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금융지주 민영화를 위한 회장’임을 자처한 이순우 회장. 하지만 이 회장의 뜻과 달리 민영화는 난항을 겪고 있다. 연합뉴스
미국계 에이스생명보험 등 우리아비바생명 인수 후보로 거론됐던 세 곳이 모두 실사 과정을 거친 후 입찰을 포기했다. 심지어 가치상 마이너스(-)여서 돈 들여 인수해봐야 손해라는 얘기까지 나왔다. 개별 입찰을 허용했던 우리저축은행 역시 마찬가지 상황이어서 인수 의향자가 없어 매각이 무산됐다. 이로써 우리아비바생명과 우리저축은행은 모두 우리투자증권 패키지에 포함돼 매각될 것으로 보인다.
정부는 우리금융의 빠른 민영화를 위해 그동안 고수해오던 일괄매각 방식을 버리고 지방은행계열, 증권계열, 우리은행계열, 세 개로 분할해 매각하는 방식을 택했다. 더 나아가 우리아비바생명, 우리저축은행, 우리자산운용 등 일부 비인기 매물에 대해서는 개별 입찰도 허용했다. 다시 말해 개별적으로는 사고 싶은데 우리투자증권과 묶여 있는 탓에 거액을 들이기 힘들어 하는 인수 의향자의 부담을 없애주겠다는 것이다.
다른 한편으로 보면 우리투자증권을 인수하고자 하는 쪽에도 비인기 매물을 함께 떠넘기지(?) 않아도 돼 우리투자증권 매각에 탄력을 붙이고 매각 가격도 높이겠다는 계산이 깔려 있었던 것으로 해석된다. 하지만 개별 매각이 실패로 돌아감으로써 우리금융 민영화 계획에 차질이 빚어지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개별 매각이 실패하면서 분할 매각 방식에 대한 회의적인 시선이 늘고 있는가 하면, 헐값 매각 논란도 불거지고 있다. 정치권과 시민단체를 중심으로 우려의 목소리도 제기되고 있다. 지난 11일 국회에서는 ‘우리금융지주의 분리매각 중간평가 및 올바른 민영화의 해법’ 주제로 토론회가 벌어졌다.
실제로 우리F&I와 우리파이낸셜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입찰 등 우리금융 민영화가 본격화하고 있지만 현재 분위기는 흥행 기대감으로 충만해 있던 시작 당시 그것과 판이하다. 정부와 금융당국의 자신감에 찬 목소리도 듣기 힘들다. 특히 가격적인 면에서 대부분 제값을 받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이 잇따르면서 분할 매각에 대한 회의론이 고개를 들고 있다.
첫 단추부터 제대로 끼우지 못했다. 가장 먼저 우선협상대상자가 선정된 우리F&I와 우리파이낸셜의 매각 가격이 예상치를 밑돌 것으로 보인다. 당초 인수 후보로 거론됐던 KT나 현대캐피탈 등이 참여하지 않은 것이 가격 형성에 악영향을 미쳤다는 분석도 있다. 결과적으로 매각 가격이 기대 수준에 미치지 못할 것이라는 전망은 우리금융 민영화 진행이 순조롭지 않을 것이라는 불길한 징조를 내보이고 있다.
아니나 다를까, 우리금융 매각의 세 패키지 중 가장 인기 있다고 알려진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매각 가격 역시 정부와 우리금융 측의 기대를 충족시키지 못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우리투자증권에 대한 시장평가액은 약 1조 원. 여기에 우리자산운용, 우리아비바생명, 우리저축은행을 포함한 정부의 예상가는 약 1조 5000억 원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개별 매각 실패 과정에서 드러난 우리아비바생명과 우리저축은행의 마이너스 가치가 오히려 1조 원으로 평가받는 우리투자증권 가치마저 깎아먹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패키지로 묶이면서 되레 우리투자증권의 가치를 떨어뜨리는 부작용을 낳은 것이다.
현재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인수 의향을 보이는 곳조차 인수 가격을 1조 원 이하로 보고 있기도 하다. 우리투자증권 인수를 희망하는 곳의 한 관계자는 “우리아비바생명과 우리저축은행의 현실이 오픈됐기 때문에 두 회사의 가치가 당연히 패키지 매각 가격에 포함돼야 한다”면서 “우리투자증권만 따로 보면 대략 1조 원으로 평가받고 있는데, 우리아비바생명과 우리저축은행을 고려해 무리한 가격을 써내지는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1조 원보다 낮은 가격도 배제할 수 없다. 앞의 관계자 말마따나 우리아비바생명과 우리저축은행의 마이너스 가치를 우리투자증권 가치에 반영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설득력이 있기 때문이다. 인수하는 쪽에서는 우리투자증권을 손에 쥐기 위해 필요 없는 다른 회사들을 울며 겨자 먹기로 인수해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금융권 관계자는 “그나마 플러스(+) 가치가 있는 회사라면 모를까 마이너스 가치를 지니고 있는 회사는 인수 후 애물단지가 될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 우리투자증권의 헐값 매각을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오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러나 우리금융 관계자는 “패키지 총액으로 따졌을 때 얘기일 뿐 절대 우리투자증권의 가치가 떨어지는 일은 없을 것”이라며 헐값 매각 논란을 경계했다.
우리투자증권 패키지 인수를 희망하고 있는 KB금융지주 관계자는 “정부에서 그렇게(패키지) 팔겠다고 하니 룰을 따를 수밖에 없지 않겠느냐”고 반문하며 “그들(우리아비바생명·우리저축은행)에 대한 활용 계획은 아직 따로 없다”고 밝혔다. 또 다른 인수 후보자인 NH농협금융 관계자는 “우리는 생명과 은행이 크기 때문에 두 회사에 대한 임팩트가 없다”면서도 “그러나 욕심나는 큰 땅을 얻기 위해서 쓸모없는 땅을 함께 매입해야 한다면 그렇게 해야 하지 않겠느냐”며 여전히 강한 인수 의지를 내비쳤다. 두 곳 모두 우리아비바생명과 우리저축은행에는 관심이 없다는 속내를 숨기지 않았다.
사정이 이렇게 흘러가자 우리금융 내부에서는 동요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심지어 “민영화가 제대로 될지 의문”이라는 푸념을 내뱉는 직원도 심심찮게 목격할 수 있다. 우리금융의 한 직원은 “매각이 진행되면서 일부 계열사 직원들 사이에서는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데 대해 자존심 상한다는 얘기가 오가고 있다”고 전했다. 우리금융 계열사의 한 임원도 “가장 덩치가 큰 우리은행 매각이 불투명한 상황에서 민영화 달성을 장담하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민영화 덫에 걸린 정부가 우리금융이 갈가리 쪼개지는 한이 있더라도 무조건 팔고 보자는 심산 아니냐는 의혹을 사고 있기도 한다. 재계 관계자는 “이런 식의 매각이라면 지난 정부에서 못할 이유가 없었다”며 “우리금융 민영화가 왜 세 차례나 무산됐는지, 지금의 매각에 대해 나중에 뒷말이 나오지 않을지 생각해봐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비록 출발 당시의 장밋빛 전망과 요란한 흥행몰이는 많이 퇴색했지만 우리금융 민영화는 ‘현재진행형’이다. 현재 진행 중인 사안을 두고 곳곳에서 이러쿵저러쿵 말이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매각 진행이 깔끔하지 않고 앞날이 투명하지 않다는 방증이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