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지난 11월 18일 국회 본회의에서 시정연설을 하는 모습. 사진공동취재단
최경환 원내대표는 “특검을 할 수도 있다는 뜻을 풍기면 민주당이 자꾸 더 요구하고 나올 것”이라면서 특검 절대 불가를 주장했다고 한다. 다른 친박근혜계 인사들도 최 원내대표의 주장을 적극 거들고 나섰다. 친박계 원로급이자 당 대표라는 사람이 야당 대표를 만나 협상 카드로 검토하고 온 특검 방안은 제대로 검토조차 되지 않은 채 회의가 마무리됐다. 여당 관계자는 “황 대표가 왕따가 된 듯한 분위기였다”고 전했다.
‘황우여-김한길 라인’의 협상이 이처럼 무위에 그치면서 여야 대치는 황찬현 감사원장 후보자 임명동의안에 대한 여당 단독 처리로 이어졌고, 급기야 민주당은 국회 일정 전면 보이콧을 선언하기에 이르렀다. 김 대표는 “직을 걸겠다”며 강도 높은 대여 투쟁을 예고했다.
통합진보당 의원들이 ‘민주’라는 마스크를 쓰고 정당해산 청구에 대한 강한 항의 표현을 했다. 사진공동취재단
새누리당 관계자들은 그 이유에 대해 최 원내대표의 말처럼 “특검이 끝이 아닐 것이기 때문”이라는 설명을 내놓고 있다. 여당의 한 관계자는 “특검을 수용할 경우 준비기간과 수사기간, 연장기간까지 다 합쳐 3개월가량 이슈가 이어지는데, 이렇게 되면 내년 지방선거 국면까지 가게 된다”며 “야당의 특검 요구가 절대로 순수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야권이 지난해 대선의 정당성, 박근혜 대통령의 정통성 시비를 이어감으로써 지방선거에서까지 쟁점화를 시도할 것이라는 얘기다. 일각에서는 특검을 수용할 경우 자칫 중앙당사가 압수수색을 당하는 등 생각지도 않은 문제에 직면할 수도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기도 한다.
하지만 여권이 특검 카드에 극도의 알레르기 반응을 보이는 가장 큰 원인은 박근혜 대통령의 스타일에서 찾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박 대통령과 청와대 핵심 관계자들이 자주 입에 올리고 있는 박근혜 정부의 국정운영 목표, 다시 말해 ‘비정상적 관행의 정상화’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박 대통령과 청와대가 일반적으로 개혁이라는 표현 대신 즐겨 사용하는 개념이다. 이는 원자력발전소 비리, 문화재 관련 비리, 각종 국고보조금 관련 비리, 공기업의 만연한 비리와 도덕적 해이 등 박근혜 정부가 핵심 개혁 대상들을 지목하면서 써왔다.
황우여 대표.
이런 인식을 전제로 놓고 보면 정부 당국이 최근 그리도 부담스러운 사안들을 거침없이 밀어붙일 수 있었던 배경에 대해 이해 못할 바가 아니다. 서해 북방한계선(NLL) 무력화 시도를 규명하겠다며 남북정상 대화록을 공개하는 결정을 내린 데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는 것이다. 또 종북세력을 척결하겠다며 헌정사상 처음으로 통합진보당에 대해 정당해산 청구를 한 것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전교조)을 법외 노조화하는 방안을 추진한 것도 마찬가지다. 이 모든 것들을 비정상의 정상화 과정으로 봤기 때문에 그렇게도 자신 있게 밀어붙일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이런 인식에 대해서는 야권은 물론 여권 인사들조차 “매우 위험한 접근법”이라는 우려를 표하고 있다. 인식의 틀 자체가 이분법적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부 청와대에서도 일했던 새누리당 관계자는 “이분법적 틀로 세상을 본다는 것은 매 사안에 대해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선악의 문제로 접근한다는 의미”라며 “이렇게 되면 정치는 없고 통치만 남게 될 우려가 높다”고 말했다. 민주당 원내 관계자는 “자신을 정상, 반대 세력을 비정상으로 보는 시각은 조지 W.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의 기독교 근본주의와 닮았다”며 “이런 식이기 때문에 여야 간에 타협이 하나도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것”이라고 비판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이분법은 현재의 박 대통령을 있게 한 원칙주의 리더십이 갖는 맹점이라고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야당의 협조 없이 원활한 국정운영이 불가능하다는 점은 대통령도, 여당도 잘 알고 있을 것”이라며 “흰색과 검정색 사이에 명도와 채도를 달리 하는 무수히 많은 회색이 있다. 정치를 가능성의 예술이라고 말하는 것도 이 수많은 회색을 찾아가는 과정이라는 점을 명심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공헌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