각에서는 통합진보당 내부에 ‘기자 경계령’이 떨어졌다는 얘기가 나돌기도 했다. 통합진보당 안동섭 사무총장은 “앞으로 통합진보당의 두 가지 대응방안이 있다면 한 가지는 ‘법정투쟁’과 다른 하나는 ‘언론 환경 개선’이다. 언론 환경이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에 이 두 가지에 집중할 생각”이라고 전했다. 국정원과 언론, 사방이 적으로 가득한 시점에서 오로지 믿을 사람은 ‘당’과 ‘당원’밖에 없다는 것이다.
통일전문가 NK지식인연대 김흥광 대표는 “당이 추구하는 가치 하나만을 보고 이것을 ‘믿으라’는 전략, 전술은 마치 북한 노동당을 연상케 한다”며 “언론이 보도하는 것을 허위 보도로 돌리고 여론의 비판이 팽배한 이석기 의원을 계속 두둔하고 발맞춰 간다면 결국 남는 것은 국민들의 외면밖에 없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지난 5일 오후 9시쯤 수원 남부경찰서에서 구치소로 연행되는 이석기 의원의 모습을 지켜 본 시민들의 시선은 분노에 가까웠다. 한 시민은 “세금 아깝게 저런 것을 왜 국회의원을 시키냐”라며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기자는 이석기 의원의 ‘최후의 만찬’에서 통합진보당 인사들과 밤새 술을 마시며 그들의 입장을 이해하려 노력했다. 하지만 그럴수록 더욱 크게 느껴지는 것은 굳게 닫힌 그들만의 성벽이었다. “국민만 믿고 간다”던 이석기 의원의 발언은 공허했다. 그 뒤에 남은 건 한 돈키호테의 영웅놀이에 분노하는 국민들의 차가운 시선이었다. 그들이 사는 세상은 대한민국이 아닌 다른 나라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면 지나친 표현일까.
글·사진=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