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강민씨(왼쪽), 김영수씨 | ||
대북송금사건을 수사할 특검 후보로 선정된 두 명의 ‘명망있는’ 변호사가 공교롭게도 나란히 관련 기업의 사외이사로 재직한 전력이 밝혀졌기 때문.
논란 끝에 송두환 변호사가 특별검사로 임명되긴 했지만, ‘전직 외환은행 사외이사’는 여전히 혹으로 남아 있다.
이번 파동을 계기로 특검 조사 대상으로 거론되는 기업들의 전·현직 사외이사들의 면면에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사외이사의 기능이 아직도 감시보다는 대외 로비 쪽으로 더 무게가 쏠려 있기 때문이다.
<일요신문>에서 확인한 결과, 현대 계열사와 외환은행 사외이사진은 정·관계, 금융계, 법조계에 걸쳐 그 면면이 실로 화려했다.
사외이사란 회사의 임원이 아닌 주주로부터 수권을 받은 이사로서 회사의 최고경영자 등 업무집행기관으로부터 독립적인 위치에서 법령이나 정관에 정해진 직무를 수행하는 이사다. 따라서 원래의 취지는 경영진의 업무집행에 대한 감시감독 기능이 주목적.
하지만 지난 정권 때 불거진 각종 게이트 등을 거치면서 사외이사가 마치 공인된 로비스트처럼 비쳐지고 말았다. 현대중공업 사외이사진이 지난해 대선 직전 정몽준 캠프에 특보로 합류한 대목 역시 사외이사가 경영자의 측근 중에서 많이 발탁되고 있음을 반증했다.
이번 대북송금사건의 핵심 쟁점은 현대상선이 북한측에 전달한 5억달러를 둘러싼 자금의 성격과 안팎의 여러 개입 흔적, 그리고 추가 송금 여부 등이다.
이 과정에서 조사 대상에 오르내리는 기업으로 현대상선 외에도 현대증권 하이닉스반도체 현대건설 등이 지목되고 있다. 주로 정몽헌 회장이 이끌었던 현대 그룹 계열사들이다.
여기에 현대상선의 주채권은행인 외환은행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국내 재벌 기업의 특성상, 현대의 다른 계열사들도 자유로울 수는 없는 입장이다.
이번 특검 임명 과정에서 논란이 된 것은 송 특검과 우정권 변호사가 각각 외환은행과 현대증권의 사외이사를 지낸 전력이 드러났기 때문.
송 특검은 지난 1999년부터 2002년까지 외환은행의 사외이사로, 우 변호사는 2000년 1월부터 2001년 6월까지 현대증권의 사외이사로 각각 재직했다.
이외에도 현대 계열사들과 외환은행 사외이사진 중에는 정부 부처 및 출연기관에 재직중이거나 자문위원을 맡고 있는 인사들이 유독 많았다. 또 외환은행 출신 금융인들이 공교롭게도 현대 계열사 사외이사에 많이 발탁되었다는 점도 두드러진다.
우선 눈에 띄는 인사는 이동걸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이 부위원장은 지난해 6월 하이닉스반도체의 사외이사로 임명되었다가 정권인수위원회에 들어가자 올초 사퇴했다.
이 부위원장은 노 대통령이 각별히 신임하는 경제정책 브레인 중의 한 명. 그는 이근영 전 위원장의 사퇴 이후 한때 유력한 금감위원장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 이상용씨(왼쪽), 이선씨 | ||
이선 경희대 교수는 산자부 산하 산업연구원장을 지냈고, 장윤종 이사는 외교통상부, 국무조정실 등을 거쳐서 현재 산업연구원 부원장으로 있다. 전용욱 중앙대 교수는 외교통상부 통상교섭 전문위원으로 활동중이다.
또 김수창 변호사는 사시 11회 출신으로 현재 법무법인 Kim & Company의 대표. 율촌합동법률사무소 우창록 대표 변호사와 이용성 전 은행감독원장도 지난해까지 하이닉스 사외이사를 지냈다.
현대증권 사외이사인 송희준 이화여대 교수는 대통령자문기구인 정부혁신위원회 위원. 송 교수는 지난 2000년부터 송 특검과 함께 이 위원회에서 활동한 바 있다.
