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세 번째 검찰 소환되던 지난 19일 오전, 추운 날씨에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검 앞에서는 동양그룹 회사채·CP 피해자들이 현 회장을 기다리고 있었다. 현 회장이 탄 차량이 도착하자마자 이들은 일제히 “현재현을 구속하라”, “내 돈 내놔” 등의 구호를 외치며 달려들었다. 차량을 발로 차고 계란을 던지는가 하면 차에서 겨우 내린 현 회장을 향해 구호가 적힌 피켓을 휘두르는 등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이 과정에서 현 회장이 이마에 상처를 입기도 했다.
지난 19일 검찰에 3차 소환된 현재현 동양그룹 회장이 서초동 중앙지방검찰청으로 들어서자 피켓시위를 하고 있던 피해자들(아래)이 달라들어 현장은 아수라장이 됐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피해자들에 대한 보상과 대책도 문제지만 동양그룹 계열사 곳곳에서 내부 갈등이 폭발하고 있다는 것이 동양그룹을 바라보는 사람들을 가장 불안하게 하는 부분이다. 당초 동양증권 직원들의 고소가 현 회장이 검찰 소환 조사까지 받게 된 원인 중 하나였을 정도로 주력 계열사 법정관리 신청 이후 동양그룹은 경영진과 직원들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으로 치닫고 있다.
동양그룹 주변에서는 직원들이 현 회장을 비롯한 전·현 경영진을 비난하는 광경을 종종 목격할 수 있다. 사기성이라는 의심을 받고 있는 회사채와 CP를 발행, 사건의 중심에 있는 동양증권의 직원들이 “우리도 속았다”며 동양시멘트의 법정관리 신청을 반대하고 현 회장을 검찰에 고소한 것은 그 시작에 불과하다.
지난 11일에는 동양매직 임직원 350명이 일괄사표를 제출해 파문이 일었다. 동양매직은 동양 계열사 중 몇 안 되는 알짜 회사 중 하나로 현 회장이 애지중지하는 장녀 현정담 상무가 애착을 가진 회사다. 임직원들이 일괄사표를 제출하는 강수를 둔 까닭은 정성수 동양 법정관리인이 지나치게 경영에 간섭, 회사 가치를 떨어뜨리고 있다는 판단에서다. 일괄사표 제출과 함께 정 법정관리인에 대한 탄원서를 제출한 것도 이 때문이다. 심지어 일부 계열사 가운데선 전 임원을 욕설과 함께 노골적으로 비난하는 직원도 있다.
한편에서는 총체적 부실 징후와 투자자들의 추가 피해도 우려된다. 현 회장은 자신과 관련한 의혹과 혐의에 대해 완강히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지만 금융감독당국은 이미 현 회장과 정진석 전 동양증권 사장 등 그룹 핵심 경영진들이 동양증권 임직원들에게 허위사실로 CP 판매를 독려한 정황을 포착해 정보를 검찰에 넘긴 것으로 전해진다. 금감원은 또한 지난 18일 동양증권을 특별검사하는 과정에서 (주)동양 소유의 서울 한남동 고급 빌라를 동양증권이 시세보다 비싼 가격에 매입하는 형식으로 (주)동양을 부당 지원한 것으로 보고 검찰에 관련 사실을 알리기도 했다.
이뿐만이 아니다. 그룹의 사금고 역할을 했던 동양파이낸셜대부가 그동안 자금 사정이 나은 계열사들로부터 돈을 빌려 자금 압박에 시달리던 계열사들에 불법 대출해주는 형식으로 부당 지원했다는 의혹도 사고 있다. 동양파이낸셜대부가 동양그룹의 불법 돌려막기의 핵심 역할을 했다는 것. 이처럼 그동안 숨겨왔던 부실과 비리가 속속 드러나면서 동양그룹이 총체적으로 비리를 저질러온 것 아니냐는 의혹이 짙어지고 있다.
지난 11월 말에는 그나마 우량 계열사로 알려졌지만 법정관리 신청으로 논란을 빚은 동양시멘트의 감자설이 나돌아 투자자들을 화들짝 놀라게 하기도 했다. 안 그래도 큰 피해를 당해 분노하고 있는 피해자들이 추가 피해를 우려하지 않을 수 없었다. 비록 동양시멘트가 자산이 부채보다 많아 감자 가능성이 낮은 것으로 파악됐지만 법정관리 중인 터라 장담할 수는 없는 상태다. 부채가 자산보다 훨씬 많은 (주)동양은 감자가 불가피한 것으로 알려졌다.
또 다른 재계 관계자는 “부실 규모와 범위가 크고 넓어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많은 시간이 걸릴 것”이라며 “사태가 마무리되기는커녕 더 많은 피해와 부실로 이어질 공산이 크다”고 말했다.
임형도 기자 hdlim@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