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세돌 9단(왼쪽에서 두번째)은 베이징에 ‘이세돌바둑학교’를 열었다.
‘이세돌바둑학교’는 실내가 100평이 넘는 규모. 중국에서라면 이 정도를 보고 크다고 말하는 사람은 없지만, 우리와 비교하면 바둑교실치고는 상당한 규모다. 잘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이 9단 자신의 말마따나 “바둑학교에 자주 가지는 못할 것이며 잘해야 1년에 네댓 번일 것”이겠지만, 어쨌든 바둑학교가 성공해서 국내 바둑교실들에 새로운 패턴의 운영방식과 돌파구를 제시해 주면 좋겠다.
아닌 게 아니라, 우리는 몇 년 전부터 바둑교실이 어렵고 전국적으로 숫자가 빠른 속도로 줄어들고 있지만, 중국은 호황이다. 우리 1990년대 중반을 보는 것 같다. 베이징을 비롯해 상하이, 항저우 같은 대도시에는 바둑교실이 계속 생기고 수강생이 400~500명은 보통이다. 한동안 우리나라에서 활동하다가 돌아간 장주주-루이나이웨이 부부가 상하이에서 차린 바둑교실은 현재 1000명이 넘고 있다. 그 정도면 이미 중소기업 아닌가? 중국은 지금이 바둑보급-바둑사업을 시작하기에 적기인 셈이다.
찬성하는 쪽은 “이 9단이 돈을 바라고 하는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승부도 중요하지만 우리 바둑을 보급하는 것도 그에 못지않게 중요하다. 보급에는 스타가 나서는 것이 효과적인 것”이라면서 “일에는 때가 있다”고 강조한다. 갑론을박이 이어진다.
“이 9단이 이름을 앞세워 사업을 한다는 것인데, 우리는 물론 의도의 순수성을 믿어 의심치 않지만, 잘 모르는 사람들은 그렇지만도 않다.”
“호기심 많고 재기발랄한 이 9단을 주변 사람들이 부추기는 게 아닌가 하는 의구심도 있다. 이세돌은 우리 바둑계가 보호해야 할 이름이다. 그런 것도 한국기원이 해야 하는 일이다.”
“때가 있다고 하지만, 이 9단도 언젠가는 타이틀 무대에서 내려올 텐데, 사업을 하더라도 그때 시작하는 것이 오히려 적당한 때 아닌가?”
“잘 알아서 할 것이다. 아무튼 중국 시장에 들어가는 것은 좋은 일이다. 이 9단이니까 가능한 것 아닌가. 먼저 시작하는 것은 언제나 어려운 법. 이 9단이 미개척지를 개간해 보겠다고 하는데, 도와주면서 좋은 결실이 있도록 해야 하는 것이지, 딴죽을 걸면 되나. 호기심과 용기가 없으면 못해. 돈에 대한 감각도 있어야 하겠지. 이름이 없어도 안 되겠지. 이세돌은 그런 걸 다 갖추었잖아. 그런 사람이 얼마나 돼? 아무튼 우리나라는 모든 게 중국을 공략하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잖아.”
김승준 9단이 중국 우한에서 어린이들을 지도하는 모습.
우한은 바둑열기가 대단한 곳이다. 우한 팀이 최근 리그에서 바닥을 맴돌자 대책 마련에 나섰고, 장기적으로는 후진 양성이 절대라는 명분으로 김 9단을 지도사범-훈련감독으로 초빙한 것. ‘아시아기원’은 아예 김 9단이 어린이들을 가르치는 데 불편함이 없도록 지원하기 위해 ‘김승준 어린이바둑 장학재단’을 만들었을 정도다. 우한에는 또 ‘후베이성 CEO 기우회’라는 것도 있다. 후베이성의 사업가 중에서 바둑을 좋아하는 사장들의 모임이다. 계열기업이 자그마치 230여 개에 이른다는 콩웨이 회장이 아시아기원 원장이며 기우회장인데, 기우회 모임을 위해서는, 사무실을 마련한 것이 아니라 기우회관 빌딩을 지었다…^^. 우한과 우리 강릉은 자매결연 도시여서 그동안 한두 차례 왕래가 있었다. 김 9단이 성과를 보여주기를 바란다.
김 9단의 경우는 물론 친분이 있었기에 이루어진 일이지만, 활약 여하에 따라서는 이제는 중국 리그 용병으로서뿐 아니고 어린이-영재 바둑교육 감독으로 초빙하는 것도 늘어날 수 있다. 중국은 워낙 넓고, 지금 바둑 붐이 일고 있으니까. 거기에 바둑용병으로 들어가느냐, 바둑교실로 들어가느냐, 바둑감독으로 들어가느냐. 프로는 각자 알아서 하는 것? 그래도 교통정리 같은 걸 해 주는, ‘보이지 않는 손’ 같은 게 있으면, 좋은 거 아닌가.
이광구 객원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