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월드컵 휘장사업자 변경과정에 당시 정몽준 조 직위 공동위원장이 청와대 관계자 등과 함께 상 당 부분 관여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 ||
하지만 당시 월드컵 조직위원회의 전략적인 특정업체 밀어주기 정황이 확연해지고 있다. 여기에는 물론 정몽준 공동위원장도 포함된다. 뿐만 아니라 청와대 관계자를 비롯한 권력 핵심인사들의 개입 의혹도 여러 문건들에서 뚜렷하게 드러나고 있다.
DJ 정권의 실세와 정부투자기관 관계자 등의 이름도 수시로 거론되고 있다. 이번 의혹의 핵심에는 코오롱그룹 이동찬 명예회장의 이복동생인 이동복씨가 경영하던 코오롱TNS라는 회사가 자리잡고 있다.
이 회사가 월드컵 휘장사업을 위해 만든 코오롱TNS월드(회장 김재기)는 2001년 12월 월드컵 휘장사업권자로 선정되는 과정에서 월드컵 조직위원회와 청와대 관계자 및 DJ 정권 실세 등으로부터 전폭적인 지원을 받았다는 의혹에서 이번 사건은 출발한다.
그 정황은 너무나도 뚜렷하다. 심지어 조직위측은 FIFA에 보낸 공문에서 ‘코오롱TNS는 한국 코오롱 그룹의 자회사로서 88년 서울올림픽과 93년 대전엑스포 행사시 라이센스 경험이 있다’라는 허위 내용까지 올렸다. 확인 결과 코오롱TNS는 코오롱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음은 물론, 위 두 행사의 라이센스 경험도 전혀 없었다.
왜 조직위측은 자칫 국제적 망신을 당할 수도 있는 이런 뻔한 거짓말까지 해가며 코오롱TNS를 띄워준 걸까. 그리고 코오롱TNS가 분식회계로 조성한 9백45억원의 행방과 연관성은 없는 것일까.
본지는 취재 과정에서 2001년 말 당시 이 휘장사업자 변경 과정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문서 4건을 입수했다. 하나는 코오롱TNS의 내부 관계자가 작성한 일종의 업무일지이고, 또 하나는 김용집 조직위 사무국장이 모 관계자와 나눈 대화 녹취내용이다. 나머지 2건은 조직위 문동후 사무총장이 FIFA측에 보낸 ‘코오롱TNS 추천 서한’과 월드컵 휘장사업 생산 하청업체의 확인서 1장이다.
문건 내용을 종합해보면 2001년 말 당시 코오롱TNS월드로의 사업자 변경 과정에서 조직위 내부에 분열이 있었던 정황이 포착된다. 즉 당초 사업자로 선정되었던 CPP코리아와 그의 총판계약 업체 G&B사를 코오롱TNS월드와 G&B로 새롭게 교체하는 과정에서 생긴 의견 충돌이다.
▲ 이연택 공동위원장은 ‘코오롱TNS’안에 회의적 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 ||
문 사무총장은 청와대 의전비서관, 총무처 조직국장, 소청심사위원장 등을 지낸 정통 행정관료 출신. 그는 당시 FIFA에 대한 조직위의 공식창구 위치였기에 FIFA로 향하는 모든 과정은 그를 거쳐야 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직위 관계자에 따르면 당시 ‘코오롱+G&B’안에 대해 이연택 위원장과 문 사무총장이 회의적이었던 반면, 정몽준 위원장과 김용집 사무국장은 적극적으로 밀어붙이는 입장이었던 것으로 전해졌다.
여기서 관심을 끄는 것은 정 위원장의 행보이다. 정 위원장은 결과적으로 김 사무국장의 주장에 동조, 코오롱TNS가 선정되는 데 적잖은 역할을 한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코오롱TNS월드의 내부 문건을 보면 사업자 교체 논의가 한창 진행중이던 2001년 12월11일자에 업체 관계자와 정몽준 위원장과의 미팅 내용이 나와 있다.
문건을 보면 이들이 만난 곳은 오후 5시경 정부투자기관 조아무개 사장 방이었다. 이 모임을 중재한 이도 조 사장이었다. 이 자리의 참석자는 정 위원장과 김 국장, 청와대 C 비서관, 김재기 코오롱TNS월드 회장 등이었다.
이 기록에는 ‘상세한 내용을 조직위 김 국장으로부터 이미 보고받은 상태라 정몽준 회장도 내용을 상당히 많이 알고 있었음’이라고 적혀 있다.
