셋째 언니(50)와 함께 10년째 이 빌라에 거주하고 있는 강 장관이 변호사 시절에 타고 다니던 벤츠 승용차 외에 장관 관용차(다이너스티)도 지정주차 할 수 있도록 해 달라고 경비실에 요청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일부 주민들 사이에 불만의 목소리가 표출됐기 때문이다.
1개동 총 19가구인 이 빌라(64평)에는 승용차 28대를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이 있다. 집집마다 차량을 두 대 이상 소유한 가구가 늘면서 주차문제가 자주 발생하자 주민들은 반상회를 열어 한 집에 한 대씩만 지정주차를 하기로 이미 합의했다.
주차난이 악화되는 상황에서 강 장관측의 요구를 달갑지 않게 여겼지만 주민들은 “나라를 위해 일하는 사람이니 이웃인 우리가 양보를 하자”는 의견을 모았다. “‘법대로’ 한다면 한 집에 한 대만 지정주차가 가능하지만 강 장관의 관용차는 별도로 주차할 수 있는 공간을 마련해 주자”고 동의해 소동은 일단락됐다.
두 달이 지난 4월24일.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가 공개한 새 정부의 장·차관, 청와대 수석 등 재산등록 발표 때 강금실 장관의 9억원대 ‘거액 채무’가 눈길을 끌었다.
재산등록 자료에 따르면 강 장관의 총 채무는 금융기관 대출금 5억6천2백만원, 개인간 채무 5억2천5백90여만원 등 10억8천7백90여만원에 달하지만 은행 예금 1억4천4백여만원과 고향인 제주에 9백23만여원 상당의 임야를 갖고 있어 순채무는 9억3천4백50여만원이라고 신고했다. 강 장관의 거액 채무와 함께 관심을 끈 것이 또 하나 있었다. 바로 ‘자동차가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면 지정주차 소동의 발단이 된 벤츠는 어떻게 된 것일까.
빌라 주민들은 “벤츠(모델명 E240·서울 31마 ○○16)는 강 장관이 입각하기 오래 전부터 가지고 있었던 차”라고 말한다. 그런데 이 벤츠는 강 장관의 공직자 재산신고 목록에는 들어있지 않다. 어찌된 영문일까.
벤츠의 자동차등록원부를 찾아봤다. 차량 최초등록일은 2000년 3월3일로 최종소유자는 D캐피탈로 돼 있다. D캐피탈에 확인해 본 결과 이 벤츠는 리스 형식으로 구입한 것으로 계약자가 강 장관인 것으로 밝혀졌다.
D캐피탈측에 따르면 리스 계약 때 강 장관은 차값(부대비용 일부 포함) 중 4천여만원을 현금으로 납부하고 5천만원을 빌렸다. 6월3일 현재 남은 리스대금은 1천3백60여만원으로 계약 만료일은 2004년 3월.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이 차종의 신형 가격은 9천7백만원대에 이른다.
D캐피탈의 직원에게 이 차량의 구입 과정과 소유관계에 대해 좀 더 자세한 설명을 들어봤다.
“자동차등록원부에는 저희 회사가 소유권자로 되어 있지만 이 차의 실제 소유권자는 강금실씨입니다. 차량 구입 당시 리스 계약은 물론 4천여만원을 납부한 사람도 강금실씨고 현재 차량도 (실질적으론) 그 사람(강장관)이 소유하고 있습니다.
리스대금도 지금까지 매월 강금실씨 이름으로 분납하고 있습니다. 리스계약(2000년3월부터 4년간) 기간이 만료되는 내년 3월3일이 되면 강금실씨 앞으로 명의가 이전될 예정이고, 그 이전이라도 리스대금 잔액을 납부하면 명의이전이 가능합니다.”
그는 또 “부족한 돈을 빌리기 위해 리스를 이용하는 경우도 있지만 고가의 외제차를 구입하는 고객의 경우 캐피탈회사의 명의를 필요로 하기 때문에 리스를 선호하는 경향이 있다”며 “이 벤츠의 경우 개인 소유의 재산으로 봐도 무방하다”는 말을 덧붙였다. 한마디로 강 장관이 벤츠의 실질적인 소유자라는 것이다.
▲ 강금실 장관이 살고 있는 삼성동 빌라 주차장에 세워져 있는 문제의 벤츠 승용차. 이웃들은 강 장관이 입각하기 오래 전부터 소유하고 있었다고 말했지만 강 장관 측은 ‘언니의 차’라고 밝혔다. | ||
강 장관은 법무부 장관에 발탁되기 직전까지 법무법인 지평의 대표변호사로 있었다. 그렇다면 공직자 재산신고 목록에서 ‘빠진’ 벤츠를 지평에서 제공한 것은 아닐까. 주변에서 그런 얘기도 있어 확인해 봤으나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다.
법무법인 지평은 강금실 변호사와 법무법인 세종(Shin & Kim)에서 일하던 10여명의 변호사들이 모여 2000년 4월3일 개설한 로펌이다. 강 장관의 벤츠 계약시점(2000년 3월 3일)보다 한 달이 늦다. 지평의 한 직원도 “강 장관의 벤츠는 ‘지평’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고 말했다.
강장관이 벤츠의 ‘실제 주인’임을 추정할 수 있는 근거는 자동차보험계약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이 벤츠는 D화재에 자동차종합보험이 가입돼 있다. 보험사에 따르면 지난 3월 초 보험이 만료돼, 강 장관은 법무부 장관에 임명된 직후인 지난 3월3일 보험을 갱신했다.
