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기원 가족은 아직도 그의 죽음을 자살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다. 사진은 윤기원의 생전 활약 모습. 연합뉴스
하지만 당시 유가족들은 경찰 발표에 반발하며 재수사를 요구했지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로부터 2년이 흘렀다. 그의 가족들과 팬들은 아직까지도 윤기원의 죽음을 자살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었다. 윤기원의 아버지 윤희탁 씨는 “아들은 자살이 아니고 타살이다. 아들의 죽음 뒤에는 거대한 음모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먼저 아버지 윤 씨가 제기한 의혹은 윤기원이 자살할 동기가 없었다는 점이다. 윤 씨는 “경찰 발표가 있고 다음날인 5월 10일 기원이 장례식장에서 여자친구라는 아이를 만나 아들과 문제가 있었는지에 대해 물었다. 그러나 그는 이미 4월 중순부터 윤기원이 먼저 거리를 두자고 말했고, 결국 4월 말에 헤어졌다고 말했다”고 밝혔다. 이어 주전경쟁에 대해서도 “그 당시 작은 부상이 있었지만 심각한 정도는 아니었다”라고 전했다.
윤기원의 주변사람들 역시 그가 자살을 택하리라고는 전혀 생각하지 못했다고 입을 모았다. 윤기원은 평소 성격이 과묵하고 자기 할 일을 잘하는, 힘든 일도 잘 견뎌내는 선수로 여겨졌다. 윤기원을 잘 알고 있던 축구계의 한 관계자는 “사건이 나기 일주일 전 경기장에서 윤기원을 만났다. 윤기원은 시즌 초반 몇 경기 선발로 출전했다가 당시 후보 명단으로 벤치에 있는 상황이었다. 부상과 주전경쟁, 여자친구 문제 등으로 많은 대화를 나눴지만 죽고 싶다고 할 정도로 힘들어하진 않았다. 그래서 크게 걱정하지 않았다”고 기억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며칠 후 윤기원의 죽음을 접하고 나서 돌이켜 생각해보니, 그때 기원이가 뭔가를 얘기하고 싶어 한다는 눈치가 있었던 것 같다”며 아쉬움을 표했다.
윤기원의 실종 당시 행적을 따라가 보면 그는 지난 2011년 5월 4일 오전 11시 구단에서 외출을 했다. 휴대폰이 꺼진 것도 이와 비슷한 시점. 윤기원은 오후 12시 20분 구단 근처 대형마트에서 맥주 6캔과 1만 3000원어치 안주를 샀다. 오후 3시 20분에는 가지고 나간 노트북으로 자살사이트를 검색했다. 그 후 하루가 지난 5월 5일 오후 11시 46분 경부고속도로 하행선방향 만남의 장소 휴게소로 들어가는 입구 CCTV에서 휴게소로 진입하는 윤기원의 차량이 포착됐고, 5월 6일 오전 11시 40분 차량에서 윤기원의 시신이 발견됐다.
아버지 윤 씨는 “휴게소 진입부터 시신 발견까지 12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아들의 시신은 부패가 심하게 진행돼 사망시간도 추정할 수 없을 정도였다. 다른 부검 전문의에게 문의한 결과, 5월초 날씨를 감안했을 때 12시간 만에 그 정도로 부패가 진행될 수는 없다는 소견이 나왔다. 다른 지역에서 사망 후 어떤 이들에 의해 발견 장소로 이동된 거다. 따라서 경찰이 고의적으로 사망시간을 숨기고 있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어 그는 “차에서 발견된 맥주캔과 안주를 산 기록은 있지만, 자살도구로 쓰인 번개탄과 화로를 산 행적은 어디서도 찾지 못했다. 사지도 않은 물건들이 어디서 나왔겠느냐”라고 덧붙였다.
