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한 핵개발은 80년대 후반부터 이루어졌고 특히 91년 소련 붕괴 뒤 수백명의 러시아 핵 전문가들을 스카우트해 참여시킨 것으로 드러났다. 지금까지 북한의 핵폭탄 유무에 대한 논란은 있었지만 이 문서는 핵폭탄 보유를 구체적 문건과 함께 기정사실화하고 있다는 점에서 관심을 모으고 있다.
▲ 북한의 핵무기 개발은 김정일의 주도 아래 이미 지난 80년대 후반부터 시작됐다는 충격적인 내 용이 최근 일본 <문예춘추>에 공개됐다. | ||
지난달 3일 방북했던 제임스 켈리 미국 국무부 차관보는 자신의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회담 상대역인 강석주 북한 외무성 제1부상의 입에서 “너희 나라 대통령은 우리를 ‘악의 축’라고 말했고 너희 군대는 한반도에 배치돼 있다. 우리는 물론 핵 계획이 있다”는 폭탄선언이 터져나왔기 때문이다.
당시 켈리 차관보는 이 말에 매우 놀랐다고 한다. 사실 켈리 차관보는 북미회담 첫날부터 북한의 비밀 핵개발 계획에 대한 정보를 갖고 있다는 ‘증거’를 들이대면서 북한을 강력하게 밀어붙이고 있었다. 그런데 첫날 회담에선 이를 강력히 부인하던 북한이 둘쨋날 회담 말미에 갑자기 태도를 바꿔 폭탄선언을 해버린 것이다.
미국의 일부 언론은 강석주 부상이 “우리는 더 강한 것들도 갖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보도했다. 또한 ‘강석주는 제네바합의를 깬 것에 대한 미안함은 전혀 없었으며 단호하고 공격적인 모습이었다’고 이들 언론은 밝히고 있다. 이런 북미간의 급박한 외교관계를 배경으로 아키라씨는 지난 12년 동안 수집해온 러시아의 각종 기밀문서를 토대로 북한 핵개발을 ‘검증’하고 나선 것이다.
그는 부시정권이 북한의 핵 위협을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것 같다고 분석하고 있다. 다음은 그가 <문예춘추>에 기고한 내용이다. 나는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계획을 지난 12년간 취재해 왔다. 북한의 핵 시설은 1950년대 원자력발전에서 시작됐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당시 구 소련은 북한과 원자력평화이용 협력협정을 체결하고 원자력 발전소 건설을 지원했다.
나는 북한의 핵 개발과 관련하여 러시아 국방성, 핵에너지부 등을 취재하고 전 평양대사를 만나면서 놀라운 자료와 마주쳤다. 그것은 러시아 국방성의 극비문서였다. 취재를 하던 중 ‘아시아•태평양 지역의 현 군사상황에 대해서’(93년 10월22일 작성)라는 러시아 국가최고 기밀문서가 존재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것은 러시아 국방성 참모본부 내에 설치된 군사전략센터가 작성하고 옐친 당시 대통령과 파벨 그라초프 국방장관도 관심있게 보고받는 문서였다.
이 문서는 암호가 없으면 접근할 수 없는 대형컴퓨터에 보관되어 있었다. 93년 말 이 문서를 입수하기 위해 취재팀은 참모본부의 한 직원에게 접근했다. 접선장소는 모스크바 국방성 근처 공사중인 건물이었다. 조건은 나 혼자만 접선장소에 나와야 한다는 것.
이렇게 해서 국방성 컴퓨터에서 갓 뽑은 서류를 손에 넣을 수 있었다. 이 문서는 80년대 후반 북한에서 일한 러시아 과학자들의 말을 듣고 북한의 핵 개발상황을 분석한 것이다. 다음은 이 문서를 발췌한 내용이다. “80년대 후반 소련의 직접 원조 아래 중거리 탄도미사일 ‘노동 1호’ 개발이 진행되었다.
노동 1호는 항속거리 1천km에서 6천1백km, 명중률은 오차가 1백~2천m, 탄도의 폭발력은 1메가톤에서 2메가톤이다. 탄도는 히로시마 원자폭탄과 같은 것으로 속도는 최고 마하 9를 넘는다. 핵탄두 제작은 최종완성단계에 접어들었다.