정부혁신위원회는 새 정부 들어서면서 정부혁신 및 지방분권 위원회로 이름이 바뀌면서, 위원장이 장관급으로 격상됐다. 전재중 변호사는 사시25회 출신으로 현재 법무법인 소명 대표이다. 신우범씨는 한국산업은행 출신.
현재 현대상선 사외이사인 채이식 고려대 교수는 법무법인 태평양 고문으로서 해양수산부 정책자문위원을 맡고 있다. 송희연 한국경제연구학회장은 한국개발연구원(KDI) 원장을 지냈다. 양종민씨는 광주지방국세청장을 지낸 경력이 있다.
현대건설의 경우 이영우 사외이사는 외환은행 상무이사와 한국수출보험공사 사장을 각각 역임했다. 김정호 사외이사는 현재 국토연구원 SOC건설경제 연구실장으로 재직 중이다. 김대영 전 건설부 차관도 지난해까지 현대건설 사외이사를 지냈다.
이 밖에 다른 현대 계열사 사외이사 가운데서도 여러 인사가 눈에 띈다.
현대자동차 계열인 현대하이스코 사외이사인 안강민 변호사는 대검 중수부장 출신. 안 변호사는 당초 이번 대북송금 특검에서 유력한 후보로 거론되기도 했다. 하지만 역시 현직 현대 계열사 사외이사라는 점이 걸림돌로 작용해 배제됐다는 시각도 있다.
국내 상장사 가운데 가장 먼저 사외이사제를 도입했던 현대종합상사에는 김영수 전 문화체육부 장관, 박진호 전 과기처 차관, 이재후 김&장 법률사무소 대표 변호사가 사외이사로 포진해 있다.
현대상사는 한때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동생인 회성씨를 사외이사로 등재시킨 바도 있다. 하지만 99년 세풍 사건이 불거지면서 회성씨는 사퇴했다.
현대미포조선에는 사시 21회 출신 변호사 강희철 국방부 법률고문, 김주일 전 외교통상부 본부대사 등이 사외이사로 등재되어 있다.
노영욱 전 통상산업부 기획관리실장과 이상용 전 예금보험공사 사장은 현대모비스 사외이사이다. 현대자동차에는 공정거래위원회 심사위원을 지낸 김광년 변호사와 박병일 전 국세청 조사국장 등이 있다. 김 변호사는 현대하이스코 사외이사도 겸하고 있다. 김종성 전 예금보험공사 감사는 현대해상화재보험 사외이사이다.
현대중공업의 사외이사진 면모 역시 화려하다. 박준환 전 외환은행 전무, 이선호, 정문모 전 한국수출입은행 전무 등 금융계 인사들이 유독 많다. 강신옥 전 의원과 박진원 금감위 비상임위원은 지난해 대선 직전 정몽준 캠프에 합류하면서 사외이사에서 사퇴했다.
현대산업개발에는 지청 재무부 정책자문위원, 최명주 전 금융개혁위원회 위원, 홍성웅 금융개혁위원회 위원 등이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고, 현대엘리베이터에는 이만우 고려대 교수 겸 전 재경부 세제발전심의위원회 위원, 허호준 전 서울지방국세청 직세국장 등이 있다.
기아자동차에는 최열 전 환경연합 사무총장, 조동성 금감위 기업구조조정위원, 김종창 전 서울지방국세청장 등이 있다. KCC에는 송종의 전 대검차장이 사외이사직을 맡고 있다.
두 명의 외국인을 포함 모두 9명의 사외이사를 두고 있는 외환은행에도 경제부처 관련 인사가 많다. 강응선 대통령소속 규제개혁위원회 위원, 김영대 금융결제원 상임고문, 선우석호 전 금감위 평가위원, 차백인 한국금융연구원 연구조정실장 등 8명이 경제계 출신 인사다.
대전지검장을 지낸 김병학 감사원 감사위원, 김상경 한국국제금융연수원장, 박영철 외교통상부 대외경제통상 대사 등도 최근에 사임한 전직 외환은행 사외이사 출신.
이번 특검 후보 논란에 대해 현대 계열사의 한 사외이사는 “아직도 사외이사에 대한 잘못된 인식이 사회 저변에 자리잡고 있는 것이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다. 그는 “단지 현대 계열사의 사외이사라고 해서 특검 조사때 현대측의 이익을 대변하리라고 생각한다면 그것은 사외이사의 본질에 대한 모욕”이라고 강도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아직 완전히 자리잡지 못한 국내 사외이사 제도에 대한 문제점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