그러나 아버지 윤 씨의 이 같은 주장에 대해 경찰 검시팀의 한 관계자는 “일반적으로 일산화탄소 중독에 의한 사망일 경우, 체내에 들어간 일산화탄소가 혈관 속 세균 순환을 빠르게 해 다른 시신보다 부패가 빨리 진행된다. 물론 차량의 색, 주차 방향, 내부 온도와 환경 상태 등 다양한 변수를 고려해야하겠지만, 윤기원의 시신이 12시간 만에 사망시간을 추정하기 힘들 정도로 부패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한편 축구계 일각에서는 윤기원의 죽음을 두고 K리그 승부조작 파문에 연루돼 자살을 택했다는 소문이 돌기도 했다. 실제 윤기원이 죽고 얼마 지나지 않아 K리그에서는 승부조작 사건의 광풍이 불었다. 그러나 아버지 윤 씨는 그것은 절대 사실이 아니라고 강변했다. 오히려 윤기원이 승부조작에 협조하지 않아 브로커와 조직폭력배들에게 죽임을 당한 거라고 추측했다. 윤 씨는 “기원이의 장례식장을 찾은 동료 선수들로부터 이야기를 듣다가, 아들이 죽기 3주 전부터 ‘기원이가 승부조작에 협조하지 않아 없애버리겠다’ ‘윤기원은 이미 죽은 목숨이다’라는 등의 소문이 돌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이후 아들의 죽음을 조사하며 복수의 축구 관계자들로부터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유가족들은 왜 경찰이 윤기원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숨기려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 아버지 윤 씨는 “당시 프로축구 승부조작 사건은 단순히 가담한 선수들과 브로커, 폭력조직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이미 주변 선수들과 구단에서도 눈치를 채고 쉬쉬하는 문제였을 수도 있고, 그 이상 고위층까지 결탁한 사건일 가능성도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기원이의 죽음이 밝혀지면 승부조작을 시행한 범죄조직과 그 윗선까지 드러나게 될까봐, 그것을 감추기 위해 아들의 죽음을 자살로 조작했을 수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하지만 당시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의 한 관계자는 윤기원의 사망 의혹에 대해 “사건 발생 당시 수사를 제대로 진행했다. 더 이상 할 말이 없다”며 불쾌한 심정을 내비쳤다.
윤 씨는 아들이 죽은 지 800여 일이 넘게 지난 현재까지도 사망신고를 하지 않고 있다. 차마 사망 이유를 쓰는 곳에 ‘자살’이라고 남기고 싶지 않았던 것. 대신 윤 씨는 윤기원을 알고 있는 지인들과 함께 아들의 사망에 대한 진실을 밝히기 위한 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윤 씨는 “기원이의 죽음에 얽힌 의혹들 중 몇 가지 정황들은 파악했지만, 아직 구체적인 물증은 확보하지 못한 상태”라고 설명했다.
때문에 윤기원의 동료선수와 관계자들의 양심고백이 절실한 상황이다. 아버지 윤 씨는 “기원이 선후배 중에 누군가가 아들의 죽음에 대한 비밀을 알고 있다는 말을 들었다. 우리가 원하는 것은 처벌보다 기원이 죽음에 대한 진실”이라고 호소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
“수면제·외상 없다고 자살 단정 어려워”
손호영의 전 여자친구가 자살한 손호영 소유 차 내부. 임준선 기자
올해 1월 전북 전주시 송천동의 한 아파트에서 일가족 4명 가운데 3명이 연탄가스에 중독돼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건은 첫째 아들이 생활고를 비관해 가족들과 동반자살을 시도한 것으로 보였다. 가족 중 둘째 아들 박 아무개 씨(25)만이 유일하게 살아남았다. 그러나 경찰은 유서가 발견되지 않았고, 외부 침입 흔적이 없었으며 사체에 외상이 없는 점을 수상히 여겨 타살 가능성에 대해 집중 수사를 벌였다. 그 결과 놀랍게도 범인은 둘째 아들 박 씨로 밝혀졌다. 박 씨는 아버지와 어머니, 그리고 형에게 수면제를 탄 음료수를 먹여 잠들게 한 뒤 미리 준비한 연탄 화덕에 불을 붙여 일산화탄소 중독으로 자살한 것처럼 위장 살해한 것으로 밝혀졌다.
위의 사례들을 비롯해 연탄가스를 이용한 일산화탄소 중독 질식사 사망 사건에서는 한 가지 공통된 점이 발견된다. 일산화탄소 중독에 앞서 수면제나 술이 등장한다는 것이다. 공정식 범죄심리전문가는 “연탄가스를 이용한 자살이나 타살의 경우 피해자의 대부분이 수면제나 술을 먹는다. 깨어있는 상태에서는 일산화탄소 흡입을 버티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피해자가 맨 정신인 상태에서 일산화탄소를 이용해 타살을 하려면, 피해자가 움직이지 못하게 고정을 해야 하기 때문에 시신에서 폭행이나 압박 등 외상 흔적이 남게 된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윤기원 사망의 경우 사체에서 수면제 성분이 검출되지 않았다. 윤기원의 시신이 발견된 차량 안에서 맥주캔 6개가 발견되긴 했지만 혈중 알코올 농도 역시 0.01% 미만으로 나와 거의 술을 마시지 않은 상태였다. 사체에서 억류된 외상 흔적도 발견되지 않았다.
이에 대해 경찰의 한 관계자는 “윤기원 선수의 사체에서 수면제 성분이나 외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사실만 가지고 자살이다, 타살이다 단정 짓기는 어렵다. 하지만 수면제를 사용하지 않고 또한 외상도 남기지 않고 자살로 위장하는 수법도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귀띔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