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강덕수 회장, 현재현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 9월 횡령 등의 혐의로 항소심에서도 유죄판결을 받아 구속 상태가 지속되고 있다. 대법원에서 판결이 뒤집히는 ‘이변’이 일어나지 않는 한, 적어도 3년여 동안은 회의에서 그 모습을 볼 수 없다. 김승연 한화그룹 회장은 대법원에서 일부 혐의가 파기환송돼 재심을 기다리고 있다. 내년 초에나 그 신분이 자유로워질지 판가름 날 예정이다. 박용만 두산그룹 회장은 대한상공회의소 회장직을 맡고 있어 전경련 활동까지 챙길 여력이 없다.
이런 와중에 강덕수 STX그룹 회장과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은 유동성 위기 등을 겪으며 그룹 해체 국면을 맞아 모두 부회장 자리를 내놓았다. 회원 자격 자체도 유지하기 힘든 상황이다. 현 회장은 동양그룹 사태가 악화하자 전경련 주관인 한미재계회의 위원장직도 사임했다. 현 회장과 강 회장은 전경련 활동에 매우 적극적인 편이었다. 여기에 재계를 대표하는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과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 구본무 LG 회장, 김준기 동부그룹 회장 등은 특별한 일이 아니면 회의에 불참해왔다.
지난 8월 박 대통령과 10대그룹 회장단의 오찬 회동. 청와대는 이 회동을 준비할 때 전경련을 통하지 않고 개별 기업과 ‘직통’ 했다고.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전경련은 지난 1961년 창립 이후 주요 그룹과 기업들을 회원사로 거느리며 재계를 대표하는 단체로 자리 잡았다. 위기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외환위기 직후인 1999년이 대표적이다. 당시 20명의 회장단 가운데 최원석 동아그룹 회장, 김선홍 기아차 회장, 김중원 한일그룹 회장 등이 그룹 부도로 회장단에서 사퇴했다. 회장이던 김우중 대우그룹 회장도 그룹 해체로 회장직에서 물러났다.
재계에선 이번 전경련 위기가 1999년보다 더 심각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각종 불법으로 사회적 지탄이 대상이 된 오너들이 많은 까닭에서다. SK, 한화그룹에 이어 삼환기업, STX, 동양그룹에다 회장단은 아니지만 전경련의 핵심 회원사들의 수난사가 이어지고 있다. 경영난의 책임을 지고 회장직을 사퇴한 윤석금 전 웅진그룹 회장은 그렇다 치더라도 이재현 CJ그룹 회장을 필두로 전경련 회장까지 지낸 조석래 효성그룹 회장, 구자원 LIG그룹 회장 등이 검찰 수사를 받거나 구속돼 있다. 재계 관계자들 사이에는 “자고나면 그룹 총수가 사라진다. 내일은 누구냐”는 이야기까지 돌고 있다.
전경련이 주요 회원사 오너들의 이탈로 회장단회의의 정상적인 운영이 힘들어졌다. 사진은 전경련 건물 전경. 박은숙 기자 espark@ilyo.co.kr
대기업들이 수난을 겪고 고전하는 상황은 곧 이들의 대표단체인 전경련의 위상과 직결된다. 재계가 전경련의 위상 약화를 거론하는 이유다. 실제로 지난 8월 청와대에서 열린 박근혜 대통령과 10대그룹 회장단의 오찬 회동에서 전경련은 사실상 ‘역할’이 없었다. 통상 그런 모임의 경우 청와대가 전경련을 통해 통보하고 일정을 조정했지만, 이번에는 개별 기업과 ‘직통’했다.
청와대나 정부가 대기업과의 소통 창구로 전경련을 배제할 경우, 자연스럽게 전경련은 힘이 빠질 수밖에 없다. 한 대기업 임원은 “현 정부가 경제민주화를 공약으로 내세우고, 중소기업 중심의 경제를 강조하면서 의도적으로 대기업 대표인 전경련을 배제한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전경련이 해체 위기야 맞지 않겠지만 과거와 같은 위상을 기대하면 안 되는 것이 시대적 흐름”이라고 말했다.
전경련에 대한 여론도 고울 리 없다. 잇따르고 있는 대기업 오너들의 수난사는 기업을 불법과 편법, 부도덕한 집단으로 비치게 만들었다. 대기업들의 위기는 곧 전경련의 위기인 셈이다.
박웅채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