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의장 선출 전당대회를 앞둔 우리당이 ‘흥행’ 문제로 고민에 빠져있다. 사진은 지난달 19일 당 중앙위원회에서 심각한 표정을 짓고 있는 정동영 의원. 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 ||
대선자금 정국에 온통 시선이 쏠려있는 상황에서 우리당 인사들은 전당대회 흥행몰이용 카드를 찾기 위해 고심하고 있다. ‘대어’ 김혁규 경남지사의 입당이 호재로 작용하겠지만 전당대회에서 얼마나 큰 바람을 일으킬지는 미지수. 이대로라면 지난 6월 한나라당 대표경선에서의 ‘최병렬-서청원’ 대결구도나 얼마 전 민주당 대표경선에서의 ‘조순형-추미애’ 대결 같은 빅 매치를 성사시킬 가능성은 크지 않아 보인다는 ‘비관론’도 적지 않다.
사실상의 여당인 우리당 주변에선 노 대통령을 둘러싼 악재에도 불구하고 한 달도 채 남지 않은 전당대회를 성공시키기 위해선 당권 주자들과 당내 중진들의 획기적인 아이디어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다른 정파처럼 내부 갈등이 첨예하지 않다는 점이 오히려 당권 경쟁의 흥미를 떨어뜨리기 때문에 ‘내부 갈등을 부추겨야 한다’는 의견마저 나올 정도다.
현재 당권 레이스에서 가장 앞서 나가는 것으로 지목되는 인사는 단연 정동영 의원이다. ‘천·신·정’(천정배 신기남 정동영 의원)으로 지칭되는 소장파 리더그룹 중에서도 정 의원이 한발짝 앞서 있다는 것이 대체적인 관측이다.
그러나 ‘정동영 대세론’이 자리를 제대로 잡기도 전에 ‘정동영 비토론’이 불거질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우리당의 한 관계자는 “당권 경쟁에 흥미를 불어넣기 위해서는 정동영 의원을 위협할 수 있는 대항마가 나와야 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정동영 비토론’의 중심에는 최근 당내에서 고개를 들고 있는 ‘영남대표론’이 있다. 박양수 조직총괄단장은 “수도권에 이어 가장 많은 선거인단을 가진 영남지역의 경우 우리당에 대한 기대가 높고 다른 지역보다 표의 응집력이 높아 이번 경선에서 최대변수가 될 것”이라고 지적한다. 박 단장이 “중앙상임위원 중 2~3명은 영남지역 인사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밝힐 정도다.
전국 대의원들이 5명의 상임의원을 선출하고 이 가운데 최다득표자가 당대표격인 당의장이 되어 2명 상임위원을 지명할 수 있는 이번 전당대회 방식이 결국 영남 후보들의 약진에 용이할 것이란 지적. 이 영남대표론은 호남을 기반으로 한 민주당 탈당파 주도 분위기에 제동을 걸 수 있다는 점에서 전당대회 관전 포인트를 하나 늘려줄 것이란 평이다.
이런 영남대표론의 불을 지필 인사로는 김정길 전 행자부 장관이나 김두관 전 행자부 장관, 김태랑 전 민주당 최고위원 그리고 최근 한나라당을 탈당한 김혁규 경남도지사 등이 꼽힌다.
이들 중 노 대통령과의 정치적 인연이나 경선 경쟁력을 볼 때 가장 주목을 받는 인사는 김정길 전 장관이다. 당의장 선거 출마가 확실해 보이는 김 전 장관은 최근 들어 부쩍 ‘정동영 대항마론’을 주창하고 있다. 김 전 장관은 “지금 우리당 당권 경쟁이 재미없어 보이는 것은 당연하다. 당 안팎에서 정동영 의원이 1등을 할 거라고 수군거리는데 뻔해 보이는 승부에 누가 관심이나 보이겠나”라고 말한다.
