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역대 대통령 사진과 물건들이 진열된 전시실. 현재는 주민 들의 반발이 심해 폐쇄된 상태다. | ||
특히 현지 주민들은 “말이 좋아 대통령 기념관이지, 사실상 ‘전두환·노태우 기념관’이나 다름없다”며 기념관 설립을 반대하는 대규모 집회를 갖는 등 강한 반발 조짐을 보이고 있다.
청남대는 전두환 전 대통령 때 만들어졌기 때문에 현지 주민들에게 있어 ‘전 전 대통령=청남대’라는 인식이 강하다. 더군다나 청남대에 전시된 물품 중 상당수가 전두환 및 노태우 대통령 때 사용하던 것이라 “전두환 기념관이 웬말이냐”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감정이 격해지면서 최근 주민들이 이원종 충북지사를 건축법 위반으로 고소하는 등 사태가 확산되고 있다.
일반에 공개된 지 80일도 지나지 않은 청남대에서 그동안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일까. <일요신문>은 논란이 되고 있는 대통령 기념관의 모습을 집중 취재해 단독 공개한다.
신탄진IC에서 빠져나와 대청호를 따라 30분 정도 달리면 청남대 입구가 나온다. 육중한 철문을 지키던 군인들은 주차장 바리케이드를 관리하는 경비들로 대체됐고, 철조망도 상당 부분 제거된 상태였다.
취재진이 청남대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대통령 기념관 건립에 반대하는 천막농성이 한창이었다. 이곳에서 만난 사람들은 하나같이 “권위주의의 산물인 청남대에 대통령 기념관을 건립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입을 모은다.
역사정의실천협의회 회장 정진동 목사는 “전두환 전 대통령이 청남대를 만들어 주민들이 피해를 봤는데 또다시 그를 기념하는 전시관을 만든다는 것은 주민들의 의견을 완전히 외면하는 처사”라며 “현재 청원군에 있는 11개 시민단체가 연합해 대통령 기념관 건립 저지 농성을 벌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정 목사에 따르면 지금까지 기념관 건립은 철저하게 일반에게 공개되지 않았다. 때문에 내부 모습은 고사하고 기념관 건립 사실을 아는 사람이 드물다. 그러나 안에서는 역대 대통령이 사용하는 물품을 모아 전시관을 만들고 있다.
그는 그 근거로 직접 촬영한 기념관 내부 모습을 공개했다. 기념관의 실상이 공개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다. 정 목사가 제시한 사진에는 역대 대통령이 사용하던 집기들이 유물처럼 전시돼 있다. 각각의 집기 앞에는 사용자와 용도가 푯말에 자세히 설명돼 있다.
▲ 주민들과 시민단체가 청남대 입구에서 ‘전두환 노태우 기 념관’ 설립을 결사 반대하는 천막농성을 하고 있다. | ||
강원도에서 왔다는 김아무개씨(56)는 “청남대가 공개됐다는 소식을 듣고 강원도에서 찾아왔는데 들여보내주지를 않는다”며 “주민들끼리 돈을 모아 관광버스까지 대절해 왔는데 그냥 돌아갈 생각을 하니 허탈하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입구에서 산길을 따라 5km 정도 들어가니 연속해서 두 개의 철문이 모습을 드러낸다. 이곳에도 군인들 대신 제복 차림의 경비가 입구를 지키고 있었다. 목적지로 가는 동안 보이는 감시카메라를 통해 당시의 엄중한 경호 상황을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을 정도.
문제의 기념관이 위치한 자리는 연병장 위쪽에 있는 대통령 경호실 338경비대 막사. 91년에 완공된 빨간색 4층 건물로 대청호가 시원하게 눈앞에 들어왔다. 입구를 들어서자마자 전면에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과 노 대통령 부부의 실제 손바닥을 본떠 만든 손바닥 모형이 마련돼 있다. 노 대통령 사진 양쪽으로는 역대 대통령의 사진이 전시돼 있다.
전시실은 입구 좌측에 마련돼 있었다. 그러나 취재진이 도착했을 때는 이미 집기들이 치워지고 없었다. 전시 물품이 놓여있던 방도 폐쇄된 상태였다.
청남대 관리사무소 유근호 과장은 “지역주민들의 반발이 심해 대통령의 집기들을 두었던 방을 폐쇄했다”며 “방에 있던 물품들은 따로 모아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유 과장은 그러나 항간에 나돌고 있는 대통령 기념관은 아니었다고 말한다. 전시 용도라기보다는 보관용이었다는 것. 그는 “마을 주민들은 극구 대통령 기념관이라고 주장하지만 사실과 다르다”며 “본관 지하에 보관돼 있던 물건들을 관리 차원에서 옮겨놓은 것일 뿐”이라고 해명했다.
그러나 단순히 보관용으로 치부하기에는 석연찮은 부분이 많다. 진열된 물품마다 주인의 이름과 용도가 상세히 기록된 점, 그 위로 대통령들의 당시 모습을 촬영한 사진이 붙여져 있는 점 등으로 볼 때 보관용보다는 전시 용도에 가깝다는 게 이곳 시민단체 관계자들의 설명이다.
청남대에 대통령이 사용하던 종류와 똑같은 식기세트를 제공한 도자기 업체측의 말도 이 같은 사실을 뒷받침한다. 한 관계자는 “충북도청으로부터 역대 대통령 소장품 전시실에 제품을 제공해줄 것을 바라는 요청을 받았다”며 “두 번의 실사 끝에 제품을 공급하기로 결정했다”고 귀띔했다.
문의면에서 안중근학교를 운영중인 신성국 신부는 청남대의 역대 대통령 기념관 활용과 관련해 “행정자치부에서 이 사실을 몰랐겠느냐”고 주장했다. 신 신부는 현재 이원종 충북도지사를 건축법 및 군사시설보호법 위반으로 검찰에 고소한 상태.
그는 “노 대통령이 국민에게 돌려준 청남대에 또다시 권위주의의 산물인 대통령 기념관을 만들도록 방치할 수는 없다”며 “여론이 들끓자 전시실을 일시적으로 폐쇄하기는 했지만 임시처방일 뿐이다. 계획이 완전 백지화될 때까지 무기한 천막농성을 벌일 예정이다”고 말했다.
청원=이석 프리랜서 zeus@newsbank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