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11월10일 강력부장 초청 간담회에서의 강금실 장관과 노무현 대통령. 청와대사진기자단 | ||
강 장관이 예방을 거절당한 이유는 대체 무엇일까. 음악회 이외에 다른 ‘임무’는 없었을까. 강 장관의 방문과 DJ의 거절 사이에 자리한 정치적 함의는 과연 무엇일까.
사연은 이렇다. 우리나라는 해마다 법무부 주관으로 12월10일 세계인권선언일 기념행사를 연다. 올해에도 법무부는 인권선언일을 맞아 모 방송국과 함께 인권을 주제로 한 음악회를 열었다. 이런 가운데 아이디어가 나왔다. DJ의 메시지를 받아 음악회를 시작할 때 공개하자는 것이다. 강 장관측은 “인권 하면 김대중 전 대통령이고 따라서 메시지를 주실 수 있겠느냐는 의향을 여쭙기 위해 찾아뵈려 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제안은 정중히 거절됐다. 동교동의 반응은 싸늘했다. 동교동측은 김 전 대통령의 몸도 불편하고, 지금 전직 대통령이 이리저리 나설 때가 아니라며 방문 자체를 사양했다.
좋게 보면 ‘사양’이지만 호사가들이 보면 ‘퇴짜’다. 정치권 안팎에서는 이상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뒷말도 많다. “나쁜 일도 아니고, 동교동에서 (요청을) 거절할 일이 뭐가 있겠느냐”는 것이다. 그 이유를 알기 위해서는 제안의 상대가 노무현 대통령의 절대신임을 받고 있는 강금실 장관이며 최근의 정치 상황이 내년 총선을 코 앞에 둔 긴박한 형국이라는 점 등을 염두에 둬야 한다.
▲ 지난 4일 동교동을 방문한 민주당 신임 지도부와 접견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 국회사진기자단 | ||
우선 최근의 정치적 지형이다. 지금은 한창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이 DJ를 자기 편으로 끌어 들이려고 공을 들이는 때다. 더군다나 최근 노무현 대통령과 열린우리당의 DJ에 대한 구애가 노골화한 형국에 있다. 정치권에서는 ‘노 대통령과 김 전 대통령의 관계가 완전 정상화하는 것 아닌가’ 하는 해석에서부터 ‘밀월관계 돌입’이라는 관측도 나왔다.
앞서 노 대통령은 제주도 방문 때(10월31일)와 김대중도서관 개관식 때(11월3일), 전국 여성단체장과의 오찬간담회 때(11월20일) 김 전 대통령과 ‘국민의 정부’의 업적에 대해 잇단 찬사를 보냈다.
강 장관의 동교동 방문 요청은 이런 흐름 위에서 해석되기도 한다. 김 전 대통령에게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내려는 노 대통령이 강 장관을 통해 음악회 건을 내세우면서 속으로는 또 다른 메시지를 전달하려 했던 게 아니냐는 것이다.
DJ의 속은 그러나 보이는 것보다 깊다. 그는 자신이 이런 모습으로 비치는 것에 대해 상당히 불편해 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민주당의 신임 지도부 전원이 지난 4일 동교동 자택으로 DJ를 방문했을 때 그의 태도를 보면 이 같은 분위기가 드러난다.
이날 DJ는 “민주당원들은 참 현명하다”며 민주당 신임 지도부와 당원들을 예찬했다. 조순형 상임위의장에겐 “선친 조병옥 박사에 이어 2대에 걸쳐 민주당을 잘 끌어 달라”고 했고, 추미애 상임중앙위원에게는 “여성계의 독보적 존재”라고 치켜세웠다. 다른 3명의 상임중앙위원들에게도 일일이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넸다. 민주당은 DJ가 “내가 마무리를 잘못한 것 같다”고 한 지적을 분당에 대한 비판으로 받아들이면서 우리당이 아닌 민주당을 지지한 것으로 해석했다.
그러나 DJ는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의 어느 한편에 서지 않고 균형을 잡아야 할 때라고 생각하는 것으로 보인다. DJ는 특정 정당을 편드는 것이 ‘세계적 지도자’로서의 자신의 성가에 먹칠을 하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강 장관의 방문 요청을 거절한 또 다른 배경으로 거론되는 게 추미애 의원과의 관계다. 사실은 김 전 대통령이 현실정치에 몸담고 있을 때 먼저 눈여겨본 이는 추미애 의원이 아닌 강금실 장관이었다. 실제로 DJ는 지난 1996년 15대 총선 때와 2000년 16대 총선 때 자신이 이끌었던 국민회의와 민주당으로 강금실 변호사를 영입하려 했었다. 하지만 두 번 다 강 장관의 정중한 사양을 받아야 했다.
당시 상황에 정통한 여권의 한 인사는 “15대 국회의원 공천 당시 국민회의는 추 의원보다 강 장관을 먼저 영입하려 했었지만, 변호사였던 강 장관이 전 남편의 빚 때문에 도저히 정치를 하기 어렵다며 거절해 영입이 무산됐다”고 말했다.
15대 때는 강 장관의 고사로 추 의원이 영입됐고, 16대에 고사했을 때는 대신 공천이 조배숙 의원에게 돌아갔다는 말도 들린다. DJ와 강 장관과의 인연이 적지 않음을 알 수 있는 일화다.
DJ와 추미애 의원과의 인연도 만만치 않다. 그는 15대 국회에 들어온 이래 DJ의 총애를 한몸에 받아왔다. 추 의원에 대한 DJ의 관심은 지금까지도 여전하다는 게 동교동계 인사들의 한결 같은 말이다.
DJ는 지난 11월3일의 김대중도서관 개관식 때 4당 대표를 제외하고는 정치권에서 유일하게 추 의원만을 공식 초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는 추 의원에 대한 관심 표현임에 분명하다. 특히 추 의원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한 뒤 대부분의 여권 인사들이 DJ와의 차별화를 주장하고 나왔을 때 끝까지 ‘햇볕정책의 효용성’과 ‘국민의 정부 계승론’을 펴면서 ‘DJ 옹호론’을 펼쳤던 인물이다.
결국 DJ의 강 장관 방문 거절은, 둘의 만남이 DJ와 노무현 대통령 간의 관계정상화로 비칠지 모른다는 점, 이는 곧 총선이라는 정치권 대사를 앞두고 호남 시민들에게 일종의 사인으로 전달될지 모른다는 점, 또 강 장관의 접견이 추 의원에게 하나의 자극으로 작용할지 모른다는 점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해 내린 조치라는 해석이 가능하다.
허소향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