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닷컴 열풍이 불던 수년 전만 해도 온 국민의 시 선을 모으며 ‘상종가’를 쳤던 오상수 전 사장. 그의 몰락은 그래서 더욱 많은 뒷말을 남기고 있다. | ||
일각에서는 유독 검찰이 오 전 사장에게 강력한 압박수사를 가하는 분위기에 대해 ‘표적수사’ 의혹을 제기하기도 한다. “닷컴 열풍이 한반도를 뒤덮을 당시의 피해자”라는 동정론도 만만치 않다.
시가총액 3조원이 넘는 거대 벤처기업의 창업주이자 CEO로 각광받았던 오상수 전 사장. 오 전 사장의 구속을 지켜보는 업계에선 당위론과 동정론이 팽팽히 맞선 가운데 음모론까지 흘러나오고 있다.
[당위론]
오 전 사장 구속을 바라보는 금융가의 대체적인 반응은 ‘그럴 만하다’는 것이다. 한 증시 관계자는 “오 사장이 주식을 가지고 장난을 친다는 소문이 그동안 수차례 증권가에 나돌았다. 증권가에서 오 사장의 이미지는 그리 좋은 편이 아니다”라며 거부감을 나타냈다.
오 전 사장은 99년 11월 새롬기술이 대주주였던 다이얼패드 지분율을 허위 공시한 뒤 이듬해 2월 이를 숨기기 위해 STI의 자금 1백45억원을 빼내 다이얼패드의 지분을 추가매입한 데 이어 분식회계한 재무제표를 활용해 2000년 2월 유상증자 실시 과정에서 2백25억원을 챙긴 혐의 등으로 구속 기소됐었다. 그는 1심에서 징역 2년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지만, 2심에서 결국 법정 구속된 것.
오 전 사장은 가족이나 측근들마저도 내부 정보를 이용한 ‘돈벌이’에 나섰다는 의혹이 제기되면서 이미지가 상당히 흐려졌다. 실제 오 전 사장을 수사중인 서울지검 금융조사부는 지난해말 내부미공개정보를 이용해 보유주식을 사전 매각한 혐의로 오 전 사장의 부친 오 아무개씨(68·전 새롬기술 이사)와 한 아무개 전 새롬기술 사장(38) 등 15명에 대해 집중 조사를 벌이기도 했다.
검찰에 따르면 이들은 새롬기술의 자회사인 다이얼패드 파산 사실이 알려지기 한달여 전부터 다이얼패드 부실내역과 파산정보를 미리 알고 새롬기술 주식 2백41만여주를 장내에 내다팔았다는 것. 이중 오씨와 한씨 등은 다이얼패드 파산을 결정한 임원회의 직후 보유 지분을 팔아치운 것으로 밝혀졌다.
검찰 관계자는 “오 전 사장의 경우 측근이나 가족들이 외부에 공개되지 않은 정보를 이용해 보유주식을 사전 매각한 징후가 여러차례 포착됐다”며 “이같은 점만 보더라도 오 전 사장의 구속은 당연한 것”이라며 항간의 표적수사설을 일축했다.
증권가 일각에서는 오 전 사장의 오너로서 기본적 자질까지 들먹이는 얘기도 있다. 증권업계의 한 관계자에 따르면 닷컴 열풍 당시 오 전 사장이 유상증자 등을 통해 확보한 현금만 3천7백억원이 넘었다고 소개한다. 그러나 오 전 사장은 ‘밑빠진 독에 물붓기’식으로 막대한 적자를 내는 다이얼패드 사업을 강행하는 등 파행적으로 회사를 운영해 왔다는 것이다.
이 관계자는 “당시 새롬기술 안팎에서는 ‘은행 이자만으로도 전직원에게 월급을 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소리가 있을 정도로 우량 회사를 결국 오늘날 이렇게 만든 것만 보더라도 오너로서 오 전 사장의 자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옹호론자들 사이에서는 검찰의 강압 수사를 의심하는 목소리가 나오기도 한다. 실적 지상주의에 경도된 검찰의 감시망에 오 전 사장이 제대로 걸린 게 아니냐는 것.
실제 오 전 사장을 수사중인 금융조사부는 지난 4월 신설된 부서로, 형사9부의 후신이다. 형사9부는 지난해까지만 해도 금융감독원 등에서 고발한 사건을 주로 처리했다.
형사9부는 지난해 10월 발생했던 ‘3조원대 주금가장납입’사건인 명동사채업자 반재봉씨 구속을 계기로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이후 SK그룹과 계열사에 대한 수사를 비롯해 전재완 전 프리챌 사장, 김도현 모디아 대표 등 벤처업계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잇따라 해결하며 검찰내 금융사건 전담 부서로 자리매김했다.
아울러 지난 1월엔 금융증권분석실을 설립하면서 경제사범에 대한 인지 수사 역량을 대폭 강화했다.
그러나 잘 나가던 금융조사부의 행보에 브레이크가 걸렸다. 오랜 자료 수집을 통해 수사를 준비하던 현대상선의 4천억 대북송금 사건의 수사가 특검으로 넘어간 것.
당시 수사팀은 검찰 수뇌부의 결정에 상당한 불만을 털어놓은 것으로 알려졌다. 결국 큰 표적을 놓친 검찰이 새로이 전열을 가다듬어 오 전 사장에게 ‘집중포화’를 가했다는 얘기가 재계 일각에서 흘러나오고 있는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이다.
이에 대한 검찰측의 입장은 단호하다. 금융조사부의 한 관계자는 “수사중인 사건은 외부에 말하지 않는 게 원칙이기 때문에 자세히 밝힐 순 없으나, 이번 사건의 경우 오랜 기간 자료 수집을 통해 뚜렷한 혐의를 잡고 확인한 것”이라고 자신감을 표시했다.
오 전 사장측은 항소를 하겠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그의 한 측근은 “억울한 점이 많지만 사건이 아직 재판에 계류중인 관계로 이 사건에 대해 지금 직접적으로 언급을 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며 좀더 기다려줄 것을 요구했다.
[음모론]
오 전 사장이 구속되는 극단적인 상황에 처한 또다른 이유로 전통 재벌들의 음모에 의한 것이라는 얘기도 있다.
벤처 붐을 타고 새롬기술의 주가가 급등할 당시 이 회사에 투자했던 전통 재벌들이 주가하락으로 막대한 손실을 입자 오 전 사장의 비행을 검찰에 폭로, 구속사태에 이르게 했다는 소문.
실제로 지난 2000년 당시 새롬기술의 주가가 30만~40만원대를 오르내릴 때 내로라하는 재벌들이 앞다퉈 이 회사의 주식을 사들였다. 특히 한 그룹은 주력회사를 동원해 새롬기술이 실시한 유상증자에 수백억원씩 참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은 불과 1년도 안돼 새롬기술의 주가가 1백분의 1 수준으로 추락하면서 수백억원을 고스란히 날린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일부 재벌사에서는 해당 임원이 문책을 당하고, 평가손으로 인해 기업 자체가 휘청하는 곤욕을 치르기도 했다.
이렇게 되자 투자에 실패한 재벌기업들이 담합해 ‘오상수 죽이기’에 나섰고, 결국 회사내 비밀장부까지 들춰져 경영비리의 꼬리가 잡혔다는 소문이다.
어쨌든 오 전 사장의 사법처리는 광적인 벤처열풍이 남긴 씻을 수 없는 상처라는 점에서 벤처시장뿐 아니라, 경제계 전체에도 아픈 상처를 남긴 사건으로 기록될 전망이다.
이석 프리랜서 zeus@newsbank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