빙속 유니폼은 몸을 숙인 자세를 편히 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사진은 이승훈(왼쪽)과 이상화. 연합뉴스
대한민국 봅슬레이 국가대표팀이 사용하는 썰매는 1억 2000만 원 정도로, 독일이나 미국(이상 BMW), 이탈리아(페라리) 등 봅슬레이 강국들처럼 최신형의 비싼 썰매는 사용하지 않는다. A급 썰매와 B급 썰매의 경우 일반적으로 기록에서 0.5초 정도 차이가 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를 극복하기 위해 과학적 분석을 통한 기록 단축을 시도하고 있다.
봅슬레이 경기기록의 핵심은 출발속도에 있다. 출발시 선수들이 썰매를 끌고 얼마나 빠르게 치고 나가느냐에 따라 경기 중 붙는 가속도에 차이가 난다. 그런데 국내대표팀 선수들은 그동안 출발속도가 떨어지는 문제점을 보였다. 이에 국민체육진흥공단 한국체육과학연구소(한국체육과학연구소)의 연구팀은 봅슬레이 선수들의 출발을 개선할 방법을 연구해냈다. 바로 스타트구간에서 썰매를 미는 힘을 분석해, 힘을 한데 모아 효율성을 높이는 전략을 개발해낸 것이다.
한국 봅슬레이 대표팀은 한국체육과학연구소가 특수 제작한 힘 측정 장치를 활용해 스타트 훈련을 했다. 이 장치는 출발 구간을 달리는 선수들의 자세와 힘의 방향, 선수들 간의 균형을 수치로 나타내, 썰매 미는 힘의 균형을 잡아줬다.
한국체육과학연구소의 이상철 연구원은 “봅슬레이 대표팀은 지난 2013년 4월부터 측정장치를 이용해 훈련을 했다. 그 결과 1년간 최대 0.3초의 기록 단축 효과를 본 것으로 알려졌다”고 설명했다.
2012 세계선수권 4강 신화를 넘어 깜짝 메달을 목표로 뛰고 있는 여자 컬링 대표팀도 한국체육과학연구소의 과학 분석 도움을 받고 있다. 얼음 표면의 온도변화에 따라 달라지는 스톤의 이동거리를 계산해낸 것이다.
이상철 연구원은 “컬링 선수들이 투구한 스톤에는 살짝 회전이 들어가 있다. 그래서 브러시로 스톤 앞 얼음판을 문지르면 스톤 앞뒤에 마찰력 차이가 생겨, 스위핑 속도에 따라 스톤이 미끄러지는 속도를 조절할 수 있는 것이다. 이에 한국체육과학연구소 연구팀은 열화상 카메라를 이용해 컬링 선수들의 훈련 모습을 촬영했다. 그리고 스위핑에 따른 얼음판의 온도 변화와, 그에 따른 스톤의 이동거리를 수치화했다”고 설명했다.
여자 컬링 대표팀도 한국체육과학연구소의 과학 분석 도움을 받고 있다.
그래서 최근에는 선수들이 특수 방탄 소재로 된 유니폼을 많이 입는다. 미국 스피드스케이팅 대표팀의 경우 미국 최대 방위산업체 록히드 마틴이 2년의 연구 끝에 개발한 유니폼을 입고 있다. 유리섬유를 비롯한 첨단소재를 사용해 만든 유니폼은 땀이 잘 배출되도록 해 선수들의 체온조절을 돕는다. 쇼트트랙·스피드스케이트 한국 대표팀은 특수방탄소재인 케블라를 기본으로 한 유니폼을 입고 있다.
이어 빙속 종목은 빠른 스피드를 위해 몸을 숙인 낮은 자세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그래서 유니폼도 몸을 숙인 자세를 편히 취할 수 있도록 만들어져 있다.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들이 골인 후 경기가 끝나면 바로 앞 지퍼를 여는데, 경기 자세를 위한 디자인이 서있을 때는 불편하기 때문이다.
유니폼은 얼핏 봤을 때는 모두 같은 디자인인 것처럼 보이지만 선수들에 따라 미세하게 조금씩 다른 소재와 디자인으로 고안돼 있다. ‘빙속여제’ 이상화도 자신에게 맞게 특수 제작된 세상에 단 하나뿐인 유니폼을 입고 소치동계올림픽에 출전했다. 이상화만의 경기 중 동작이나 습관, 신체적 특징 등을 체크해 부위마다 특수 소재를 다르게 하고 디자인했다. 이렇게 몸과 완벽하게 밀착되는 유니폼은 이상화가 경기를 할 때 공기저항을 최소화해준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스포츠가 점점 과학 기술에 좌지우지되고 있어, 결국 기술이 발달한 선진국이 스포츠에서도 좋은 성적을 낼 것이라고 우려를 나타내기도 한다.
한국체육과학연구소 이상철 연구원은 “신기술 장비에 대한 규정이 빈틈이 많다”며 “얼마 전 한국 여자 컬링팀과 경기를 가진 세계랭킹 1위 스웨덴 팀의 브러시 손잡이를 보면 리모컨 같이 생긴 것이 달려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 장치는 브러시의 그립감을 향상시켜주고 스위핑을 할 때 미는 힘을 향상시켜주는 장치로 보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도 그는 “규정의 허점을 이용해 과학 기술을 사용하는 것을 페어플레이 정신에 어긋난다고 볼 수만은 없다. 높은 과학 기술력을 일반에 선보이는 효과가 있다. 한국체육과학연구소도 스포츠과학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했다.
민웅기 기자 minwg08@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