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이끌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이 지난 16일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서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됐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이른바 ‘채동욱 키즈’가 생기게 된 계기는 2006년 현대차 비자금 사건이다. 이때 채 전 총장은 검찰 내 특수수사 핵심보직인 대검 수사기획관을 지내며 윤 부장검사 등 대표적인 특수통 검사들을 조련했다.
국정원 대선개입 사건 특별수사팀장을 이끌었던 윤석열 여주지청장은 이번 인사에서 대구고검 검사로 좌천됐다. 서울중앙지검 부장검사에서 여주지청장에 임명됐던 그가 고검 검사로, 그것도 지방으로 가게 된 것은 명백한 좌천인사로 볼 수 있다. 표면적으로는 조영곤 전 서울중앙지검장과 ‘항명’ 논란을 벌이는 과정에서 법무부에서 징계를 받은 게 원인이었다.
윤 부장검사는 대구지검에서 검사 경력을 시작했다. 대검 중수 1·2과장,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을 거친 특수통 검사다. 추진력이 좋고, 업무처리를 하는 데 선이 굵다는 평가를 받아왔다.
윤 부장검사는 2012년 말 검찰 내부에서 연이은 검찰 비리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한상대 전 검찰총장의 퇴진을 요구한 ‘검란사태’ 당시 채 전 총장과 함께 총장퇴진을 요구했다. 대검 차장이었던 채 전 총장은 대검 간부들과 한 전 총장의 자진사퇴를 요구하는 한편 윤석열 당시 특수1부장에게 이 같은 내용을 기자들에게 설명하도록 했다. 채 전 총장이 검찰총장에 취임한 후에는 윤대진 특수2부장 등과 함께 중용돼 국정원 특별수사팀장을 맡으며 중용됐다.
채 전 총장 아래서 4대강 사업과 동양그룹 수사 등 대형사건을 맡아 처리하던 여환섭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장검사가 대전지검 형사부로 발령 난 것도 눈여겨볼 부분이다. 지방으로 보낸 것은 김진태 현 총장이 내세운 ‘경향 교류’라고 쳐도 검찰 내 대표적인 특수통 검사를 형사부로 보낸 것은 이례적인 인사다. 주로 첩보에 의존해 인지수사를 벌이는데 특수수사에서 탁월한 성과를 거두고 있는 그를 고소·고발 사건을 도맡아 처리하는 형사부로 발령 낸 것은 검찰 조직 전체를 고려했을 때도 효율적이지 못하는 평이 나온다.
연세대 출신으로 역시 대구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한 여 부장검사는 검찰 내에서 ‘독사’로 불린다. 평소 온화한 성격에 말수가 적지만, 수사를 한 번 진행하면 매몰차게 밀어붙여 기획단계 이상의 성과를 내는 것으로 유명하다. 2011년 동부지검 재직시절 이른바 ‘함바 비리’ 사건을 맡으며 건설회사와 건설브로커 등이 연루된 단순 식당 운영권 비리수사를 전·현직 경찰 고위 간부와 고위 공직자, 공기업 임원들까지 수사대상에 포함시키며 강희락 전 경찰청장을 구속기소했던 것은 유명한 일화다.
왼쪽부터 여환섭 대전지검 형사1부장, 윤대진 광주지검 형사2부장.
CJ와 효성 등 굵직한 대기업 수사를 지휘하며 언론의 주목을 받았던 윤대진 서울중앙지검 특수2부장 역시 광주지검 형사부로 사실상 좌천됐다. 윤대진 부장검사는 윤석열 부장검사와 함께 조선 중기 중종의 친인척을 가리키는 말인 ‘대윤(大尹)과 소윤(小尹)’으로 불리며 채 전 총장을 보좌했다.
서울대 출신의 윤 부장검사는 서울지검에서 검사생활을 시작했다. 2002년 수원지검 특수부 근무 당시 경기도지사 부인, 건설교통부 간부 등 정관계 인사들이 줄 구속된 ‘분당 파크뷰 아파트 시공사업 특혜 의혹’ 수사를 처리하면서 특수수사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2011년 대검 중수부 첨단범죄수사과장 시절에는 저축은행비리 합동수사단의 1팀장으로 단군 이래 최대 경제 비리 사건으로 불리는 저축은행 비리 수사를 도맡았다. 이 과정에서 김찬경 전 미래저축은행 회장으로부터 금품을 받은 혐의로 구속기소된 이명박 전 대통령의 친형 이상득 전 의원도 윤 부장검사의 조사를 받았다.
