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0년 백두스캔들 당시의 모습. | ||
그런 그가 지난 1월 중순 한국을 전격 방문했다. 짧은 일정 속에서도 그는 평소 친분이 있는 몇몇 기자들을 만나 ‘명예회복’을 다짐하고 돌아갔다. 정권 실세와 결탁된 로비 행태, FX사업의 문제점 등 칼날 선 ‘화두’도 던졌다.
그는 <일요신문>과 단독으로 가진 전화 인터뷰를 통해 “백두사업 파문을 결코 덮고 넘어가지 않겠다. 반드시 진실을 밝히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함으로써, 그동안 절치부심한 듯한 심경을 반영하기도 했다. 김씨는 인터뷰 첫머리부터 “국내 언론의 선정주의적 보도로 인해 사건의 본질이 철저히 왜곡됐다”고 주장했다. 아직도 언론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듯했다.
그는 <일요신문>의 여러 차례에 걸친 인터뷰 요청 메시지에 침묵으로 거부감을 표시했다. 끈질긴 전화 공세로 간신히 이뤄진 통화에서도 그는 “한국 기자들을 믿을 수 없다. 섣부른 인터뷰는 또다른 인신공격의 빌미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일단 최근의 근황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이야기를 풀어나가자 그는 다시 적극적인 입장으로 변해갔다. 1시간여에 걸친 전화 인터뷰로도 부족했다고 느꼈음인지, 이메일을 통해 자신의 입장을 재차 전해오기도 했다.
그는 지난달 한국 방문에 대해 “전적으로 개인적인 목적의 방문”이었음을 강조했다. 일부 기자들과의 접촉에 대해서도 “그나마 선정주의적 보도 행태에서도 나에 대해 애정을 가져주었던 평소 친분이 있는 국방부 출입기자단 몇몇에 대한 인사 차원이었다”고 해명했다.
다음은 김씨와의 인터뷰 내용.
─ 2000년 9월 집행유예로 석방되자마자 미국으로 돌아간 이후, 최근까지 2년4개월간 침묵으로 일관하고 있는데.
▲ 당시 거의 모든 한국 언론들이 나에게 무자비하게 돌팔매질을 했다. 감당하기 어려울 만큼 아찔한 상황이었다. 그렇다고 지금 한국 언론들이 내게 해명할 기회를 마련해 주겠는가. 당시 백두사업에 관해서도 고철을 사들인 사기 거래니, 여자 치마폭에 휩싸인 잘못된 거래니 하고 일방적으로 매도했다.
하지만 과연 지금 현재에도 그것이 잘못된 사업이라고 제대로 검증한 언론이 있는지 묻고 싶다. 현재 결과적으로 아무 문제없이 잘 진행되고 있는 백두사업에 대해서 어디에도 관심조차 표명하지 않고 있다.
─ 백두사업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고 있다는 공식적인 언급은 아직 없다. 어떤 근거로 그런 말을 하는가.
▲ 린다 김은 사건의 본질이 철저히 왜곡됐다며 언 론에 대한 반감을 표명했다. | ||
또한 지난달 한국 방문 때 국방부 출입기자들을 통해서도 그런 확인을 했다. ‘생각보다 잘 운영이 되고 있다’고. 내 말이 의심스러우면 직접 국방부에 확인을 해봐도 좋다.
─ 어쨌거나 지난 파문은 몇 가지 부분에서 적절치 못한 일들이 밝혀지기도 했다.
▲ 공적인 측면에 대한 보도는 완전 뒷전이었고 개인의 사생활을 스캔들로 만들어 버리지 않았는가. 백두사업과 린다 김의 스캔들을 동일시해 버려 백두사업 자체를 부도덕한 것으로 몰아갔다. 심지어 당시 한 장성은 우리 회사 제품을 일방적으로 ‘고철’이라고 매도했다.
