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억 원대 자산가로 알려진 송 아무개 씨가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에 있는 자기 소유 건물에서 피살됐다. 임준선 기자 kjlim@ilyo.co.kr
신고를 받은 119가 출동했지만 이미 송 씨의 상태는 돌이킬 수 없어 보였다. 결국 송 씨는 과다출혈 및 외상으로 숨을 거두고 만다. 송 씨의 머리에는 둔기로 10여 차례 이상 얻어맞은 흔적이 보였다. 단순한 절도범의 소행으로 보기에는 그 행태가 너무 잔혹해보였다.
경찰은 빌딩 1층에 설치된 CCTV를 살펴봤다. 간간이 사람이 오가는 건물 입구에 새벽 0시 50분쯤 송 씨가 들어가는 모습이 포착됐다. 송 씨의 시신이 발견된 시간은 새벽 3시 19분쯤. 그러니까 ‘2시간 30분’ 정도 사이에 범행이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할 수 있었다.
남은 건 용의자의 모습을 포착하는 것이었다. 건물 입구에서는 좀처럼 찾기가 어려웠다. 하지만 3층 사무실 CCTV에는 용의자로 추정되는 인물이 적나라하게 포착됐다. 마스크를 쓴 한 인물이 송 씨를 따라 사무실로 들어간 뒤 몸싸움을 벌이는 장면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이 남성은 송 씨와 몸싸움을 하기 전 마스크를 벗기도 했는데, 경찰은 이 인물의 얼굴까지 포착한 영상을 확보한 것으로 전해진다.
내발산동 A 빌딩의 관리사무실.
무엇보다 원한에 의한 범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건물주인 송 씨가 임차인들과 그동안 상당한 갈등을 겪어왔다는 전언이 계속해서 포착되고 있기 때문. 일부 임차인들 사이에서는 “임차인들이 송 씨와 관계를 좋게 하고 나간 사람들이 한 명도 없다”는 얘기도 흘러나오고 있다. 권리금을 빼앗고 보증금을 수시로 올리는 등 건물주로서 전횡을 부리며 이익을 챙겼다는 주장이다.
반면에 주변 이웃들의 경우 정반대의 평을 내놓고 있어 주목된다. “송 씨가 평소 검소한 생활을 해왔으며 다른 이들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조용한 삶을 살았다”며 입을 모으고 있는 것. 즉 송 씨와 단순한 ‘안면이 있는 관계’인지, ‘사업 관계’인지에 따라 평이 극명하게 엇갈리고 있는 것이다.
송 씨의 수상쩍은 재산형성 과정도 관심의 대상이다. 약 3000억 원의 재산을 갖고 있는 송 씨는 원래는 화물차를 몰던 평범한 근로자였다. 하지만 재일교포 출신 이 아무개 씨(2004년 사망)를 만나면서 인생이 달라졌다. 이 씨는 송 씨의 아내와 8촌 친척 관계로 17세 무렵인 1934년부터 일본으로 건너가서 큰돈을 벌었던 인물이다.
CCTV에는 용의자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포착됐다.
그러던 중 2002년경 고령인 이 씨가 지병으로 투병 생활을 하면서 재산의 향방은 심상찮은 분위기로 흘러갔다. 송 씨가 이 씨의 재산을 꾸준히 매입하기 시작한 것. 문제는 이 과정에서 송 씨의 사기 혐의(박스 기사 참조)가 포착됐다는 점이다. 이 씨의 부동산을 송 씨가 증여받는다는 서류를 법원에 제출했는데 이 서류 자체가 ‘위조’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졌다. 이후 송 씨는 소송에 휘말려 2009년에 법정 구속되기도 했지만 결국 사기 혐의에 대해서는 최종 무죄 선고를 받은 바 있다.
