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인 연예인들 명절 어떻게 보냈나

비자 연장하랴 행사 뛰랴 ‘헉헉’

[일요신문] TV를 틀면 어김없이 나오는 외국인 스타는 대중에게 친숙한 존재들이다. 아이돌 그룹 가운데 멤버 한두 명쯤 외국인으로 채우는 건 연예계에서 이제 흔한 일이 됐다. 국내 스타들이 해외에서 한류 붐을 일으키는 속도만큼 최근엔 국내서 데뷔해 스타로 떠오르는 외국인 연예인도 늘고 있다. 현재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외국 국적의 연예인 숫자는 가늠하기 어려운 정도다.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프랑스 출신의 이다도시, 미국인 로버트 할리 등 극소수에 불과했지만 이젠 상황이 바뀌었다. 자주 보면 친숙해지기 마련. 요즘 가장 두각을 나타내는 호주 출신의 방송인 샘 해밍턴부터 그룹 엑소의 중국인 멤버 크리스, 루한, 첸 등은 국적을 떠나 현재 절정의 인기를 누리고 있다. 걸그룹 미스에이의 페이, 에프엑스의 빅토리아 역시 중국인 연예인이다.

왼쪽부터 에프엑스 빅토리아, 샘 해밍턴

설이나 추석 같은 명절이면 이들 외국인 스타들은 새삼스럽게 더욱 주목받곤 한다. 외국인 연예인만 모아 만드는 특집 프로그램은 명절이면 어김없이 나오는 단골 메뉴다. 낯선 땅에서 어렵게 자리를 잡고 살아가는 모습이 팬들의 눈길을 끌기도 하고, 때로는 이국의 전통문화를 겪는 생소한 모습이 대중에게 신선한 재미를 주기도 한다. 이들을 향한 호기심은 이번 설 연휴를 앞두고도 어김없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샘 해밍턴은 최근 하루에 몇 번씩이나 ‘설 근황’을 묻는 전화를 받고 있다.

그에게 이번 설은 결혼하고 처음 맞는 명절이다. 다행히 고정으로 출연 중인 MBC ‘진짜 사나이’나 tvN ‘섬마을 쌤’ 등의 촬영이 이번 설 연휴에는 잡히지 않았다. 며칠의 휴가를 얻은 그는 아내와의 오붓한 시간을 보냈다. 비록 차례는 지내지 않았지만 처가 식구들과 만나 명절 분위기를 즐겼다. 샘 해밍턴 소속사의 한 관계자는 “지난해 추석에는 호주에 계시는 부모님이 한국에 오신 덕분에 가족과의 시간을 보냈지만 올해는 사정이 여의치 않았다”며 “설에 호주에 다녀오는 일정도 빠듯해서 이번엔 부부끼리 조용하게 지냈다”고 밝혔다.

샘 해밍턴이 국내에 정착한 건 벌써 12년째다. 호주에서 대학을 다니다가 교환학생으로 서울 안암동에 처음 자리를 잡은 그는 이후 한국의 매력에 빠져 인생이 뜻밖의 방향으로 풀렸다. 개그맨으로 데뷔했고 이제는 다양한 프로그램을 섭렵한 방송인으로 인기를 얻고 있다. 사실 교환학생으로 처음 서울에 정착했던 당시에는 무려 12년간 살아갈 것이라는 예상은 하지 못했다.

위에서부터 미스에이 페이, 귀화 한국인 방대한.

샘 해밍턴은 KBS 특채 개그맨을 통해 방송 활동에 본격적으로 나서면서 외국인들에게 부여하는 예술흥행비자(E6)를 주로 활용했다. 일종의 외국인 취업 비자 가운데 하나인 E6는 연예계는 물론 예술 분야에 종사하는 이들을 대상으로 일정한 심사 절차를 거쳐 국내 거주 자격을 부여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최근에는 일부에서 이를 악용해 일부 외국인 여성들이 불법으로 국내에 체류하는 사례가 발생했고 이로 인해 심사 기준이 까다로워졌지만 샘 해밍턴처럼 얼굴이 알려진 스타들은 TV에 노출되는 빈도가 높아 비교적 쉽게 비자 획득이 가능했다. 유명세를 더하면서 한국 체류도 수월해진 편이다. 한때 비자에 온갖 신경을 쏟아야 했던 그이지만 이젠 특별히 문제될 게 없다. 한국인 아내와의 결혼은 사랑의 결실인 동시에 그의 한국 생활을 좀 더 편안하게 해준 셈이다.

요즘 가장 뜨거운 인기를 얻는 아이돌 그룹 엑소의 중국인 멤버들은 이번 설 명절엔 각자의 가족과 함께 시간을 보냈다. 최근 1년 가까이 바쁜 일정을 소화해오다 오랜만에 며칠간의 휴가를 받은 덕분에 일제히 고향인 중국으로 향했다. 더욱이 중국에서도 설은 최대 명절 가운데 하나로 통하기 때문에 이들은 새해를 가족과 함께 맞았다.

엑소에게 이번 명절이 각별했던 이유는 또 있다. 지난해 추석 명절을 이용해 엑소의 일부 외국인 멤버들은 비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각자의 고향으로 향했다. 고향 행을 마냥 즐길 수만은 없던 상황이었다. 반면 올해는 가뿐한 마음이었다.

명절을 ‘비자 해결의 적기’로 활용하는 외국인 연예인들은 여럿이다. 연예계 한 관계자는 “민감한 비자 문제를 공개적으로 거론하기 어렵지만 이번 설 명절에도 비자 해결을 위해 각자의 고향을 찾은 외국인 스타들이 여러 명”이라며 “평소엔 바쁜 일정을 빼기 어렵지만 명절만큼은 모든 촬영이 쉬기 때문에 이를 활용해 고향에 다녀오는 이들이 많다”고 밝혔다.

인기 절정을 누리고 있는 아이돌 ‘엑소’의 중국인 멤버 크리스, 루한, 첸(왼쪽부터).

샘 해밍턴 같은 외국인 멤버들은 운이 없는 경우 국내 활동에 있어서 여러 문제에 직면할 수 있다. 자칫 비자 문제가 틀어져 활동에 제약을 받을 위험도 상존한다. 이런 부담을 줄이기 위해 한국으로 귀화해 문제의 가능성을 없앤 적극적인 스타들도 있다. 방글라데시 출신으로 연기자와 가수로 활동하는 방대한이 대표적인 경우다.

외국인 노동자로 국내에 처음 정착한 그는 KBS 1TV <전국노래자랑>에서 대상을 받은 것을 계기로 방송인으로 데뷔했다. 이젠 영화배우로도 친숙하다. 2010년 흥행에 성공한 <방가?방가!>는 물론 <심장이 뛴다> <구국의 강철대오> 등의 영화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방대한의 설은 여느 연예인보다 분주했다. 각종 행사의 섭외 요청이 쏟아졌기 때문이다.

사실 외국인으로 국내 연예계에서 활동하는 데는 두세 배의 노력이 필요하다. 아이돌 그룹의 경우 소속사에서 철저한 관리를 받는다고 하지만 국내 거주에 필요한 까다로운 조건에 부합하려면 그에 맞는 기준이 요구되기 때문이다. 상이한 문화적 풍속도 외국인 연예인들이 뛰어넘어야 할 한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외국인 스타들이 국내 연예계에서 꾸준히 증가하는 건 그만큼 국내 시장이 아시아 대중문화를 이끄는 중심 무대라는 공감대가 통한 결과라는 의견도 있다.

이해리 스포츠동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