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김하늘, 안신애, 양수진. 올 시즌도 여자 프로골프 무대에서 뜨거운 패션 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누가 필드 패션의 아이콘으로 등장하게 될지 주목된다.
안신애의 미니스커트, 양수진의 페도라(챙이 둥근 모자), 김하늘의 니삭스와 티셔츠. 골프에 관심이 있는 팬이라면 이런 단어를 한번쯤 들어보았을 것이다. 2010년 이후 골프패션의 유행을 이끌어온 ‘잇 아이템’(it item)이다. 여자골퍼들이 펼치는 패션 무한 경쟁이 흥미롭다. 날이 갈수록 더욱 화려해지고 과감해지면서 팬들의 관심도 뜨거워지고 있다.
필드패션의 선두주자는 안신애(24)다. ‘필드의 패션리더’로 통한다. 그는 자신만의 개성 넘치는 필드패션으로 유명하다. 미니스커트와 착 달라붙는 짧은 반바지, 몸매가 훤히 드러나는 슬림한 티셔츠는 트레이드마크처럼 따라다닌다. “저런 옷을 입고 골프를 칠 수 있을까”라는 우려도 있다. 그러나 안신애는 “여자로서 자신감을 갖고 경기에 임할 수 있는 힘이 된다”라며 당당함을 잃지 않고 있다.
패션리더답게 안신애는 올해 변신을 준비 중이다. 새 의류 후원사를 만난 뒤 지금까지와 다른 새로운 패션을 선보이겠다고 밝혔다. 파격적이고 과감한 필드 패션으로 ‘섹시미’를 강조해 왔던 이전의 패션과 달리 올해는 세련미를 강조할 것이라고 한다.
안신애의 새 의류 후원을 맡은 아디다스골프는 “원색의 강렬함보다 은은한 색감의 의상을 선택해 세련미를 주는 페미닌룩을 선보일 예정이다. 또 그동안 화려함을 강조했던 패션을 탈피해 파스텔톤으로 안정된 이미지를 강조하고 상하의를 배색으로 코디해 심플하고 깔끔한 이미지를 심어주는 스포티한 룩을 선보일 계획이다”라고 밝혔다.
트레이드마크로 굳어졌던 미니스커트 패션은 이전보다 자주 볼 수 없게 될 전망이다. 아디다스골프는 “미니스커트와 함께 팬츠 스타일로 슬림한 라인을 부각시킬 예정이며, 골프패션을 완성하는 골프화 선택에도 심혈을 기울여 자연스러운 멋을 강조하는 패션을 고려중이다”라고 덧붙였다.
안신애와 함께 필드 패션을 이끌고 있는 양수진(23)은 올해 더욱 화려하고 과감한 패션을 선보일 예정이다.
양수진은 지난 한 해 블랙과 화이트로 멋을 낸 줄무늬 팬츠, 군복을 연상시키는 밀리터리룩, 남자골퍼들이 즐겨 착용했던 페도라와 원색을 강조한 화려한 컬러매치 등 쉽게 소화하기 힘든 패션을 선보이며 화제가 됐다. 이처럼 여자 프로골퍼들의 필드패션이 점점 더 화려하고 파격적으로 변신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당당한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팬들에게 어필하고, 자신감 상승의 효과로 이어져 성적에도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
양수진은 “어떤 옷에 입고 경기에 출전하는가에 따라 성적이 달라질 때도 있다. 예쁘고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있으면 자신 있는 플레이를 펼칠 수 있게 되고 반대로 잘 어울리지 않는 옷을 입었을 때는 경기하는 내내 자신감이 떨어져 소극적인 플레이를 펼치기도 한다. ‘패션도 실력이다’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패션이 경기력에 영향을 주는 건 심리적인 안정감이다. 멘탈 스포츠인 골프에서는 그만큼 중요한 변수가 될 수 있다. 크리스패션 마케팅팀 이혜진 부장은 “여자골퍼들에게 패션은 강력한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자신의 단점을 가리고 장점을 돋보이게 하는 코디는 자신감 상승으로 이어진다. 그런 점에서 패션은 경기력을 상승시키는 보이지 않는 힘으로 작용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팬들의 반응은 뜨겁다. 여자 프로골퍼의 변신에 박수를 보내며 똑같은 제품을 착용하고 응원하는 골퍼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올 시즌도 여자 프로골프 무대에서는 더 뜨거운 패션 경쟁이 펼쳐질 전망이다. 누가 필드 패션의 아이콘으로 등장하게 될지 기대된다.
#겹치는 옷은 피하는 게 ‘원칙’
▲ 안신애. 사진제공=아디다스골프
강렬한 색상을 좋아하는 양수진은 빨간색을 즐겨 입는다. 여러 가지 색이 섞여 있는 것보다 단색으로 강한 인상을 심어주는 패션을 즐겨 입는다. 또, 프린트가 화려하게 장식된 옷을 즐겨 입고 펑퍼짐한 의상보다 슬림한 라인으로 몸매를 드러내는 패션을 좋아한다. 반대로 점퍼류나 장식이 많은 옷은 피하는 편이다. 추울 때도 윈드브레이커와 같은 기능성 위주의 옷보다는 니트처럼 기능성과 패션을 모두 소화할 수 있는 옷을 즐겨 입는다. 짧은 반바지형 치마(큐롯)처럼 캐주얼한 느낌을 주는 옷을 주로 입는 편이다.
허윤경(24·SBI)과 전인지(20·하이트)은 화려함보다 여성스러우면서 밝은 이미지의 옷을 선호한다. 허윤경은 치마와 바지를 가리지는 않지만 파격적인 디자인으로 튀는 인상을 심어주기보다 모던한 느낌으로 깔끔한 이미지의 코디를 선호한다. 전인지 역시 화려한 옷은 불편해한다. 알록달록한 패턴이 많은 옷은 피하고 치마보다는 편하게 경기에 집중할 수 있는 바지로 스타일링을 하는 편이다.
김하늘(26·비씨카드)은 파격적인 의상 대신 컬러룩으로 어필한다. 이름처럼 하늘색(블루계통) 옷을 즐겨 입는다. 경기 최종일에는 무조건 하늘색으로 코디를 하는 게 그만의 법칙이다. 이름과 잘 어울릴 뿐 아니라 싱그러운 이미지를 더해 밝은 느낌을 강조한다. 옷을 입은 것만 봐도 ‘김하늘이구나’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다. 즐겨 입는 패션 아이템은 미니스커트와 니삭스(무릎까지 올라오는 양말)다. 발랄하면서 상큼함을 강조한다.
대부분의 여자 프로골퍼들이 유행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것과 달리 최나연(27·SK텔레콤), 이정민(22·KT) 등은 자신만의 스타일을 고집한다. 경기 중 치마를 잘 입지 않는 선수로 유명하다. 최근 여자 프로골퍼들 사이에선 ‘스커트’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음에도 긴 바지를 고수한다. 치마를 입으면 거추장스럽고 불편해 경기에 집중할 수 없다는 게 그 이유다.
선수들 간의 보이지 않는 ‘룰’도 존재한다. 겹치는 옷은 피하는 게 제1의 원칙이다. 한 의류업체마다 적게는 2~3명, 많게는 7~8명의 선수를 후원하다보니 경기 중 같은 옷을 입고 나올 때가 많다. 그럴 때는 경기를 늦게 시작하는 선수가 다른 옷으로 갈아입는 게 보이지 않는 룰이다. 때로는 후배가 알아서 다른 옷으로 바꿔 입을 때도 있다.
주영로 스포츠동아 골프전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