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태원 회장(왼쪽)에 이어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오른쪽)도 지난 18일 구속되면서 SK파문이 커지고 있다. | ||
검찰이 SK의 비자금 조성 규모와 정·관계 인사 로비 여부를 본격적으로 수사하면서 이번 사건은 새로운 국면을 맞고 있다. 실제로 검찰 안팎에서는 SK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전직 경제부처 고위 관료들의 실명이 오르내리고 있는 상태다.
조만간 한 지방자치단체장도 검찰에 소환될 예정. 여기에 지난 대선 당시 SK로부터 ‘뭉칫돈’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정치권도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몇몇 정계 실세들이 SK의 로비대상이었다는 소문이 여의도 정가를 잔뜩 긴장시키고 있다.
SK그룹이 비자금을 조성해 정·관계에 로비자금으로 뿌렸다는 정황이 검찰 수사 과정에서 속속 밝혀지고 있다. 현재까지 검찰 수사에서 SK로부터 금품을 제공받은 사실이 포착된 이들은 전직 경제부처 고위공직자 3명과 지방자치단체장 1명 등 모두 4명.
이남기 전 공정거래위원장은 자신이 다니던 북한산 사찰에 10억원을 기부하도록 SK그룹에 외압을 행사한 혐의로 지난 18일 구속 수감됐다. 그렇지만 이 전 위원장에 대한 수사는 여기서 그치지 않을 전망.
검찰은 “SK구조조정추진본부 등의 계좌를 추적한 결과 지난해 SK에서 제공했다는 2만달러와는 별도로 금품을 전달받은 사실을 포착했다”고 밝혔기 때문. 이 전 위원장에 대한 뇌물수수혐의가 추가될 것을 시사하는 대목이다.
또 검찰 안팎에서 SK로부터 금품을 받은 인사로 손영래 전 국세청장이 거명되고 있다. 검찰 주변에선 손 전 청장이 지난해 5월 SK측으로부터 해외 출장비 명목으로 1천만원을 받았다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여기에 지난해 10월 딸의 결혼식 축의금으로 5백만원을 더 받았다는 얘기까지 덧붙여진 상태다.
그렇지만 검찰에서는 아직 손 전 청장에 대한 본격적인 조사에 나서지 않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손 전 청장이 SK로부터 소액의 금품을 받은 정황은 맞지만 대가성 여부가 불분명해 수사에 착수할지는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고 밝혔다.
▲ 손영래 전 국세청장 | ||
손 전 청장은 “SK그룹으로부터 돈을 받았다는 것을 인정할 수 없다”며 금품수수 혐의를 부인했다. 그는 “(돈을) 받은 적이 없기 때문에 확인해줄 게 아무 것도 없다”라고 말했다.
그런데 검찰은 이남기 전 위원장과 손영래 전 청장 이외에도 또 다른 경제부처 고위 간부도 SK로부터 금품을 받은 정황을 추가로 포착, 내사중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에 대해 검찰은 “아직 확인해 줄 수 없다”고만 밝혔다.
이들 경제부처 고위 인사들 외에도 SK로부터 금품을 수수한 혐의를 받고 있는 인사로 경기도 남양주시장이었던 김영희씨 이름이 오르내리고 있다. 김씨는 남양주시장으로 재직중이던 지난해 5월 SK건설 관계자로부터 경기도 남양주시 SK리조트 사업 인·허가 등을 대가로 5천만원을 수수한 의혹을 받고 있다.
검찰 관계자는 “최근 SK건설의 한 임원을 소환 조사한 결과 현재 구속돼 있는 김창근 구조조정본부장으로부터 5천만원을 받아 김 전 시장에게 전달했다는 진술을 확보했다”고 밝혔다.
이에 검찰은 김 전 시장에 대한 출국금지 조치를 내렸다. 김씨는 현재 잠적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와 함께 검찰은 SK건설이 리조트 인·허가 과정에서 또 다른 공무원들을 상대로 로비를 했는지도 추가로 조사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처럼 현재까지의 검찰 수사 방향은 SK그룹이 고위공직자와 지방자치단체장 등을 상대로 로비를 펼친 대목에 주목하고 있다.
그런데 검찰 수사가 여기서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검찰 안팎에서는 ‘다음 타자’는 ‘정치권 인사’라는 말이 심심찮게 나돌고 있는 상태. 실제로 검찰도 SK계좌에서 흘러나간 자금 전체를 추적할 것임을 시사했다. 이에 “검찰이 이미 SK그룹 로비자금이 정치권으로 유입된 정황을 상당 부분 포착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고 있다.
여의도 정가에서도 그동안 ‘SK그룹의 정치권 로비설’이 나돌았다. “SK가 지난해 대선 당시 한나라당과 민주당에 ‘보험용’ 명목으로 뭉칫돈을 뿌렸다”는 것. 실제로 대선 당시 자금을 총괄 관리했던 이상수 민주당 사무총장도 “SK가 후원금을 상당히 많이 낸 기업에 속한다”고 밝힌 바 있다. 하지만 구체적인 후원금 액수에 대해선 언급을 회피했다. 당시 후원금 액수가 연간 한도액인 2억원을 훨씬 초과한 10억원에 달했다는 소문까지 퍼지기도 했다.
더욱 주목할 점은 SK그룹 수사 외압 논란이 벌어졌던 지난 3월 한 검찰 관계자가 “SK 수사 도중 검찰에 청탁전화를 건 민주당 이상수 사무총장 외에도 여권 실세 정치인 1∼2명이 더 있는 것으로 안다”고 말했다는 것이다. ‘청탁전화’를 건 정계 인사가 누구인지는 아직 베일에 가려져 있다.
이런 정황을 근거로 SK그룹의 전방위 로비가 정가에도 펼쳐졌을 것이라는 게 검찰 안팎의 대체적인 시각이다. 현재 거명되고 있는 전직 고위공직자 등의 수사가 일단락된 후 ‘검찰의 칼’은 여의도를 겨냥할 것이라는 얘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