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종현 기자 jhlee@ilyo.co.kr
지난 5일 오후 1시 서울 관악구 2호선 신림역. ‘유흥의 거리’로도 유명한 이곳의 오후는 여느 시내와 비슷한 풍경이다. 연인 혹은 친구처럼 보이는 젊은 일행들과 좌판을 벌이는 상인들이 분주하게 오가고 있었다. 골목 쓰레기통에 버려진 ‘풀코스 가능’, ‘24시간대기’ 등의 불법 성매매 전단지가 이곳의 밤 문화를 짐작하게 해줄 뿐이었다.
신림역 일대는 서울에서 손꼽히는 ‘모텔촌’이 형성되어 있기로도 유명하다. 막상 역에서 나오면 바로 보이지 않지만 상가 안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양 옆에 모텔이 마치 기차처럼 쭉 늘어서 있다.
신림역 모텔촌은 입소문을 타고 주변 유흥가와 어우러져 한때 호황을 누렸다. 이용 연령층도 다양해 야간에 이용객이 꽉 차 간판 불이 꺼진 모텔이 즐비했다. 하지만 현재는 경기침체로 불황의 여파를 실감하는 중이다. 신림역 인근 한 모텔 업주는 “경기가 안 좋아서인지 모텔 이용객이 예전만큼은 아니다. 리모델링이라도 해야 할 것 같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그런데 최근 불황의 여파뿐만 아니라 심상치 않은 바람도 신림동 모텔촌에 불어 닥치고 있다. 바로 ‘중국계 바람’이다. 자본이 있는 중국계(중국인, 중국 동포 포함)가 신림동 모텔촌에 대거 입성해 위세를 떨친다고 한다.
“모텔을 임대해 운영하는 중국계가 상당하다. 자기들끼리 똘똘 뭉치는 성향도 강해서 모텔촌 일부를 거의 장악하고 있다.”
기자와 만난 한 모텔 업주는 신림동 모텔촌에 불고 있는 중국계 바람을 인정했다. 물론 한국인들이 운영하는 모텔이 아직까지 대부분이지만 신림역 인근 일부 지역의 모텔 다수를 점령하고 있다는 것이다. 복수의 모텔 업주들이 지목한 중국계 지역은 역에서 다소 떨어진 한 골목가 일대였다. 이 역시도 골목 양 옆으로 모텔들이 즐비해 있는 곳이다.
중국계가 운영하는 모텔 숫자는 아직 정확하지 않다. 신림역 인근에서 모텔 영업을 20년 했다는 한 업주는 “신림역 인근 전체 모텔 중에 약 ‘30%’ 정도는 중국계가 운영하는 것 같다. 특정 지역에 몰려 있긴 하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다. 바로 옆 모텔도 최근까지 중국인이 운영하고 빠져나갔다”라고 귀띔했다. 모텔을 전문적으로 거래하는 한 부동산 업주는 “전체 중에 20% 정도는 된다”라고 전했다. 신림역 인근 모텔이 120여 개에 달한다는 점을 감안하면 대략 ‘30여 개’의 모텔은 중국계가 운영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중국인들이 모텔을 운영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외국인 토지법에 따라 부동산 취득신고만 제대로 하면 되기 때문이다. 문제는 중국계가 운영하는 모텔 영업에 여러 잡음들이 일고 있다는 점이다. 모텔 업주들은 “중국계 모텔 때문에 장사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고 토로했다. 중국계 모텔들의 ‘마구잡이’ 영업이 문제라는 것. 앞서의 업주는 “중국인들이 운영하는 모텔은 한마디로 거침이 없다. 아무래도 이국땅에서 장사를 하다 보니 최대한 빨리 수익을 내고, 치고 빠지자는 성향이 강한 것이다. 불황인 마당에 지금 여기에서 수익을 잘 내려면 단순한 숙박 영업 갖고는 부족하다. 거침이 없다는 뜻은 백이면 백 ‘성매매’를 한다는 뜻”이라고 전했다.