김 전 장관은 “지난해 민주당 대선후보 경선 당시 노무현 후보가 역전 승부를 펼치면서 국민적 후보로 급성장했다”고 지적한다. 그는 또한 정동영 의원을 겨냥해 “정 의원은 반대세력이 제법 많다. 이런 점이 당권경쟁에 활력을 넣어주는 변수가 될 것”이라며 “후보 등록에 이어 TV토론이나 대의원 상대 연설을 통해 우리당에 정 의원을 위협할 수 있는 다른 주자가 있다는 것을 보여줘야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당 지도부의 한 중진 인사도 “(바람을 일으키려면) 영남대표든 아니면 다른 소장파 리더든 간에 정 의원을 견제할 정도의 지명도와 역량을 겸비한 후보가 나와야 한다”고 지적했다. 당 일각에선 최근 한나라당을 탈당한 김혁규 경남도지사가 나서야 전당대회가 국민의 주목을 받을 것이라는 얘기도 흘러나온다.
이 같은 ‘견제’ 정서에 대해 정 의원은 “아직 뭐라 말 할 시기가 아닌 것 같다”고만 밝혔다. 정 의원은 “아직 공식 출마 선언을 한 후보도 없는 상황인 만큼 공식 선거전이 시작되면 민주당 전당대회 못지않게 흥미로운 면들이 많이 생겨날 것”이라고 덧붙였다.
정 의원에 견줄 만한 주자로는 강금실 법무부 장관도 거론된다. 강 장관은 열린우리당 출범 이후부터 본인이 계속 부정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영입대상 영순위’로 꼽혀왔다. 그러나 당내 중진들이 강 장관의 상품성에 대해 호의적인 반면 소장파 그룹은 “아직 개각도 되지 않은 상황에서 강 장관 영입을 구체적으로 논할 수 있는가”라는 다소 냉소적인 의견을 내놓고 있다.
우리당 당권 경쟁에 불을 지필 또 하나의 변수로 ‘천·신·정’그룹의 후보 단일화 카드도 거론된다. 총 다섯 명을 직선으로 뽑는 상임위원 선거에서 비슷한 성향의 ‘천·신·정’그룹이 총출동하면 상위 후보들 간의 차별화가 여의치 않을 것이란 지적이다.
이들 세 의원은 우리당을 대표하는 대중적 정치인들. 따라서 이들이 따로 회동을 갖고 의견을 모아 후보를 한 명으로 압축시키게 되면 언론의 조명을 받게 될 것이고 이는 곧 전당대회 흥행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세 사람의 후보단일화 가능성을 낮게 보는 당내 일부 인사들은 “‘천·신·정’그룹이 전당대회 흥행의 걸림돌”이라 표현하기도 한다. ‘천·신·정’그룹의 상위권 득표가 예상되는 현재의 분위기로 전당대회를 치르게 되면 세 사람 모두 상임위원 안에 들 것이란 생각에 이들이 전당대회 흥행을 위한 노력을 별로 기울이지 않고 있다는 지적이다. 당내 한 소장파 의원은 “직선으로 상임위원 5명을 뽑는데 세 사람이 굳이 단일화 같은 궂은 일을 하겠는가”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이에 대해 천정배 신기남 의원측은 “아직 (세 사람의 거취에 대해) 논의를 할 때가 아니다”고만 밝히고 있다. 정동영 의원도 단일화 논의에 대해 시기상조임을 언급하며 “세 사람이 자주 만나 당 발전에 대한 의견을 나누고 있다”고만 밝혔다.
우리당 내에는 “정 의원을 축으로 하는 ‘천·신·정’에 대한 당내 비토 의견이 나오는 것 자체가 결국 정 의원의 대세를 인정하는 셈”이라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결국 걸출한 외부인사 영입이 당장은 어려워 보이는 상황에서 전당대회 흥행 여부는 ‘천·신·정’의 행보에 어느 정도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관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