덕영배 아마대왕전 수상자들이 함께 포즈를 취했다. 앞줄 왼쪽부터 박한솔(여자부 준우승) 이현준(주니어부 준우승, 통합 공동 3위) 이유진(여자부 우승) 홍무진(통합 우승) 권병훈(시니어부 우승, 통합 준우승) 김동섭(시니어부 준우승, 통합 공동3위).
‘예선리그→본선 16강 토너먼트(여자부는 8강 토너)’를 치른 결과 시니어부에서는 내셔널리그 ‘전북 알룩스’의 주장 권병훈, 주니어부에서는 ‘서울 건화’의 홍무진, 여자부에서는 ‘대구 덕영치과’의 이유진 선수가 우승했고, 홍무진 선수는 통합 챔피언 트로피와 500만 원의 상금을 차지했다. 통합 준우승 권병훈 선수 300만 원, 여자부 이유진 선수는 지난해에 이어 2연패에 성공하며 200만 원을 받았다. 권병훈 선수의 기세가 대단하다. 전북의 강자로 이름은 알려져 있었으나 그동안 전국대회에 잘 나오지 않다가 재작년 시즌부터 자주 보이고 있는데, 내셔널리그의 신생 팀 ‘전북 알룩스’의 주장을 맡아 팀을 포스트 시즌에 진출시키는 등 단기간의 활약으로 현재 시니어 랭킹 당당 2위에 올라 있다. 1박2일 대회인 경우 밤에 숙소에 들어갈 때면 늘 바둑판을 챙기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이번에도 물론 그랬다. 바둑 꿈나무 소녀 권주리의 아빠.
올해의 결산, 내셔널리그 선수로서의 자존심 등의 의미가 얽혀 있어 그랬겠지만, 대회는 매판 열전이었고, 특히 시니어부의 본선 토너가 뜨거웠다. 시니어 랭킹 1위인 조민수 선수를 비롯해 역전의 맹장인 박윤서 박성균 박영진 선수 등 7단 그룹이 1차전에서 넘어졌고, 연구생 출신으로 시니어에 갓 편입되어 우승 후보의 한 사람으로 꼽히곤 하는 막내 최호철 선수는 대전의 맹주 김동근 7단에게 걸렸다. 박윤서 박성균 박영진 외에 또 한 사람 대구의 박강수 선수까지 네 사람은 보름 전 강진의 ‘국제 시니어 바둑대회’에 ‘포(4)박’으로 출전했는데, 성적이 여의치 않자 본인들이나 주변에서 “4박이 아니라 호박인 모양”이라고 해서 같이들 한바탕 웃었다.
주니어부에서는 이현준 장현규의 분전이 돋보였다. 장현규는 ‘서울 건화’에서 홍무진과 한솥밥을 먹는 처지. 준결승에서 ‘서울 천일해운’의 이현준에게 고배를 들었다. 이현준은 체격이 작고, 생김생김도 여리게만 보이는데, 내셔널리그 초반부에서는 두드러진 활약이 없었으나 계속 열심히 공부하는지, 나날이 좋아지며 성적도 상승일로, 이번에는 결승까지 치고 올라가는 힘을 보여 주었다. 홍무진에게 지고서는 못내 아쉬운 표정이었다.
‘덕영배 아마대왕전’은 ‘덕영배’와 ‘아마대왕전’이 합쳐진 대회. 아마대왕전은 1983년 대구<매일신문>이 ‘프로 대왕전’과 함께 창설한 기전. 1983년 시즌은 우리 바둑계가 도약의 발돋움을 시작하던 때였다.
대우그룹 김우중 회장이 한국기원 총재로 취임하면서 프로기사들이 바둑 연구에 전념할 수 있는 여건 조성을 위해 유명 기업들에게 바둑부를 만들 것을 권유했고, 60여 명의 프로기사를 각 회사의 지도사범으로 위촉케 했다. 당시 한국기원 소속 프로기사가 80여 명이었으니 연로했거나 이미 다른 직업을 갖고 있던 프로기사를 뺀 거의 전부가 취업을 한 셈이었다. 초-2-3단 월 50만 원, 4-5단 60만 원, 6-7단 70만 원, 8-9단과 타이틀 보유자에게는 80만 원 월정 급여가 책정되었다. 그 시절 대기업 과장 봉급이 50만 원 정도였으니까 파격적인 대우였고, 프로기사, 나아가 바둑에 대한 사회의 인식이 새로워지는 결정적 계기가 되었다. 그런 분위기를 타고 국내 최초로 민간 기업이 후원하는 프로기전인 동아제약의 ‘박카스배’가 탄생했고, 대왕전이 출범했던 것. 대왕전은 <부산일보>의 ‘최고위전’과 함께 지방 신문기전의 쌍두마차로 2004년 무렵까지 지방 바둑팬들의 갈증을 달래 주었다. 그 공로가 크다.
‘덕영배’는 1990년에 창설된 기전. 대구의 덕영치과, 덕영치과 병원 이재윤 원장이 주최-주관-후원을 도맡았다. ‘덕영(德榮)’은 이재윤 원장의 아호. ‘의사가 덕으로써 환자를 치료하면 환자가(모두가) 영화롭게 된다’는 뜻이란다.
덕영배는 출발할 때부터 초청전이었고, 상금 규모가 제일 컸으며 선수들에게 숙식-교통 일체의 편의를 제공하는 것으로 ‘운이 따르지 않아 입단하지 못했을 뿐, 바둑 한 길을 걷는’ 아마추어 고수들을 예우하고 있다. 그리고 대왕전이 어려워지자, 맥이 끊기게 해서는 안 된다는 뜻에서 2005년부터 ‘덕영배 아마대왕전’으로 문패를 고쳐 달았다. 덕영배 예산은 6500만 원선. 72명이 벌이는 회전치고는 아닌 게 아니라 거액이다. ‘명품 기전’이라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내셔널리그 팀 운영에 1년 3000만 원 안팎. 거기다 한국기원 이사, 대한바둑협회 부회장, 대구바둑협회장으로 크고 작은 바둑행사를 후원하고 바둑 관련 단체를 운영하는 것 등을 생각하면 1년에 바둑에 들이는 게 2억 원 정도는 될 것으로 짐작된다.
지난번에 소개했던 태국의 코삭 회장, 우리나라에도 그런 독지가가 있기는 있다. 프로에게 2점으로 버티는 바둑 실력. 코삭 회장과 두면 누가 이길지. 코삭 회장도 ‘예우 5단’이 아니라 ‘정말 5단’이라고 하니까.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