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4회 전국체육대회에서 열린 바둑 종목. 바둑은 아직 정식 종목이 아닌 동호인 종목에 머물고 있다.
2003년 부안에서 데뷔할 때 바둑이 정식종목이 되는 것은 시간문제 같았다. 2005년 대한바둑협회가 창립될 때, 이제는 1~2년 안에 정식종목이 될 것이라는 기대가 부풀고 있었다. 2009년 정가맹단체로 승인 받자, 2010년부터는 다른 종목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고 운동장에 들어가는 그림을 그리며 준비를 서두르고 있었다.
2010년 중국 광저우에서 제16회 아시안게임이 열렸고, 바둑이 거기 들어가 있었다. 우리는 남-여-단체, 3개 부문 금메달을 싹쓸이하고 돌아왔다. 이제 정식종목이 되는 데에 걸림돌은 없을 것 같았다. 대한체육회에서 먼저 들어오라고 손짓할 것 같았다.
그러나 아직 소식이 없다. 이번 전국체전에 참가한 선수, 관계자들 중에는 “내년에는 확실하다”고 장담하는 사람이 있었다. “정식종목이 되기 위한 모든 ‘사전 과정’을 마쳤다”는 것이었다. 과연? 오래 기다려왔지만. 내년이라도 된다면 지난 12년의 기다림이 헛되지 않을 것.
그런데 지금까지 왜 이렇게 안 되고 있는 것일까. “바둑의 체육 변신에 대해 아직도 바둑계 안팎에서 전적으로 동의하고 있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을 첫째 이유로 꼽는 지적이 많다. 2001년 무렵 한국기원이 주도해 바둑의 체육 전환 100만인 서명운동을 벌일 때부터 지금까지 “바둑은 체육이 될 수 없다”는 주장이 엄존한다는 것. 바둑계 내부에서도 그렇고 체육계에서도 그렇다는 것. 아닌 게 아니라 앞으로도, 바둑이 정식종목이 된다 해도 그런 논란을 명쾌하게 정리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체육은 근육을 사용하는 것인데, 바둑이 무슨 근육을 사용하느냐? 아니, 사격도 스포츠 아니냐? 손가락만 사용하는 사격이 스포츠인데, 바둑은 손가락은 물론 팔 전체를 사용한다. 바둑 한 판을 두려면 팔 운동 손가락 운동을 얼마나 하는 줄 아느냐…^^ 바둑이 스포츠가 아니라고 말하는 것은 무지의 소치 아닌가. 두뇌스포츠라는 걸 모르나? 마인드스포츠라는 걸 모르나?
전국체육대회에서 바둑 종목 대표로 진승재와 송예슬이 페어플레이를 다짐하는 선서를 하고 있다.
‘바둑 스포츠’를 추진하고 있는 쪽에서 정식종목은, 과장을 좀 한다면, 사활이 달린 일이다. 정식종목이 되면 나라에서 구체적으로 지원할 것이며, 초-중-고 각급 학교에는 바둑부가 생길 것이고, 바둑 감독 코치 선수 등 일자리가 폭발적으로 창출될 것이다. 바둑 인구도 엄청 늘어날 것이다. 그러면 바둑의 앞날도 훤해진다는 것. 그러니 바둑을 사랑하다면, 바둑이 체육이냐, 아니냐는 논란은 바둑의 미래가 보일 때, 그 뒤로 미루고 일단은 힘을 보태는 것이 마땅하지 않느냐.
그런 희망 자체를 부정하고 싶지는 않다. 그러나 솔직히 요원한 것 아니냐. 무엇보다 체육의 다른 종목들이 바둑을 고운 눈으로 보겠느냐. 체육회 예산을 나눠갖자고 들어오는 반갑지 않은, 이방인 정도로 보지 않겠느냐. 10년이 지나도록 안 되고 있다면 안 되는 거라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 오늘 보니 정식종목 44개, 시범종목 2개의 일정만 있고 동호인종목은 그것조차 없는데… 휴우~ 딱하기도 하고, 분하기도 하고, 기분이 좀 그렇다.
첫날 대회를 마치고 인천시바둑협회 김용모 회장이 마련한 뒤풀이 자리에서 화살은 결국 한국기원과 대한바둑협회로 날아갔다. 12년 동안 뭘 했느냐는 것. 절차나 방법을 잘 몰랐다고? 준비하는 기간이었다고? 그게 말이 되나? 인천 아시안게임엔 왜 빠졌는데? 왜 마이너인 실내-무도 아시안게임에서 조그맣게 움직이고만 말았는데? 몰라서? 준비하느라?
화살은 인천시에도 날아갔다. 송영길 시장이 바둑은 안 된다고 그어버렸다면서? 그러기야 했겠어? 정치인들은 결국 표야. 말로 좋게 해선 안돼. 표로 말해야지. 100만인? 그렇게까지도 필요 없어. 2000명이나 3000명만 서명해서 들고 가면 말이 달라질걸. 서명하면 다 된다고? 바둑계에서 서명을 한두 번 해 봤나? 서명도 잘해야 돼. 한국기원이나 대바협처럼 하면 안 돼. 작년에도 인천에서 바둑계 주요 인사들이 인천에서 거리 서명도 받고 그랬는데, 그래도 안됐잖아.
젊은 선수들은 정식종목에 비원에 가까운 바람을 갖고 있다. 그것 말고, 다른 미래는 잘 보이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그걸 생각하면 가슴이 좀 답답해진다. 바둑이 체육이냐, 아니냐는 논란은 또 다음 다음 문제다. 우리 젊은이들의 미래가 좌우되는 일이라면 바둑이 체육이 아니라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우리도 기꺼이 양보할 것”이라고 물러선다. 이에 대해서도, 꽃다운, 소중한, 바둑 아니라 무엇을 해도 잘할 재주 있는 젊은 인재들의 장래에 대해, 바둑계,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한국기원과 대바협, 한국 바둑을 대표한다는 그런 단체의 수뇌부는 조금은 책임을 느껴야 한다. 느끼고 있겠지만 좀 더 아프게 느끼기를 바란다. 바둑은 과거에, 암울하거나 답답하거나 하던 시절에, 우리에게 희망을 주었다. 지금 그 역할을 할 때다.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