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
또 그 며칠 전인 11월 26일 바둑TV 스튜디오에서 제41기 하이원리조트배 명인전 결승5번기 3국이 열렸다. 이세돌 9단 대 최철한 9단의 일전이었다. 이 9단이 리드하던 상황이었다. 최 9단은 돌연 기상천외한 승부수를 날렸다. 관전자들이 깜짝 놀랐다. 부러질지언정 휘어지는 법이라곤 없는 이세돌은 순하게 대응하면 오히려 더 좋은 장면에서 더욱 강하게 맞받아쳤고, 최철한은 준비하고 있던 묘수를 터뜨려 형세를 뒤집었다. 236수 끝, 백을 든 최철한의 불계승.
이세돌 9단이 무조건 이기는 시기는 지나갔다는 것은 이제 대개는 받아들이고 있다. 정상권이지 정상은 아니라는 것. 이창호 9단은 왕년에 15년 동안이나 요지부동으로 자리를 지켰다. 그러나 두 사람을 단순비교할 일은 아니다. 기질이 다르고 시대가 다르다. 요즘의 현상은 이 9단이 삼성화재배 결승을 앞두고 거기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일 패것이라고 이해하는 사람도 아직 많다. 이세돌이 지는 것이 아쉬운 것과 타이틀이 분산되는 것이 흥미로운 건, 모순이지만 현실인 것.
<2도> 흑1은 선수. 백2로 연결해야 한다. 흑3이 강수이자 호수. 상대에게 끊으라는 것. 내가 끊기면 너도 끊긴다. 삶은 구걸한다고 얻어지는 것이 아니다. 흑5, 7, 9가 모두 선수. 다음 흑A면 완생이다. 박 9단은 살기 전에….
<3도> 흑1로 찔렀다. 선수로 끝내기를 하고 살겠다는 것. 백2가 착각이었다. 흑3으로 끊겨 바둑이 끝났다. 다음 백A면? 흑B가 선수. 백C로 이을 때 흑D로 잇는다. 초읽기에 몰리고 있었다고는 하나 민망한 착각이다. 이 9단의 집중력이 약해졌다는 사실을 확인하는 것 같아 보는 사람도 민망하다. <4도>가 정상적인 진행. 백1로 끊고, 흑은 2~6을 활용한 후 8로 사는 것(백7은 흑에 이음).
<5도>는 이세돌-최철한의 바둑. 바둑판의 상반부는 벌판이고, 하반부는 한바탕 격전의 흔적이 역력하다. 흑이 약간 우세한 형세에서 백1로 막으며 전열을 가다듬자 흑2, 상변에서 백이 집을 지으려는 걸 보고 그냥 지나칠 이 9단이 아니다. 백3을 선수하고 5로 다른 곳을 굳히자 흑6으로 즉각 공격에 나선다.
여기서 백7! 벼락처럼 갖다붙인 이게 최철한의 승부수였다. 자, 또 붙어 보십시다. 흑A로 젖히면? 무조건 백B. 흑C로 젖히면? 백A로 늘어 공수가 바뀐다.
<6도> 흑1로 늘자 백2로 따라붙고, 흑3 젖히자 불문곡직 백4로 끊는다. 흑5는 두점머리, 백6은 되젖힘. 흑7로 늘자 또 백8로 따라붙는다. 샅바를 놓치면 안 된다. 흑9도 두점머리. 흑5와 9, 두점머리를 두 번이나 얻어맞아 아프긴 무지 아프나 백10-12로 헤쳐 나가며 좌우간 흑을 일단 가두고 있다. 한 치 앞을 장담하기 어렵게 되었는데, 이후를 보기 전에 검토실 반응부터 보자. 검토실은 “흑7은 과했다”고 지적하고 있었다. “그냥 흑A로 잇고 백B로 이어야 할 때 흑C 단수쳐 백8과 교환한 후 조용히 흑D로 나갔으면 그쪽 백 넉 점을 생포할 수 있었다”는 것.
<7도> 흑1, 이제 이었는데, 백2가 최철한이 먼저 발견하고, 이세돌이 뒤따라 보게 된 맥점이요, 묘수. 흑은 백2를 잡지 못하고 뒤늦게 3, 5로 급히 살아갔고 백은 4에서 8로 혁혁한 전과를 올렸다. 흑이 중앙 백돌들을 쓸어 담은 것도 적지 않지만, 우상귀 통째로 빼앗긴 것에 비하랴. 게다가 백에겐 A와 B도 남아 있으니까.
<8도> 백가 왜 묘수였는가. 흑1로 잡으면 백2, 4로 중앙을 보강한다. 흑5-7로 중앙을 틀어막고 9로 젖히면? 백가 장치해 둔 10, 12가 기다리고 있다. 백가 없다면 <9도> 흑1 젖히고 백2 막을 때 흑3으로 끊는 수가 있다. 백4로 잡아야 하는데 그때 기막히게도 흑5! 다음 백은 A에 끊을 수가 없다. 백B는 흑C로 안 되고, 백C는 흑B로 안 된다.
관상용 그림 하나 더. <6도> 흑7 때 <10도> 백1쪽으로 내려서는 것은? 이게 행마법이고, 더 강력한 수 아닌가? 아니다. 흑2로 끊고, 4로 돌려치고, 6으로 한 번 더 밀어 여기서부터 회돌이축의 대장정이 시작되는 것. 흑16까지 축처럼 몰아가다가 백17 때 흑18로 방향을 튼다. 흑20이 막다른 골목이니 백은 출발했던 곳으로 돌아가 21로 따내야 하는데, 흑6으로 한 번 더 민 것 때문에 백21은 소용이 없고, 흑22, 24. 아~ 회돌이축의 장관이다. 아~ 최철한은 <7도> 백2와 <10도>의 함정, 둘 다 보았고, 이세돌은 하나를 놓쳤구나.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