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 10명 중 1명이 치매에 걸리는 시대가 됐다. 환자 당사자뿐만 아니라 간병하는 가족들에게도 엄청난 부담으로 다가온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가정을 풍비박산 내는 치매환자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의 진료 통계에 따르면 지난 2012년에만 29만 5000여 명(진료 받은 사람 기준)으로 불과 10년 사이에 6.5배 이상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병원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환자까지 포함하면 전체 노인인구의 10%(약 57만 명)에 육박한다. 또한 노인 10명 중 3명 이상이 치매 전 단계인 경도인지장애를 보이고 있어 앞으로 치매환자는 더욱 급증할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치매환자들에 대한 체계적인 지원이 이뤄지지 않아 모든 부담을 가족들이 고스란히 떠안고 있다는 점이다. 현재 치매환자 중 홀로 생활할 수 있는 경증환자 10만 명과 노인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는 18만 9000여 명을 제외한 나머지 29만 명은 전적으로 보호자들의 돌봄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치매 진료비만도 연간 1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추정되는데 <일요신문> 취재 결과 가족들은 재정적인 부담뿐만 아니라 주변의 시선, 정신적인 스트레스, 불화 등으로 환자 당사자보다 더욱 극심한 고통을 받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증상이 심하지 않은 치매환자를 돌보는 것도 보통 일이 아니었다. 자신이 치매라는 것을 인정하기까지 많은 시간이 걸리는데 이를 지켜보는 것도 보호자의 몫인 것. 갑자기 환자를 돌봐야 하는 가족들이 적응하는 데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부산의 한 요양병원에서 근무하는 이 아무개 씨(여·28)는 “작은 사업체를 운영하는 60대 남자 환자 분이 있었다. 퇴직금으로 시작한 사업이지만 뜻대로 운영이 안 돼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 결국 치매까지 오게 됐다. 그런데 환자 분이 치매를 인정하려 하지 않았다”며 “일 때문에 치매에 걸렸으니 사업이 잘 되면 자신의 병도 나을 거라 생각해 자식들 몰래 운전도 하더라. 문제는 사고를 내고도 무슨 일이 있었는지를 잊어버리고 그냥 돌아온다는 점이었다. 뺑소니로 수차례 신고를 당해 자식들이 매주 경찰서를 들락거렸는데 그때마다 자식과 아버지 사이에 싸움이 있었다”고 말했다.
환자보다는 치매를 이해하지 못하는 가족들로 인한 스트레스도 만만치 않았다. 김 아무개 씨(31)는 요즘 잠 못 이루는 밤을 보내고 있다. 김 씨의 어머니는 3년 전부터 치매를 앓고 있는데 아버지가 낮에, 김 씨가 밤에 간호를 맡고 있다. 육체적인 피로야 이젠 익숙해질 법도 했지만 김 씨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아버지의 태도다.
김 씨는 “아버지가 치매를 이해하지 못한다. 오히려 당신이 간병 스트레스로 자살하겠다고 하신다. 치매는 기억을 잃어가는 병인데 아버지는 어머니가 가스레인지 불을 끄지 않았다, 화장실 불을 켜놓고 다닌다, 자신의 휴대전화를 숨겼다며 윽박지른다. 치매환자들에게 화를 내면 증세를 악화시킬 뿐이라 몇 번을 말씀드려도 소용없다. 퇴근하면 어머니는 본능적으로 내 뒤로 숨고 그런 모습에 또 아버지는 ‘공도 몰라 준다’며 화를 내고 미치겠다”고 말했다.
부모의 병으로 자신의 가정을 위협받는 경우도 있다. 임신 7개월의 양 아무개 씨(여·31)는 치매 어머니를 모시고 지낸다. 양 씨는 “파킨슨병과 함께 치매가 와서 거동이 매우 불편하다. 식사도 홀로 못 드시는데 치매로 밥을 먹었다는 사실을 자꾸 잊어 하루 10번 이상 식사를 차려드려야 한다. 외동딸이라 신랑도 어쩔 수 없이 모시는 걸 허락했지만 이제 아기까지 태어나면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며 답답해했다.