당시는 장비 시스템을 디자인할 시기였다. 테스트도 하기 전에 국방부 고위 관계자가 그처럼 말을 함부로 할 수 있는가. 아무것도 모르는 일반 국민들은 그 말을 쉽게 믿을 수밖에 없다. 오늘날 누가 그 말에 대해서 책임을 질 수 있는가.
사업 당시 한국의 국방 관계자들은 내게 “이 사업은 한국의 첫 정보 시스템 도입 사업이니만큼 회사 생각 하지말고 한국에 대한 애국심 차원에서 해달라”는 말로 나를 거의 세뇌시키듯 했다. 나 또한 어떤 의무감을 갖고 뛰었다. 그런데 마치 내가 무슨 물건이나 팔려고 몸로비라도 한 것처럼 몰아갔다.
─ 2000년 구속될 당시 기회가 된다면 한국 국방부의 비리에 대해서 밝히겠다고 공언한 바 있는데.
▲ 당시의 나는 완벽하게 코너로 몰린 상황이었다. 완전히 혼자라는 느낌이었다. 그런 절망적인 상황에선 정말 무슨 말인들 못하겠는가. 물론 국방부 비리가 전혀 없다고 자신있게 말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지금에 와서 다시 들추어낸다고 해서 무슨 실익이 있겠는가.
─ 기자들과의 식사 자리에서 “이제 한국에서의 로비도 정권실세를 등에 업은 한탕주의식 에이전트는 없어져야 한다”고 언급한 것으로 알고 있다.
▲ 내가 알기로 한국의 조달본부에 등록된 에이전트들이 약 3백 명 정도 된다. 하지만 빅딜을 하는 이른바 노른자위 사람은 너댓 명 정도에 불과하다. 그들이 정권과 가까운 누군가의 끈을 잡고 한다는 것은 공공연한 비밀이다.
실제 어떤 에이전트를 보면 자기가 파는 물건이 뭔지도 모르고 그냥 판다. 자기 제품이나 상대 제품이 어떤 장단점이 있는지는 아예 관심도 없다. 그저 정권 실세들이나 등에 업고 큰 것 한탕하고 회사 문닫고 도망가는 그런 ‘쓰레기’들은 다 없어져야 한다는 그런 말이다.
─ 혹시 특정인을 염두에 두고 한 발언은 아닌가. 현 정권에서 강력한 무기 로비스트로 떠오른 조풍언씨와는 여전히 껄끄러운 관계인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 그 사람이나 나나 장사꾼인 것은 마찬가지다. 그 사람도 장사 수완의 하나로 일을 하는 것이다. 국가적으로 도움이 되었는지 아닌지를 평가받는 건 차후의 문제다. 지금 내가 평가할 문제도 아니다. 내가 한 발언은 굳이 어느 특정인을 염두에 두지 않았다 하더라도 내 말을 듣고 양심에 가책을 느낄 만한 사람은 꽤 많을 것이다.
─ 최근 문제가 되었던 FX사업에 대해서도 사석에서 비판적인 의견을 개진한 것으로 아는데.
▲ 비판적이라기보다는 아쉬운 부분이 많았다. 제품의 성능 분석이나 협상과정을 볼 때 만족할 만한 구매 방식이 아니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지금에 와서 밝히는 것이지만 사실 1999년 한국에 들어왔을 때 나는 백두 금강 사업에 대해서 해명하고 싶은 것보다도 FX프로젝트에 대해서 정책입안자들에게 나름대로 도움을 주고 싶었던 목적이 더 컸다.
개인적인 생각으로는 보잉사의 F15와 타사 제품을 50 대 50으로 공동구매하는 방식이 최상이었다고 생각한다. 설사 미국 회사 제품을 전적으로 배제하는 것이 불가능했다손 치더라도 특혜에 가까운 무조건적인 ‘강매’는 이제 안된다는 ‘신호’를 주는 것이 의미있는 자세였을 것이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