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4년 만에 자국에서 열리는 올림픽이기에 더욱 공을 들인 것으로 알려진 러시아의 소치 올림픽이 개막식 당일부터 오륜기 실수로 전 세계에 망신을 샀다. 하지만 사실 이런 실수는 빙산의 일각에 불과하다. 이미 대회가 시작되기 전부터 인권 문제, 동성애 문제, 유기견 문제, 부정부패 문제 등으로 질타를 받아 왔으며, 대회가 시작된 후부터는 준비 부족으로 기자들과 선수들로부터 원성을 사고 있다. 이런 까닭에 이번 올림픽을 가리켜 ‘대실패작’이라고 부르는 기자들도 있는 것이 사실. 호텔과 선수촌 안에서 보고 겪은 황당한 일들을 공유하는 트위터 계정은 이미 소치 올림픽 공식 계정보다 더 많은 인기를 얻고 있으며, 이런 불만은 대회가 끝날 때까지 계속 이어질 듯 보인다.
소치올림픽 개막식에서 눈꽃 5개가 펼쳐지며 오륜기로 변하는 퍼포먼스를 선보였다. 하지만 마지막 눈꽃이 펼쳐지지 않아 결국 ‘4륜기’가 되고 말았다. MBC 화면 캡처.
대회 시작 직전까지 호텔 아홉 개 가운데 완공된 호텔은 여섯 개에 불과했으며, 사정이 이러니 전 세계의 기자들이 묵고 있는 미디어센터의 호텔과 선수들이 묵고 있는 선수촌 안에서는 하루가 멀다 하고 황당한 일들이 속출하고 있다. 이를테면 TV가 나오질 않거나 전등에 전구가 없거나, 혹은 뜨거운 물이 안 나오거나, 나오더라도 시커먼 녹물이 나오는 경우가 그렇다. 심지어 문고리가 떨어져서 안으로 들어가지 못하는 웃지 못 할 일이 벌어지는 경우도 있다.
개막 이틀 전 소치에 도착했던 <내셔널포스트>의 브루스 아서 기자는 “거의 모든 방에는 뭔가가 하나씩 빠져 있었다. 전구, TV, 전등, 의자, 커튼, 와이파이, 난방기, 온수 등이 없었다. 앞으로 올림픽 기간 동안 샤워 커튼이 암시장에서 가장 귀한 물건이 될 것 같다”라고 생생한 현장 소식을 전했다.
이렇게 호텔방에 들어갈 수 있는 경우는 그나마 운이 좋은 편에 속했다. 아예 방에 들어갈 수 없어 발을 동동 구른 기자들도 있었다. 가령 호텔에 도착해서 열쇠를 받고 방에 올라가면 이미 다른 사람이 들어가서 자고 있는 경우도 허다했다. 예약이 중복돼서 한 방에 두 명을 받는 아마추어적인 실수 때문이었다.
<EPA>의 사진기자인 독일의 외르크 로이터는 호텔에 도착하자마자 이 방 저 방을 전전해야 했다. 배정받은 첫 번째 방이 아직 공사가 진행 중이어서 두 번째 방으로 옮겼지만, 그 방 역시 여전히 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다. 그리고 세 번째 들어간 방에서는 더욱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그는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는데 개 한 마리가 보였다”면서 “경기장 주위를 맴돌고 있는 수천 마리의 유기견 가운데 한 마리가 호텔방 안에 들어와 있었다”고 전했다.
이밖에도 황당한 일을 겪은 기자들의 생생한 목소리는 여기저기서 계속 됐다. 자주 끊기는 와이파이 때문에 하루에도 여러 번 인증번호를 재입력하는 번거로운 일을 반복하고 있으며, 형편없는 음식 때문에 미디어센터 푸드코트에 있는 맥도널드에는 매일 줄이 길게 늘어서 있곤 한다. 이런 까닭에 영국 <가디언>의 션 워커 모스크바 통신원은 “만일 당신이 갖고 있는 4.9개의 별을 여기에 붙이면 비로소 5성급 호텔이 될 것!”이라고 비꼬기도 했다.
왼쪽부터 시계 방향으로 욕실에 갇힌 미국의 봅슬레이팀 선수 조니 퀸이 나오기 위해 문을 부순 모습, 수도에서 나오는 녹물, ‘난장판’인 선수촌 아파트 입구.
그가 트위터에 올렸던 처참하게 부서진 문 사진은 순식간에 인터넷에서 화제가 됐다. 하지만 그의 불행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며칠 후에는 동료 선수인 닉 커닝햄과 함께 엘리베이터 안에 갇히고 말았던 것. 한동안 문이 열리지 않아 당황했던 그는 이번에는 다행히 전화기를 갖고 있었고, 엘리베이터 안의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려 구출될 수 있었다.
영국의 봅슬레이 선수인 레베카 윌슨 역시 고장 난 엘리베이터 때문에 황당한 경험을 했다. 엘리베이터를 기다리고 있었던 그녀는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그만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엘리베이터는 도착하지 않은 채 문만 활짝 열렸던 것. 자칫하면 발을 헛디뎌 추락할 뻔했던 그녀는 아찔한 순간을 모면하고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이처럼 숙소 안팎에서 벌어지는 황당무계한 일들을 공유하는 트위터 계정(@SochiProblems)은 개막 이틀 전부터 이미 화제가 됐으며, 개막 후에도 34만 명 이상의 팔로어를 거느리면서 지속적인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이는 소치 올림픽 공식 계정의 팔로어 수인 12만여 명보다 세 배 가까이 되는 수다.