또 다른 업주는 “매일 밤만 되면 한 20명 정도 ‘여자가 있느냐’고 카운터에 와서 문의하는 것 같다. 동네에 중국인들이 많다보니 중국 사람도 자주 온다. 안 된다고 돌려보내면 모텔촌을 돌다가 모이는 곳이 중국계 모텔이다. 성매매를 하지 않는 모텔도 많지만 이런 성매매 모텔 때문에 모텔 전체의 이미지가 나빠지기 십상이다”라고 토로했다.
업주들에 따르면 중국계 모텔들의 성매매 영업을 하는 루트는 크게 두 가지다. 대표적인 것이 중국계 여성을 고용하는 것. 중국계 업주이기에 중국계 여성과의 연계가 손쉬운 셈이다. 이 사이에서는 ‘전문 브로커’가 끼기 마련이다. 모텔 영업을 20년 했다는 앞서의 업주는 “성매매 전문 브로커가 실제로 있다. 모텔을 새롭게 개장하거나 리모델링하면 ‘생각 있으면 연락 달라’며 명함을 주고 가거나 오후 6시, 자정 무렵에 모텔 입구에 명함을 뿌리곤 한다”고 전했다. 이들 브로커들은 중국계 여성들을 관리하며 사무실을 두거나 광범위한 연락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두 번째는 기존의 한국인 여성들을 그대로 이용하는 것이다. 신림역 인근에서 잔뼈가 굵은 업소 여성들이나 성매매 여성들을 상대로 건별마다 연락을 취해 모텔에 오게끔 한다. 이 사이에서는 브로커가 따로 필요 없는 경우도 있다. 관련업에 종사하는 한 여성은 “PC방이나 원래 살고 있는 원룸에 대기하고 있다가 연락이 오면 모텔로 간다. 사장과 평소 안면을 터놨기에 다른 일을 하고 시간을 조절하며 두 탕을 뛰기도 수월하다”라고 전했다.
이처럼 일부 중국계 모텔에서 성매매가 활발하게 일어나고 있지만 관련 단속은 미미한 실정이다. 경찰 관계자는 “신림역 인근 모텔에서 불법 성매매가 적발돼 수사가 이뤄진 것은 많지는 않다. 한 달에 평균 4~5건 정도는 불법 성매매를 적발하는 것 같다”라고 전했다.
이렇듯 단속에도 흔들리지 않고 ‘고수익’을 자랑하는 덕에 모텔을 운영하려는 중국인들은 점차 늘고 있는 실정이다. 모텔 인근 한 부동산 업자는 “모텔을 운영하려는 중국인들이 줄을 섰다. 중국인이 돈을 벌어 빠져나가면 소개를 받아 또 다른 중국인이 진입하는 식이다. 그만큼 거래가 초스피드라 부동산에 매물이 나올 일이 별로 없다”며 “수익이 안 돼 빠져나가는 한국인 사장들도 중국인들과 거래를 하곤 한다. 인테리어가 잘 안 돼 있어도 상관없다. 다른 중국인들을 장기 투숙하게 해 돈을 벌거나 성매매를 하면 되기 때문”이라고 전했다. 이 과정에서 한국인을 내세워 건물주와 임대 계약을 한 후 다시 임대 계약을 맺는 ‘전대계약’도 빈번하게 일어나고 있다. 불법 성매매의 책임을 피하기 위해 ‘바지 사장’을 내세울 소지도 있는 것이다.
결국 중국계가 운영하는 모텔에 대한 논란은 신림동 모텔촌 일대에서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분위기다. 한 모텔 업주는 “중국 동포들이 잘 살아보겠다고 끈끈하게 뭉치고 악착같이 사는 것은 이해한다. 하지만 성매매를 당연한 듯 거침없이 하는 행태는 제재가 필요할 것 같다”라고 전했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