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인섭 한나라당 의원(왼쪽), 권정달 자유총연맹 총재 | ||
문제의 기업은 민영화방침에 따라 매각 대상으로 나온 한국전력(KEPCO) 자회사 한전산업개발(한산). 한해 순이익이 80억원대에 이르는 알짜기업이다. 자유총연맹은 2년 가까이 문을 두드린 끝에 지난 11월2일 ‘한산’의 매각 우선협상자로 선정됐다.
하지만 최근 여기에 보이지 않는 브레이크가 걸렸다. 한나라당 강인섭 의원측에서 ‘자유총연맹의 공기업 인수의 부당성’을 지적하고 나섰기 때문. 더 나아가 강 의원측은 “한전 고위층과 ‘상의’한 결과 매각 작업이 내년 3월 이후로 ‘보류’된 상태”라고 밝혀 파문을 던지고 있다.
자유총연맹 권정달 총재는 이에 대해 “만약 매각 건이 보류된다면 소송도 불사하겠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나선 상태. 과연 자유총연맹의 한산 인수 프로젝트가 표류하게 되는 걸까. 자유총연맹은 지난 11월2일 ‘한산’의 매각입찰 우선 협상자로 선정돼 세인들의 시선을 끌었다. 흔히 관변단체로 불리는 자유총연맹이 공기업의 알짜 자회사를 인수하게 된 배경을 놓고 갖가지 얘기가 흘러나왔기 때문이다.
한산은 직원 2천6백여 명에 지난해 매출액 1천4백9억원, 순이익만 82억원을 올린 짭짤한 기업. 한국전력의 부동산 관리와 전기 검침업무 등을 대행하는 자회사다. 자유총연맹은 지난 2001년 4월 정부의 ‘공기업 민영화 방침’이 발표되고 난 뒤부터 줄기차게 한산을 공략해오다 결국 이번에 대어를 낚게 되었다.
사실 올해 5월 마감됐던 한산 입찰에는 월남참전전우회 4.19혁명부상자회 등 갖가지 사회관련 단체가 대거 가세해 일각에서는 그 배경을 놓고 뒷말이 무성했다. 또한 자유총연맹이 이런 ‘경쟁자들’을 제치고 우선 협상 대상자로 선정되자 의문을 드러내는 이들도 적지 않았다.
국회 산자위(위원장 박상규 의원)에서 활동하고 있는 한나라당 강인섭 의원은 “자유총연맹은 비영리 관변단체로서 한산을 인수하는 것은 그 설립취지와 사업목적에도 맞지 않을 뿐 아니라 진정한 공기업 민영화에도 배치된다”고 주장했다.
이에 덧붙여 강 의원은 “자유총연맹이 사상 최초로 관변단체가 국영기업을 인수하는 선례를 남기면 다른 관변단체도 잇달아 인수전에 나설 게 불을 보듯 뻔한 일이다. 그러면 관변단체 본래 결성 목적은 퇴색하고 수익사업에만 열을 올릴 것이다”고 말했다.
▲ 한산이 운영하는 한성프라자 앞에서 한산노조 가 매각 반대 농성을 벌이고 있다.우태윤 기자 wdosa@ilyo.co.kr | ||
강 의원실의 한 관계자는 “지난 11월11일쯤 한전의 한 고위 인사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이번 한전 인수건을 어떻게 처리하면 좋겠느냐는 것이었다. 이에 대해 우리는 ‘이번 인수건은 보류하는 게 좋겠다. 정부로서도 부담스러운 일이다. 내년 3월까지 연기하는 게 좋겠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에 따르면 한전의 고위 인사 또한 보류에 대해 동의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강 의원도 <일요신문>과의 인터뷰에서 “국회 산자위에서 신국환 장관으로부터 ‘한전 사장에게 지시해서 보류하도록 하겠다’는 대답을 들었다”고 말하며 매각 3월 연기설을 기정사실화했다.
사실 내년 3월까지 이번 매각건을 보류한다는 것은 자칫 입찰 자체가 번복될 수도 있다는 뜻으로도 해석될 수 있다. 기자가 강 의원에게 “왜 내년 3월까지 연기해야 하느냐”고 묻자 “내년 2월25일이면 새 정권이 들어선다. 그때까지 연기를 해야 대선 뒤에 꾸려질 정권인수위에서 이 문제를 다시 스크린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말은 정권인수위에서 한산 매각문제를 다시 심의해 부정적인 결론이 나오면 매각건 자체가 뒤집어질 가능성도 있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어 주목된다. 강 의원은 또한 이번 매각건이 정치적으로 이용될 소지가 많다며 더욱 적극적으로 저지할 태세다. “권정달 총재는 얼마 전까지 민주당 고문을 지냈다. 이번 인수건의 혜택을 입은 자유총연맹이 50만 회원을 앞세워 여당을 지지한다면 어떻게 되겠나. 그리고 대민접촉이 활발한 검침원들도 선거운동에 이용될 소지가 있다.” 강 의원측에서 제기된 매각보류설에 대해 권정달 자유총연맹 총재는 상당히 격한 감정을 드러냈다.
권 총재는 “나도 국회의원 여러 번 한 정치인 출신이다. 왜 정치인들 논리에 발목이 잡혀 이번 입찰이 좌지우지되어야 하나. 이번 일로 장난치는 사람이 있으면 가만두지 않겠다. 모든 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맞서 싸울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또한 권 총재는 ‘관변 단체가 한산을 인수하는 것은 도덕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일부 비판에 대해 “재향군인회 같은 단체도 중앙고속과 고속도로의 휴게소 사업, 그리고 한전의 폐처리장 사업에 적극 나서 수익사업을 잘 하고 있다.
또 상이군경회도 검침사업을 하면서 돈을 벌고 있지 않나. 왜 자유총연맹은 돈 버는 사업에 나서면 안되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정가 일각에서는 이번 자유총연맹의 한산 인수건에 정치적 입김이 있었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는 게 사실. 강 의원이 ‘자유총연맹이 여권 선거전에 활용되지 않을까’ 우려하는 것과 맥을 같이 하는 시각이다.
하지만 권 총재는 이런 소문에 대해 “그 얘기도 전혀 사실이 아니다. 민주당적을 버린 지도 오래됐다. 그리고 신국환 산자부장관을 만난 사실은 있지만 이번 매각건과 관련해서는 전혀 도움을 받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한편 강 의원측이 언급한 매각 보류설에 대해 한전과 산자부의 관계자는 “보류는 있을 수 없다”고 한목소리로 밝혔다. ‘매각 보류설’의 실체가 공식적으로는 확인되지 않는 상황인 셈이다. 한나라당 일각에선 한산 매각을 정치 논리로 접근하고 있다.
이들은 한산이 자유총연맹으로 완전히 넘어가면 최소한 수십만 표의 ‘조직원’들이 민주당을 위해 발품을 팔 것이라는 염려 때문에 매각에 적극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한전의 민영화 일정이 정치논리로 발목이 잡히는 것에 대해선 반대의 목소리도 높다. 정작 한산의 또 다른 ‘주체’인 노조원들은 지금도 칼바람 부는 한성프라자 앞마당에서 “매각 반대”를 외치며 외로운 투쟁을 계속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