이처럼 소셜미디어서비스(SNS)가 본 경기 못지않은 주목을 받자 이를 홍보 수단으로 활용하는 선수들도 나타나기 시작했다. 비록 경기에서는 메달을 따지 못하더라도 SNS에서 화제가 되면 그만큼 주목을 끌 수 있기 때문이다. 때로는 메달을 딴 선수들보다 더 화제가 되는 경우도 종종 있다.
대표적인 경우가 앞서 말한 조니 퀸이다. 무명의 봅슬레이 선수였던 그는 트위터에 부서진 욕실문 사진 한 장을 올려 일약 스타가 됐다. 그의 욕실 사진은 트위터에 2만 8000번 리트윗됐으며, 다음 날 그는 NBC의 <투데이쇼>에 출연하는 영광까지 안게 됐다.
또한 러시아의 스피드 스케이팅 선수이자 3000m 동메달리스트인 올가 그라프는 경기를 마친 후 속옷을 입지 않은 채 선수복 지퍼를 내리는 실수를 저질러서 전 세계에서 화제의 인물로 떠올랐다. 만일 그녀가 그런 실수를 저지르지 않았다면 과연 누가 그녀의 이름을 기억할 수 있었을까 의문.
미국 선수 닉 커밍햄이 엘리베이터에 갇힌 모습. 오른쪽은 호텔방에 떨어져 있는 커튼.
가령 세이지 코첸버그는 금메달을 딴 후 폭발적으로 증가한 트위터 팔로어 수를 보면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4만 3000명이나 늘어난 팔로어를 본 그는 “아주 멋지다”라면서 즐거워했다. 또한 미국의 알파인 스키 선수인 미카엘라 쉬프린은 “올림픽에서 내 이름을 알릴 수 있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경기에서 메달을 따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온라인에서 센세이션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을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사람들도 있다. SNS에 올라오는 시시콜콜한 글들 때문에 정작 올림픽의 보다 심각하고 중요한 문제들이 뒷전으로 밀려났다는 것이다. 가령 인권 침해 문제, 환경 문제, 이주민 건설 노동자들의 부당 대우 문제 등과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또한 실력보다는 트위터의 인기로 부당하게 대표선수로 발탁됐다는 의혹을 받고 있는 선수도 있다. 육상 선수에서 봅슬레이 선수로 전환한 미국의 롤로 존스의 경우가 그렇다. 빼어난 외모 덕에 38만 4000명의 트위터 팔로어를 거느리고 있는 존스는 트위터 활동을 가장 열심히 하는 선수 가운데 한 명으로 유명하다. 그녀가 올림픽 대표선수로 발탁되자 봅슬레이 팀 내에서는 불만 섞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이번 올림픽에 참석하지 못한 봅슬레이 선수인 에밀리 아제베는 <유에스에이 투데이 스포츠>와의 인터뷰에서 “근육량을 늘리는 것보다 트위터 팔로어 수를 늘리는 데 치중했어야 했다”고 비아냥댔다.
지금까지 트위터로 인해 가장 구설에 올랐던 선수로는 그리스의 육상 세단뛰기 선수인 볼라 파파크리스토가 있다. 지난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출전했던 그녀는 트위터에 아프리카 이민자를 조롱하는 인종차별적인 글과 극우단체를 지지하는 글을 올렸다가 올림픽에서 퇴출당했다.
올림픽조직위원회(IOC)는 선수들이 SNS에 올리는 글에 대해 엄격한 가이드라인을 세워놓고 있으며, 특히 인종차별적이거나 공격적인 글들에 대해서는 강력한 제재를 가하고 있다.
김민주 해외정보작가 world@ilyo.co.kr
볼일은 어떻게 보라고…
- 아이스하키 경기가 열리는 샤이바 아레나 화장실에서
▲ 댄 웨첼(스포츠 칼럼니스트) “소치에 있는 모든 사람들에게: 저는 지금 전구 세 개를 갖고 있습니다. 문고리와 교환하고 싶습니다.”
- 호텔방의 열악한 시설에 대해서
▲ 마크 코놀리(CBC 방송 진행자) “전등 하나마다 달랑 전구가 하나 뿐인 모양이다.”- 전등 안에 들어있는 전구를 보고 황당해서
▲ 배리 페치스키(스포츠 전문사이트 ‘데드스핀닷컴’ 에디터) “오케이, 내 문고리 업보다. 내 잘못이에요, 소치.”
- 떨어진 방문고리를 보고 황당해서
▲ 스티브 로젠버그(BBC 방송 모스크바 통신원) “바이애슬론 센터의 남자 화장실에는 변기가 두 개다.”
- 나란히 붙어 있는 변기 두 개를 보고 황당해서
▲ 스테이시 클레어(<시카고트리뷴> 기자) “호텔에서 물이 안 나왔다. 고칠 수 있냐고 물었더니 프런트 데스크 직원이 말했다. ‘수돗물로 세수하지 마세요. 엄청 위험한 성분이 들어 있거든요.’”
“또 하나 다행인 점: 방금 에비앙 생수로 세수했다. 킴 카다시안 정도 된 기분이다.”
- 수도에서 나온 녹물을 보고
▲ 매트 거트맨(ABC 방송 통신원) “꿀 안에 든 벌, 맥주 색깔 수돗물, 물이 안 내려가는 화장실. 오늘의 구역질 나는 일들.”
▲ 션 워커(<가디언>의 모스크바 통신원) “호텔에 돌아왔다. 엘리베이터가 고장이 났다. 계단으로 올라갔다. 다 올라가니 비상문이 잠겨 있었다. 완전 황당.”
▲ 모니카 플라텍(CBC 방송 기자) “아래층에 내려가려고 엘리베이터를 탔다. 그런데 누를 수 있는 버튼이 다 똑같다.”
- 위로 올라가는 버튼만 있는 걸 보고 황당해서.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