당시 이 모임에 대해서는 김 국장이 모 관계자에게 밝힌 녹취록 내용에도 상세하게 나와 있다. 녹취록 대화를 보면 “저녁에 퇴근하려고 하는데 정 위원장한테 조 사장 방으로 오라고 호출이 왔다. 갔더니 코오롱TNS월드 회장하고 사장하고 앉아서 대책회의를 하고 있더라. 거기서 최종적으로 저녁 10시에 문 총장한테 전화를 했다. ‘G&B(월드컵 휘장사업 총판업체)+코오롱TNS이다. 그 외는 인정 안한다. 그걸로 온라인 편지를 작성해 놓을 테니까 당신이 최종적으로 FIFA에 알리는 거다’라고.”
정 위원장으로 하여금 문 총장에게 ‘코오롱TNS+G&B’안을 받아들일 것을 강력히 요구한 내용도 있다. 김 국장은 “내가 정 위원장에게 가서 ‘총장에게 전화해 달라. 정 위원장 말 아니면 안 들으니까. 내가 백날을 해도 소용없으니까’라고 했다. 그랬더니 정 위원장이 내 앞에서 전화해서 ‘총장 이유가 뭐요? G&B하고 안하려는 이유가 뭐요?’라고 하면서 ‘빨리 하시오’라고 했다”고 언급했다.
이에 대해 조직위측은 “당시 월드컵 개막일을 불과 4~5개월 앞두고 있었던 시점이라 하루라도 빨리 휘장상품화사업을 정상화시켜야겠다는 시급함이 있었다”고 공식 해명했다.
▲ 지난 2001년 11월에 열렸던 부산 월드컵 홍보관 개관 테이프커팅 행사. | ||
조직위는 “코오롱TNS의 비자금 조성 등에 대해 우리로서는 FIFA와 직접 계약한 민간기업인 코오롱TNS월드의 내부 사실에 대해서 파악하지 못함을 양해하여 주기 바란다”는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사실과 다른 추천서를 올린 사실에 대해서는 시인했다.
한편 청와대 고위 관계자의 개입 흔적도 곳곳에서 발견되고 있다. 위에서 지적한 대로 12월11일 조 사장 방에서의 대책 회동에는 C비서관이 배석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비서관은 코오롱TNS 이동보 회장과 함께 휘장사업 관련 하청업체 I사를 직접 방문하여 “월드컵은 국책사업이다”라며 생산을 독려한 것으로 전해졌다.
코오롱TNS월드의 내부문건 12월12일자는 다음과 같이 적고 있다. ‘어제 정몽준 회장, 비서관 C씨의 배석으로 본건을 청와대에 보고한 것으로 사료됨. 금일 김재기 회장께 걸려온 전화내용으로는 일이 잘 풀리지 않으면 (조직위 위원장 힘으로) 얘기하라고 청와대 ○○수석으로부터 전화가 왔음 (금일 오전).’
이에 대해 검찰에서는 당시 청와대 K 수석의 개입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과정을 거쳐 실제 문 사무총장은 FIFA측에게 ‘조직위에서는 코오롱TNS를 CPP코리아 운영권자로 공식 추천한다’는 공문서한을 12월12일자로 보낸 것으로 확인됐다.
지난해 9월 국정감사에서 이 문제를 처음 제기한 바 있는 한나라당 김문수 의원측은 “지난해 코오롱TNS 관계자들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우리 뒤에는 P씨가 봐주고 있다’는 얘기가 심심찮게 나돌았고, 또 실제 금융권에서도 이 같은 말을 곧잘 들었다고 했다”며 DJ정권의 실세 P씨의 연관성에 대해 강한 의구심을 내비쳤다.
이 문건들은 이미 검찰에서도 확보된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의 한 관계자는 “김 사무국장에 대한 본격 수사에 이어 관련자들의 추가 수사도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월드컵 휘장사업은 모든 상품에 월드컵 공식 앰블럼이나 마스코트 등을 사용하게 해주고 수익을 올리는 ‘상품화 사업권’으로 이는 국제축구연맹(FIFA)의 소관사항이다. 따라서 업체 선정도 공식적으론 FIFA가 정하게 된다.
FIFA의 휘장사업 대행업체인 스위스의 ISL사는 당초 국내 월드컵 휘장사업자로 CPP코리아를 선정했다. 이 회사는 ISL사가 설립한 영국 CPLG사와 홍콩의 한 완구제조업체 PPW사의 합작법인인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국내에서는 월드컵 휘장사업자를 국내 기업으로 교체해야 한다는 여론이 일기 시작했다. 특히 공동개최국인 일본의 경우 자국의 회사가 선정되었는데, 왜 한국은 국내 잔치에 외국기업이 이익을 보게 하느냐는 부정적인 견해가 많았다. 월드컵 휘장사업 관련 로비는 이 때부터 본격적으로 불거진 것이었다.
감명국 기자 kmg@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