또한 양 씨는 “어머니를 요양병원에 모시고 싶지만 내가 그런 기색을 보이면 귀신같이 알고 ‘내가 잘 할게. 가기 싫어’라며 우신다. 그런 모습에 나도 울고 거의 매일 울음바다라 태교도 제대로 못하고 있다. 엄마도 아기도 포기할 수 없는 내 신세가 너무 처량하다”며 울먹거렸다.
이처럼 치매환자 간병으로 인해 스트레스를 받던 보호자들은 불면증, 우울증을 겪다 결국 분노가 폭발하면 이른바 ‘간병 살인’을 저지르기까지 한다. 하지만 치매환자도 제대로 지원 받지 못하는 현실에 보호자들은 어디 하소연 할 곳도 없이 오늘도 지옥 같은 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지금 우리나라는 ‘치매는 가족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의 병’으로 인식하는 전환기에 서 있다.
박민정 기자 mmjj@ilyo.co.kr
10년 이상 투병…3대가 고생
치매 노인을 돌보느라 나이 지긋한 자녀가 경제 활동을 못하는 경우도 많다.
벌써 16년째 치매로 투병생활을 하고 있는 김 아무개 할머니(88)는 슬하에 4남 1녀를 뒀지만 지금은 장남만이 곁에 남아있다. 물론 처음부터 이러진 않았다. 김 할머니가 치매 판정을 받자 자식들은 너도나도 앞장서 어머니를 돌보겠다고 했다. 하지만 긴 병에 효자 없다는 말이 딱 맞았다. 모두가 2~3년씩 어머니를 돌보고 나자 하나같이 연락을 끊었다.
여러 원인이 있었지만 가장 큰 부담은 금전적인 것이었다.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치매 환자 1인당 사회적 비용은 연간 2341만 원(중증)에 달한다. 암과 심장질환, 뇌졸중을 모두 합한 비용보다 많은 수치다. 개인적인 부담도 만만치 않아 치매로 인한 1인당 진료비만 연간 310만 원에 이르며 가족들이 부담하는 간접비용도 연간 2000만 원 수준으로 알려졌다.
김 할머니의 장남 신 아무개 씨(67)는 “어머니야 워낙 오래 전에 치매진단을 받아 기억도 안 나지만 요즘 주변 사람들을 보면 검사비용만 100만 원이라더라. 혈액검사에 MRI촬영, 인지기능 검사 등 뭐가 그리 복잡한지 모르겠다. 고령에 오래 치매를 앓아 요즘도 매달 병원에 가는데 20만 원 정도 나온다”며 “이밖에도 한 달을 기준으로 증상완화를 위한 약값 월 30만 원, 식비 40만~50만 원(치매로 하루 5끼 이상을 찾는다), 보조용품 30만 원까지 어지간한 신입사원 연봉만큼 든다”고 말했다.
더욱 힘든 것은 어머니를 돌보면서 자신도 경제활동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점이다. 신 씨는 “눈으로 보이는 지출도 어마어마하지만 어머니로 인해 가족들이 경제활동을 못하는 피해도 상당하다. 간병인을 써봤으나 폭력적인 성향이 강한 어머니를 견디는 사람이 없더라. 결국 가족들이 돌아가며 어머니 곁을 24시간 지켜야 하니 나와 아내는 꼼짝없이 집에 갇힌 신세다. 아내도 나이 때문에 기력이 약해져 내가 일찍 퇴직을 해 우리 애들이 고생을 많이 한다”며 한숨 쉬었다.
이 같은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해 정부는 오는 7월부터 노인장기요양보험에 치매특별등급을 신설해 돌봄이 필요한 노인 2만 5000명 이상에 대해 요양보험 혜택을 줄 예정이다. 하지만 보호자들은 하나같이 “별로 도움이 안 된다”는 반응이다. 8년 치매 투병 끝에 어머니를 보낸 김 아무개 씨(여·54)도 “마지막 3년은 요양병원에 모셨는데 그때도 식대비, 물리치료비, 간병비, 보조용품 등 매달 최소 70만 원의 비용이 들었다. 하루 2~3시간 간병해주는 서비스, 약값 2만 원 지원, 이런 단편적인 것 말고 치매환자들을 전문적으로 돌보는 시설부터 확충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