결국 사건의 열쇠는 CCTV에 포착된 용의자를 추적하는 한편, 송 씨의 재산 형성 과정에서 나타난 여러 의혹과 임차인들과의 갈등, 이 사이에서 벌어진 여러 진상들을 파악하는 데 달려 있는 것으로 보인다. 경찰 관계자는 “송 씨가 원한 관계가 워낙 많아 용의선상에 올라있는 사람이 여럿 된다. 사인 규명을 위해 계속 수사 중이다”라고 밝혔다.
박정환 기자 kulkin85@ilyo.co.kr
재산형성 과정 서류위조 의혹 1천억대 땅을 20억에 사들여 송 씨는 강서구에서는 ‘신흥재벌’로 꼽혔다. 일부 주민들 사이에서는 강서구 일대의 엄청난 땅이 그의 것이 아니냐는 소문도 돌았다. 자산이 상당했기에 지역사회 일도 여럿 참여했다. 지역사회 장학회나 복지재단에서 이사로 활동하기도 했다. 송 씨는 현재 부동산 임대중개업 등을 하는 S 기업의 대표로 있다. 직원 수가 60여 명인 중소기업이다. 그런데 S 기업도 애초 송 씨가 세운 회사가 아니라 재일교포 이 씨가 1997년에 세운 회사로 전해진다. 이 씨 사후 송 씨가 회사를 물려받은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3000억 원 자산가로 알려진 송 씨는 A 빌딩을 포함해 20여 층 규모의 화곡동 E 호텔과 4층 규모의 B 웨딩홀, 다세대주택건물 등을 보유하고 있다. 사건이 일어난 A 빌딩은 4층짜리 건물로 20여개 임대점포가 영업을 하고 있다. 상당한 재산을 가진 송 씨의 사기혐의가 불거진 시점은 재일교포 이 씨가 투병생활을 했던 ‘2002년경’으로 알려져 있다. 이 씨가 부동산을 관리하기 어렵게 되자 송 씨 부부는 S 기업 법인 도장이 찍힌 매매계약서를 만들어 이 씨의 부동산을 헐값에 사들이기 시작했다. 이 씨의 종로구와 강서구 일대 3000여 평의 땅은 당시 시가로 ‘1000억 원’을 호가했지만, 송 씨는 이를 단돈 ‘20억 원’에 사들이는 놀라운 매입을 단행하게 된다. 송 씨의 이러한 황당한 거래로 법인 도장과 매매계약서가 위조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처음 문제를 제기한 이들은 이 씨 측이 아니라 송 씨 건물에 입주하고 있던 임차인들이었다. 이 씨가 2004년에 사망한 탓에 별다른 이의제기를 못했기 때문이다. 임차인들이 들고 일어선 배경은 재산이 불어난 송 씨가 갑작스레 화곡동에 E 호텔을 건축하겠다며 임차인들에게 보증금을 높여 건축비 수천억 원을 충당한 일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이에 반발한 세입자들은 송 씨의 재산 형성 과정에 의혹을 제기했고 2005년 검찰에 고발을 하기에 이른다. 당시 이 사건은 ‘한일 공조수사’를 거치는 등 국제적 사건으로 확대되기도 했다. 송 씨는 지난 2009년 위조 및 사기 혐의가 인정돼 1심에서 징역 8년을 구형 받고 법정 구속됐다. 당시 재판부는 “그 수법이 대담하고 재판 중에도 서류를 위조했다”고 밝혔다. 하지만 2심에서 재판은 뒤집혀 서류 위조에 대해선 확정적인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판결이 내려졌다. 결국 검찰의 상고로 이어진 재판은 10년여의 법정 공방 끝에 송 씨의 무죄 판결로 최종 마무리되게 된다. 이렇게 다사다난한 과정을 겪어 수천억 원의 재산을 지켜낸 송 씨이지만 마지막은 결국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해 사건에 대한 의혹은 점차 커지고 있다. 경찰은 자세한 사인을 알아보기 위해 송 씨에 대한 부검을 국과수에 의뢰한 상태다. [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