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승현이 코트에 뜨면 관중석에서 빈자리를 찾기 힘들었던 시절이 있었다. 김승현은 지금도 여전히 티켓 파워를 갖고 있다. 사진제공=서울 삼성 썬더스
“하체는 허재 이후 최고다”, 허재와 김승현의 시대를 모두 지켜본 농구 관계자들의 공통된 생각이다. 탄탄한 하체는 위대한 운동선수가 갖춰야 할 필수 항목이다. 그 위력이 농구 코트에서는 어떻게 나타날까.
현재 여자농구 대표팀의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하고 있는 이지승 코치는 김승현이 데뷔할 당시 오리온스의 고참이자 주축 식스맨이었다. 바로 옆에서 지켜봤기에 김승현의 능력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이지승 코치는 김승현의 전성기 시절에 대해 “드리블을 하면서 코트를 넘어가는 스피드가 대단했다. 폭발적인 스피드로 백코트하는 수비수들을 순식간에 골밑 아래로 몰아넣었다. 수비는 김승현의 질주를 막기 위해 그럴 수밖에 없었다. 김승현은 전력질주를 하다가도 원하는 순간에 그 자리에서 바로 멈출 수 있었다. 아무나 할 수 없는 플레이다. 어마어마한 하체 힘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 수비가 우왕좌왕하는 찰나의 순간에 옆이나 뒤에서 달려오는 동료에게 패스해 골밑슛 혹은 외곽슛 기회를 만들어줬다”고 묘사했다.
이면 계약 파문으로 마음고생이 많았던 김승현. 우여곡절 끝에 지난 2011년 오리온스를 떠나 삼성으로 이적했지만 1시즌 반 동안 이렇다 할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
요즘의 김승현은 어떨까. 코트를 호령했던 스피드와 관계자들이 감탄해마지 않았던 ‘스톱’ 능력은 예년만큼 매섭지 않다. 지난 시즌에 비해 몸놀림이 가벼워진 것만큼은 틀림없지만 전성기 시절에 비해서는 크게 모자란다는 것이 중론이다. 나이가 든 만큼 부상도 잦아지고 있다. 지난 시즌 정규리그 23경기 출전에 그치며 절반 이상을 날렸고 지금도 발목 부상 탓에 코트에 서지 못한 채 재활에 매진하고 있다.
김승현이 발목을 다치기 전 마지막 출전 경기는 지난 10월 22일 서울 잠실실내체육관에서 열린 원주 동부전이었다. 이 경기를 지켜본 관계자들은 “김승현이 전성기 시절 못지않은 기량을 보여줬다”며 찬사 일색이었다. 수비의 허를 찌르는 감각적인 패스와 공중에서 몸을 비틀어 올려놓는 더블클러치 레이업, 순식간에 공만 쳐내 상대 속공을 막아내는 가로채기까지, 관중들은 김승현의 동작 하나하나에 열광했다.
김승현을 보러 온 관중에게는 안타깝게도 그날 경기는 해피 엔딩과는 거리가 멀었다.
한 관계자는 “만약 김승현이 그날 경기를 제대로 마무리했다면 스스로도 자신감을 많이 얻었을텐데 안타깝다”고 말했다. 무슨 일이 벌어졌기에 그럴까. 김승현은 84-83으로 앞선 종료 10.8초 전, 골밑 돌파를 하다가 몸의 중심을 잃고 실수를 범했다. 공이 김승현의 발에 맞고 코트 밖으로 나갔다. 동부는 이어지는 공격에서 김주성의 골밑슛이 터지면서 승부를 뒤집었다.
예전의 김승현이었다면 하지 않았을 실수였다. 체력이 뒷받침되어 끝까지 집중력을 유지했다면 김승현은 전혀 다른 결과를 만들어냈을지도 모른다. 그날 경기에 과거의 김승현과 현재의 김승현의 모습이 모두 담겨 있었다.
# 김승현의 활용방법은?
감각적인 훅 패스를 하고 있는 김승현.
김승현은 지금 삼성에서 계륵과 같은 존재다. 능력을 제대로 이끌어낼 수만 있다면 그 시간만큼은 그 어떤 포인트가드도 부럽지 않다. 그러나 그 시간이 언제 어떻게 올지 알 수가 없다. 들쑥날쑥하다. 김승현은 오랜 시간 코트에 머물러야 경기 감각이 살아나는 스타일이다. 잦은 교체는 그에게 독이나 다름없다. 누구에게나 경기에 집중하는 자신만의 리듬이 있다. 그런데 김승현이 가진 신체 능력은 예전만 못하다. 몸이 먼저 반응하는 플레이가 종종 황당한 실책으로 이어지는 이유다. 그래서 삼성은 고민이 많다. 계속 기회를 주자니 수비를 비롯해 불안 요소가 적잖다. 그가 리듬을 찾는 동안에 자칫 경기 흐름이 넘어가기도 한다.
김승현을 상대하는 포인트가드들에게 물어보면 하나같이 “여전히 신경은 쓰이지만 예전처럼 부담이나 압박감이 심하지는 않다”고 입을 모은다. 일부 관계자들은 “김승현은 작년보다 2억 5000만 원이 깎인 1억 5000만 원에 연봉 계약을 했다. 결코 많은 돈이라고 볼 수 없다. 연봉 대비 기대치라는 것이 있다. 연봉을 감안하면 지금의 팀 기여도가 나쁘다고 볼 수는 없다”고 말한다.
김승현이 이면 계약 파문을 일으켰던 시절 오리온스를 이끌었던 김남기 KBS N 해설위원은 김승현이 가진 천재성을 가장 잘 아는 농구인 중 한 명이다. 그는 “김승현은 지금도 천재적인 감각을 갖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삼성이 그의 능력을 어떻게 활용하느냐가 관건이다. 김승현에게 예전처럼 오랜 시간을 맡기기는 어렵다. 그가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잘 분배해서 써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세운 CBS 체육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