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5년 ‘고감도 이미지센서 상용화 칩’ 개발성과 시연회에서 전자부품연구원 김 아무개 박사가 SMPD를 들어보이고 있다. 연합뉴스
<일요신문>은 지난 2011년 3월(983호)과 12월(1023호) 두 차례에 걸쳐 SMPD 기술 사기 논란과 관련해 자세히 보도한 바 있다. SMPD란 2005년 11월, 전품연 소속 김 아무개 박사가 처음 공개한 것으로 나노기술을 이용해 1룩스 이하의 암실에서도 빚을 잡아내 촬영할 수 있는 이미지 센서다.
공개 당시만 해도 SMPD는 ‘꿈의 기술’로 통했다. 코스닥 상장사였던 플래닛82는 기술 공개 이전인 2003년, 52억 원을 주고 전품연으로부터 이 기술을 사들였다. 기술이 공개된 2005년, 이 회사는 주가가 폭등해 코스닥 상장사 시가 총액 4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하기도 했다.
하지만 2007년부터 이 기술에 대한 의혹이 일기 시작했고, 이 와중에 플래닛82 주식은 곤두박질 끝에 2008년 최종 상장폐지됐다. 이 시기 전품연은 자체 조사위원회의 본조사를 통해 유보적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논란이 계속되자 결국 상급기관인 산기평이 2010년부터 연구 진실성 검증 재조사를 진행했고, 지난 2011년 기술이 허구임을 밝혀냈다.
산기평은 2011년 6월, 그 후속조치로 연구책임자인 김 박사에게 국가연구 3년 참여제한을, 전품연에게는 정부출연금 92억 원 환수조치를 통보했다. 당시 김 박사는 퇴직금을 고스란히 챙겨 퇴사했다. 논란의 파장 끝에 최소한의 조치가 이뤄진 셈이었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현재, 전품연은 92억 원 환수조치를 이행하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전품연은 상급기관인 산기평이 92억 원 환수를 통보한 직후인 2011년 8월, 이에 불복해 산기평을 상대로 정부출연금환수처분취소 행정소송을 제기한 것으로 밝혀졌다.
결과는 뜻밖이었다. <일요신문> 확인 결과, 지난해 5월 서울행정법원 재판부는 1심에서 원고인 전품연 승소판결을 내렸다. 지난 4월 대법원은 해당 소송을 최종 기각했다(행정심판은 2심제). 2년 법정분쟁 끝에 법원은 최종적으로 92억 원 환수를 거부한 전품연의 손을 들어준 것이다. 기술은 허구로 판명이 났지만, 법원은 국민들의 혈세인 해당 기관의 국고금 환수를 하지 않아도 된다는 모순적인 판결을 내린 셈이다. 큰 파장이 예상되는 대목이다.
1심 판결문에 따르면, 소송을 제기한 원고 전품연 주장의 핵심은 한마디로 ‘연구책임자인 김 박사는 연구부정행위를 저지르지 않았다’는 것이다. 이러한 전품연의 주장 뒤에는 당시 산기평의 모호한 최종 조사 결과가 자리 잡고 있다. 산기평은 지난 2011년 재조사 최종 결과 발표 당시, SMPD 기술에 대해 ‘선행성도 없고 차별성도 없다’고 평가했으며 ‘개발자가 주장한 고감도 기술 역시 측정결과 허위’라고 결론지었다.
결과 내용만 보면 연구부정행위로 규정된 변조, 표절 기술에 해당하는 사안이었다. 하지만 산기평은 조사 결과 발표 당시 책임연구자인 김 박사가 조사에 참석하지 않았다는 석연찮은 이유로 연구부정이 아닌 ‘불성실 실패’로 최종 결론지었다. 재판부는 당시 산기평의 모호한 최종 검증결과를 두고 ‘연구부정 행위를 인정할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또한 대법원은 판결문을 통해 국내 연구 규정상 지원을 받은 자가 정당한 사유 없이 목적 외에 지원금을 사용할 경우 이를 회수할 수는 있지만, ‘연구부정행위가 있을 경우 정부출연금을 환수할 수 있다’는 내용의 근거규정은 현행법상 없다고 지적했다. 또한 산기평이 제시한 촉진법 규정은 사건이 종료된 시점 이후에 만들어졌기에 사건 처분에 적용할 수도 없다고 판단했다. 결국 산기평의 모호한 검증 결과와 행정처분이 92억 원 증발이라는 황당한 결과로 나가게 된 것이다.
이러한 법원의 판결에 가장 황당해 한 사람은 거액을 들여 전품연으로부터 실제 기술을 이전해 간 플래닛82 윤상조 대표다. SMPD 기술 논란의 실질적 피해자인 윤 대표는 산기평의 최종 검증 결과 이후에도 아직까지 아무런 보상을 받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윤 대표는 법원의 최종 판결 직후인 지난 5월, 이번 92억 원 국고 환수 무산과 관련해 감사원에 민원을 접수했다. 그는 기자와 만나 “결국 산기평의 위법한 행정처분에서 비롯된 문제이기에 감사원에 민원을 접수한 것”이라고 밝혔다.
감사원은 지난 7월, 해당 민원을 전품연과 산기평의 상급기관인 산업통상자원부로 이송 조치한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7년간 이어져 온 하급기관들의 기술 사기 논란 속에서도 뒷짐만 지고 있었던 산업부가 과연 어떤 조치를 취할지는 미지수다.
한편 국민 혈세 92억 원 증발로 결론 난 SMPD 사기 논란은 국내 국가 R&D(연구개발) 산업의 어두운 단면을 그대로 보여준다는 것이 업계 관계자들의 중론이다. 업계 관계자는 “SMPD 사례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국내 과학기술 업계는 모두 공생관계에 있다. 예산과 기관 생존이 걸린 문제이니만큼 치부가 드러나도 되도록 덮자는 인식이 강하다”며 “국가 R&D 업계 내부에서 이 같은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으려면, 더불어 이번처럼 천문학적인 예산이 증발되지 않으려면 반드시 대대적인 개혁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한병관 기자 wlimodu@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