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G전자가 올해 초 공개한 ‘옵티머스 G PRO’. LG전자는 ‘옵티머스’ 시리즈와 ‘G2’로 글로벌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지만 좀체 판매량을 늘리지 못하며 후발 중국 업체에 스마트폰 시장 3위 자리를 내줬다. 왼쪽은 구본준 부회장. 연합뉴스
구 부회장은 LG전자 위기를 타개할 수 있는 적임자로 평가받았다. 과감한 결단과 추진력을 발휘해야 하는 시기였던 만큼 오너이자 ‘전투형 용장’으로 알려진 구 부회장이 수렁에 빠진 LG전자를 구해줄 것으로 전망했다. 그리고 3년. LG전자의 ‘구본준호’는 비교적 후한 평가를 받고 있다. 위기 탈출에 성공한 데다 제자리를 찾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최근 LG전자를 바라보는 위태로운 시선이 부쩍 많아졌다. 3년 전 LG전자를 괴롭히던 위기론이 또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 아이러니하게도 3년 전 위기의 핵심 원인이었던 스마트폰이 이번에도 LG전자의 발목을 잡고 있다. 3년 전 ‘스마트폰 시장에 늑장 대처’로 큰 위기에 빠졌다면 이번에는 스마트폰 시장이 점점 포화 상태에 다다르고 있어 LG전자의 스마트폰이 큰 힘을 발휘하지 못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다시 말해 3년 전 위기가 ‘추락’이라면 지금 위기는 ‘정체’다.
지난 10월 24일 LG전자의 실적 발표 이후 위기론이 본격화했다. 전문가들은 시장 예상치를 밑도는 저조한 실적이 LG전자의 새로운 위기의 조짐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지난 10월 24일 발표한 LG전자의 실적을 보면 매출액은 전분기(2분기)보다 9% 줄어든 13조 9000억 원이었으며 영업이익은 55% 줄어든 2178억 원을 기록했다.
가장 큰 문제는 휴대폰 사업을 담당하는 MC사업부가 797억 원의 적자를 낸 것. 이는 전체 실적에 악영향을 미친 것으로 나타났다. LG전자의 MC사업부는 지난해 4분기 흑자 전환 이후 올해 2분기까지 612억 원의 영업이익을 내고 있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스마트폰 시장이 포화상태에 이를 것이라는 경고등이 켜진 지 꽤 됐다”며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에 너무 치중됐다는 이유로 부정적인 전망이 나오는 것도, 업체들이 보급형 스마트폰을 출시하는 것도 이 때문”이라고 말했다. 스마트폰 시장에 제때 진입하지 못해 큰 어려움을 겪은 LG전자가 이를 따라잡기 위해 지난 3년 간 쉼 없이 달려왔지만 이제는 시장정체에 따른 또 다른 어려움에 직면해 있는 것이다.
3분기 실적이 나오자마자 4분기 실적도 썩 좋지 않을 것으로 전망하는 전문가가 적지 않았다. 노근창 HMC투자증권 연구원은 “LG전자 MC사업부의 적자 전환은 2012년 3분기 이후 처음”이라며 “스마트폰 경쟁력 제고에도 불구하고 적자 전환이라는 악순환으로 접어들었다”고 지적했다. 김혜용 우리투자증권 연구원도 “글로벌 고가 스마트폰의 수요 둔화로 중저가 스마트폰에서 가격경쟁이 예상보다 심화되고 있는 점을 반영해 2014년 휴대폰부문 영업이익 전망치를 기존 대비 34% 하향했다”며 LG전자의 목표주가마저 12%나 하향 조정했다.
최근 새로 선보인 휘는 스마트폰 ‘G플렉스’.
이 같은 결과를 본다면 LG전자의 MC사업부의 적자는 정체된 시장 탓이 아니라 판매 부진과 마케팅 비용 상승에 따른 것으로 보인다. 실제로 지난 3분기 스마트폰 시장에서 LG전자는 전체 4위로 밀려난 것으로 나타났다. 올해 1분기와 2분기 연속 유지했던 3위 자리를 중국의 화훼이에 내준 것이다. 화훼이의 스마트폰 시장점유율은 5.1%, LG전자는 4.8%다. 또 다른 중국업체 레노버는 4.3%로 LG전자 뒤를 쫓고 있다. 1위 삼성전자는 35.2%, 2위 애플은 13.4%를 각각 기록했다. LG전자는 삼성과 애플을 따라잡는 것은 고사하고 화훼이와 레노버 같은 중국업체와 싸워야 할 처지다.
그나마 다행스러운 점은 LG전자의 스마트폰이 품질 면에서는 최고로 인정받고 있다는 것이다. LG의 스마트폰 ‘옵티머스’ 시리즈와 ‘G2’가 글로벌 시장에서 호평을 받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LG전자 측도 여기에 방점을 찍고 있다. 제품력에 자신이 있기 때문에 최근 어려움은 “성장을 향한 일시적 통증”이라는 것이다.
‘G2’, ‘G Pro(프로)’ 등을 앞세워 이른바 ‘프리미엄 폰’ 시장을 공략하고 있는 LG전자는 지난 10월 28일 ‘휜 화면 스마트폰’으로 화제에 올랐던 ‘G플렉스’를 공개했다. G2와 G플렉스의 성과에 따라 향후 LG전자 ‘구본준호’의 앞길이 결정될 것으로 보인다. 지금의 어려움이 위기일지, 성장통일지, 구본준 부회장에게 달려 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
그때 그 ‘전투형 용장’ 어디갔어?
LG디스플레이 파주 R&D 전경.
김대중 정부의 ‘반도체 빅딜’에 따라 눈물을 머금고 LG반도체를 넘겨줬던 구 부회장은 1999년 네덜란드 필립스로부터 16억 달러를 유치, LG필립스LCD를 설립했다. 16억 달러 외자 유치는 당시론 사상 최대 규모였다. 이후 구 부회장은 LG필립스LCD를 출범 4년 만인 2003년 TFT(초박막)―LCD부문 세계 1위 업체로 성장시켰다.
2004년부터는 경기도 파주에 LCD클러스터를 건설하는 등 대규모 투자를 직접 지휘해 오늘날 LG디스플레이가 세계적인 기업으로 성장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구 부회장에게 ‘전투형 용장’이라는 닉네임이 붙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과감한 결단을 빠르게 실행하는 스타일이라는 것. 그러나 LG전자 대표로 취임한 후에는 아직까지 이 같은 성과를 보이지 못했다.
LG전자의 새 수장으로 자리 잡고 나서 구 부회장이 외친 일성은 ‘독한 LG, 독한 경영’이다. 그러나 외부에 과연 LG전자가 독하게 변하고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의구심을 품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재계 한 관계자는 “끊임없이 위기론을 강조하면서 혁신을 외치는 다른 대기업들과 비교하면 LG의 혁신적인 모습이 외부에 잘 알려지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LG전자는 현재 기존 휴대폰과 TV 위주 사업 외에도 차세대 성장동력으로 수(水)처리 사업과 자동차 부품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이들 사업의 성패 여부에 따라 구 부회장에 대한 평가도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