이와 동시에 ‘노동 2호’ 개발도 추진하고 있다. 북한은 우라늄235를 10kg에서 12kg, 플루토늄239를 20kg 갖고 있다. 러시아 핵 전문가는 이 양은 핵탄두 세 개에서 다섯 개를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한다. 가장 강력한 핵 시설은 평양에서 90km 떨어진 영변에 있다. 소련은 북한에게 우라늄을 농축할 수 있는 원심분리기를 제공했다.”
문건 내용은 경악할 만한 것이었다. 세계가 주목하고 있는 북한의 핵 시설에 대해 ‘최종완성단계’라고 확실히 못박고 있기 때문이다. 다른 러시아 참모본부 간부 A의 발언은 더욱 충격적이다. “이제 와서 핵 사찰이라니 웃긴 일이다. 북한은 이미 히로시마형 핵폭탄 제조는 끝낸 상태고 적어도 핵폭탄 한 개는 보유하고 있다.
이는 우리 간부들 사이에선 공공연한 사실이다.” 그는 또한 “북한은 러시아 과학자를 이용해 94년 말까지 히로시마형 원자폭탄을 적어도 세 개는 개발할 계획을 진행중”이라고 덧붙이면서 “영변의 핵 처리공장에서 소련에게 받은 원심분리기로 순수 농축 우라늄과 플루토늄239를 추출했다. 지금 플루토늄만도 20kg은 갖고 있다. (94년 당시) 플루토늄 8kg으로 핵탄두 한 개를 만들 수 있었으니 어림잡아도 한 개나 두 개는 개발했을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 저널리스트 가토 아키라 | ||
실제로 91년 소련붕괴 이후 북한은 소련의 과학기술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가져오려 했다. 그리고 겨우 3년 만에 핵 개발에 성공한 것이다. 앞서 얘기한 참모본부의 A씨는 “북한은 러시아 기술자들을 스카우트했다. 3천달러(약 3백60만원)에서 4천달러에 달하는 월급에 고급주택, 자동차, 의류, 식료품 등 각종 특별대우를 보장했다.
당시 북한으로 간 기술자는 2백 명에 달한다. 우린 그들의 동향을 이미 파악하고 있다”고 증언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김일성•김정일 부자는 핵 개발을 서두른 것일까. 앞서 말한 참모본부 간부 A씨는 “걸프전에서 이라크가 미국의 순항미사일에 맥을 못 추는 모습을 봤다. 최소한 미국을 협박할 장거리 미사일은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판단했을 것이다”라고 추측했다.
하지만 러시아연방 산업부 일반기계제작국장 와렌친 스테파노프(미사일 및 우주기술 개발담당)는 92년 옐친 정권이 들어선 이후 러시아와 북한간에 ‘공장시찰을 포함한 미사일 기술원조와 우주개발을 협력한다’는 요지의 비밀교섭이 있었음을 시인했다.
김정일은 소련 붕괴 이후 새삼 러시아로부터 무기개발지원을 받으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표면으로는 러시아와의 협정을 내세웠지만 뒤로는 러시아 과학자를 채용하려는 계획이었다. 스테파노프는 이렇게 회상한다. “나는 북한의 미사일•로켓 공장을 방문했다. 거기서 만난 북한의 미사일 연구자는 상당히 높은 수준에 올라 있었다. 러시아에 와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공동연구개발 때문에 교섭을 하다가 무심결에 북한측에 러시아 로켓 개발상황과 그 분야를 담당하는 과학자 이름을 대고 말았다.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것이 그들이 원하던 것이었다.”
결국 북한은 교섭을 빌미로 러시아 로켓 개발자에게 접근해 국가기밀에 해당하는 러시아 첨단과학기술자 이름을 알아내고 싶었던 것이다. 다음은 그 과학기술자들과 직접 만나 평양으로 스카우트하면 끝이었다. 스테파노프가 러시아로 돌아가고 1개월 뒤에 러시아의 저명한 과학자 일곱 명이 사라졌다. 이로써 스테파노프는 북한의 진의를 파악했다.