이번 인사는 검찰 내 ‘특수통’ 시대가 가고 ‘공안통’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공안과 특수수사 어느 쪽에도 분류되지 않던 김준규 전 총장과 한상대 전 총장이 재임하고 있는 동안 대검 중수부를 축으로 한 특수통 검사들이 검찰 내 주요 보직을 꿰차고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서울대 출신 특수통 검사의 대표주자였던 차동민 전 검사장과 총장 경합을 벌였던 한상대 전 총장은 조직 내 ‘서울대-특수라인’ 검사들을 다독이기 위해 채동욱 대전고검장을 대검차장으로 임명했었다. 한상대 총장은 고려대 출신으로, 검찰에서는 기획통 검사로 분류된다. 서울대 출신에 특수수사를 맡으며 굵직한 수사를 처리한 일부 검사들은 현장수사를 하지 않는 기획통 검사들을 ‘펜대’라고 부르며 얕잡아보기도 한다.
채 전 총장의 총애를 받았던 특수통 검사들이 대거 정리된 가운데, 청와대의 공안중시 기조에 따라 검찰 내 공안검사들은 물을 만난 상황이어서 대조를 이룬다. 지난해 12월 대검 차장에 임정혁 고검장(58·16기)이 임명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검찰 일부에서는 ‘특수수사에 잔뼈가 굵고 고집이 센 김진태 총장을 신뢰하지 못하는 청와대가 대표적인 공안통인 임 고검장을 차장에 앉힌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임 고검장은 대구지검과 대검찰청, 서울중앙지검에서 공안사건을 처리하며 경력을 쌓은 뒤 한 전 총장 때인 2011년 대검 공안부장에 임명됐다.
지난해 12월 취임한 김진태 검찰총장. 박은숙 기자
이 차장검사는 인사직전 회식자리에서 검찰에 출입하는 여기자들의 손등에 입을 맞추는 등 성추행을 해 파문이 일었는데도 인사상 불이익을 입지 않았다. 서울지역의 한 부장검사는 “이 차장이 대구지검 서부지청장으로 간 것은 전보인사로, 좌천이 아니다. 성추문을 일으킨 직후에 인사가 났는데도 순조롭게 경력관리가 되는 것은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라고 말했다. 이에 대해 대검 관계자는 “이 차장에 대해 당시 대검 감찰이 진행중이었고, 결론이 나지 않은 상태에서 인사가 이뤄졌을 뿐”이라며 “감찰 결과 경고처분을 받은 이상 다음 인사에서 불이익이 있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특수통으로 분류되던 김수남 전 수원지검장이 이번 정권 최대 공안사건으로 불리는 이석기 사건을 진두지휘하며 서울중앙지검장으로 ‘영전’한 것은 ‘공안라인’을 타야 인사가 뚫린다는 것을 여실히 보여준 사례이기도 하다.
이러한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 대한 뒷말들이 나오면서 검찰의 신뢰성에 대한 비판도 거세지고 있다. 살아 있는 권력에 맞서다 밉보인 검사들은 좌천되고, 군말 없이 고분고분 하는 검사들이 승진하게 되면 검찰의 권력 감시 기능도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최근 검찰의 정권 눈치보기와 보신주의는 이미 나타나고 있다.
김진태 신임 총장이 빠른 수사를 지시했음에도 채동욱 전 총장의 개인정보 불법 유출 사건에 대한 수사는 좀처럼 속도를 내지 못하고 있다. 수사 시작 두 달이 다 되도록 진척이 없다. 청와대 총무비서관실 행정관과 국정원 정보관(IO)이 정보 유출에 개입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는데, 압수수색도 하지 않았다.
회담 대화록 유출 의혹 사건과 관련해 여권의 실세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에 대한 무혐의 처리도 검찰의 전형적인 봐주기 수사라는 말이 계속 나오고 있다. 검찰은 이미 노무현 전 대통령의 지시로 대화록을 삭제했다며 참여정부 관련자들을 기소했지만 정문헌 전 청와대 비서관과 김무성 의원 등 정상회담 대화록을 불법적으로 입수했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여권 인사에 대한 처리는 전원 무혐의로 결론이 났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정치권에서는 “권력형 비리나 정치적인 사건에 대한 검찰 수사는 형평성을 잃고 권력 입맛에 맞게 놀아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진다.
이선영 언론인
성기노 기자 kino@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