계약서에 적힌 피보험자는 강 장관이고 계약만료일은 2004년 3월3일이다. 강 장관은 보험료 1백23만2천2백50원을 일시에 납부했으며 26세 이상이면 누구나 운전할 수 있는 특약사항을 선택했다.
하지만 강 장관은 어떤 이유에선지 명의만 D캐피탈의 것이고 실제로는 자신의 소유로 돼 있는 이 벤츠를 공직자 재산등록 때 포함시키지 않았다. 계약 당시 4천여만원을 지불했고 재산공개 조사 시점인 2월27일을 기준으로 3년동안 리스대금(할부금)을 불입해왔으므로 그동안의 감가상각을 감안하더라도 재산신고에서 수천만원을 누락시킨 셈이다.
공직자윤리법 제4조에 따르면 등록대상 재산을 “소유 명의에 불구하고 사실상 소유하는 재산”으로 규정, 재산이 등록의무자(이 경우 강 장관)의 명의로 돼 있지 않더라도 등록의무자가 사실상 소유하고 있는 재산은 신고하도록 한 것이다.
정부공직자윤리위원회 성주연씨는 “재산등록의무자 중 타인의 명의로 되어 있는 재산이 실질적으로 자신(등록의무자)의 것이라면 이 재산에 대해서도 신고를 해야 한다. 이것은 공직자 윤리법에 규정되어 있는 사항이므로 이를 지켜야 한다”면서 “남의 이름으로 되어 있는 재산(동산·부동산 등)이 실제로는 등록의무자 자신이 것이라고 신고를 한 공직자도 여럿 있다”고 했다.
이와 관련 이 아무개 변호사(37)는 “분명히 잘못된 것 같다. 법률상으로도, 도덕적으로도 문제가 있어 보인다”면서 “그 당사자가 법을 지키고 법 질서 확립을 주도하는 법무부 장관이라는 데 더 큰 문제가 있다”고 말했다.
▲ 같은 차량임에도 자동차등록원부(왼쪽)엔 D캐피탈(주)이 소유자 로돼 있고 보험가입증서엔 ‘강금실’이 피보험자(오른쪽점선 안)로 돼 있다. | ||
강 장관과 같은 빌라 같은 층에 사는 그의 큰언니(62)는 6월3일 전화통화에서 “벤츠는 강 장관과 같이 사는 셋째(강 장관의 셋째 언니)의 것이다”며 강 장관의 차가 아님을 강조했다.
그러면서 그는 “셋째는 자기 집도 동생(강장관)의 빚을 해결하기 위해 내놨다”면서 “이제 벤츠가 셋째에게 남아 있는 유일한 재산”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강 장관의 셋째 언니가 외제자동차를 소유할 만큼 고소득자냐”고 묻자 그는 말문을 닫았다.
과연 강 장관의 셋째 언니가 고가의 외제차를 구입할 정도의 경제적 능력이 있을까. 큰언니에 따르면 ‘셋째’는 “학교를 졸업한 후 독신으로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94년 5월)까지 함께 살았다”고 한다. 이후 강 장관과 살림을 합친 것으로 알려졌다.
강 장관 셋째 언니의 소득을 추정할 수 있는 단서는 국민연금 납부 실적. 그녀가 국민연금에 가입한 기간은 1994년∼1997년. 강 장관의 전 남편 김아무개씨(50)의 도움으로 1994년 도서출판 ‘친구’를 설립하면서 처음 가입했다.
하지만 출판사가 적자를 면치 못해 1997년 폐업하면서 3년여 동안 불입했던 국민연금을 일시에 환급 받았다. 그러다 1999년 4월 국민연금 대상이 전 국민으로 확대되면서 다시 가입해 2000년 4월까지 월 2만7천6백원씩의 보험료를 납부했다. 이후 국민연금 측에 ‘소득 없음’을 신고해 현재는 국민연금 고지서 발송이 중단된 상태다.
누구보다도 벤츠의 ‘실제 주인’에 대하여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리스 계약’ 당사자인 강 장관 자신일 것이다. 6월11일 법무부 공보관을 통해 이와 관련된 질문지를 보냈다.
강 장관측은 몇 차례의 엇갈린 해명 끝에 “이름만 빌려줬을 뿐, 언니의 일이라 잘 모른다”는 답변을 내놨다.
현재 공직자윤리위원회는 고위공직자가 제출한 재산신고에 대하여 실사를 진행중이다. 위원회 관계자에 따르면 실질심사를 하는 데 있어 ‘등록의무자가 재산신고를 누락했을 경우 그 재산의 소유에 대한 등록의무자의 사전 인지 여부’가 심사 결과에 중요한 영향을 미치는 요소 중 하나다.
심사결과 재산 누락 등 불성실신고가 드러나면 사안에 따라 보완명령, 경고, 과태료부과, 해임·징계요구 등 조치를 하게 되며 허위로 등록한 혐의가 있을 경우에는 공직자윤리위원회는 법무부장관에게 조사를 의뢰하도록 돼 있다.
공직자윤리위원회의 실사 결과 강 장관의 재산 등록에 문제가 있는 것으로 인정될 경우 법무부장관이 법무부장관에 대한 조사를 지시해야 하는 사상 초유의 사태가 발생할지도 모를 일이다.
김순희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