결국 그의 요구로 러시아 첩보조직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중심인물로 루프초프(탄도학의 권위자)가 떠올랐다. 그 당시를 러시아 공안당국의 한 전문가는 이렇게 말한다. “그는 북한의 뜻에 따라 러시아 과학자를 평양으로 데려가려 한 장본인이다. 모스크바 북한대사관에 있는 N소장의 의뢰를 받아 모스크바 교외 핵 연구소를 중심으로 1백96명의 러시아 국적 과학자를 북한으로 보낼 계획을 세웠다.”
그는 세계제일의 과학자일 뿐 아니라 물리학과 탄도학의 권위자였다. 게다가 유체역학의 대가와 함께 일하고 있었다. 그런 그를 북한이 스카우트하려 했던 것이다. 하지만 그 멤버와 가족이 출국하려던 92년 10월, 러시아 공안당국이 전원을 체포했다. 체포하고 난 뒤 스테파노프는 북한의 N소장을 불러 항의했다고 한다.
이 사건은 러시아 정부에 북한이 핵 개발을 위해서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인식시키기에 충분했다. 북한의 핵 개발과 관련한 또 다른 문서도 취재팀이 입수했다. 그것은 소련 붕괴 전인 지난 90년 2월22일 전 KGB 요원에게서 입수한 ‘북한 핵무기 개발문제에 대해서’라는 문서였다.
문서 끝에는 당시 우는 아이도 이름만 들으면 그친다는 KGB 우두머리 크루추코프의 사인이 있었다. 이것으로 보아 가짜 문서는 아닌 것 같았다. 취재팀이 이 문서를 손에 넣은 것은 지난 93년. 구 소련의 문서라 할지라도 이 문서는 많은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이 문서도 간략히 소개하도록 한다.
“KGB는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위해 과학적 연구와 실험, 미사일 설계작업을 활발히 진행하고 있다는 정보를 얻었다. 김정일과 그의 측근 군인들은 핵무장만이 군사적 우위를 가져다 줄 것으로 믿고 있다. 북한은 은근히 핵보유 국가 명단에 들고 싶어한다고 추측된다. 입수한 정보에 따르면 평안북도 영변에 있는 핵 개발센터에서 ‘핵 기폭장치’가 최초로 완성됐다고 한다.” 특히 주목할 만한 것은 ‘김정일과 그의 측근 군인들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는 실태를 보고하고 있다는 점이다.
김일성 체제 당시도 아들인 김정일이 실권을 장악하고 핵 개발에 앞장섰다는 것이다. 러시아인 과학자 한 명도 “핵개발에 관해서는 어떤 문제든 반드시 김정일을 거치지 않으면 안됐다”고 밝혔다. 김정일이야말로 핵 개발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다.
또 하나 주목할 것은 90년에 이미 ‘핵 기폭장치’가 개발됐다는 것이다. 그 후 3년이 지난 93년에도 북한이 플루토늄만 보유하고 있을 뿐 기폭장치는 없다는 것이 대세였던 것을 미루어보면 놀랄 일이다. 이 문서에 대해 직접 관련했던 전 KGB 의장 크루추코프는 이렇게 증언하고 있다.
“이 문서는 내 직속 부하이던 KGB 제2총국 부국장인 스모레노프가 쓴 것이다. 정보원은 가장 신뢰할 수 있는 북한 현지인 스파이였다. 솔직히 이런 정보를 보아도 나로선 의구심이 든다. 식료품과 석유 원조를 소련에 청했던 가난한 나라에 이런 고도의 기술력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만약 이 정보가 맞는다면 어느 나라가 지원했는가. 소련인가, 중국인가. 중국이 북한에 핵을 갖게 한들 무슨 메리트가 있겠는가. 그렇다면 소련인가. 하지만 소련 지도부는 북한 핵 개발계획을 협력하라는 지시는 한 번도 내린 적이 없다.” 그래서 크루추코프는 러시아 핵정보가 북한으로 흘러 들어간 것은 아닌지 급히 확인을 지시했다.
그는 말을 잇는다. “이를 고르바초프가 있는 중앙위원에 보고했다. 이를 본 위원들은 길길이 뛰었다. 셰바르드나제가 ‘우리에게 비밀로 핵 개발을 한 북한을 이대로 둬도 괜찮은가. 핵확산방지조약도 있고 이렇게 두면 안 된다. 김일성을 당장 불러야 한다’고 제안했다.” 정리=성기노 기자 kino@ilyo.co.kr 이연주 해외정보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