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원호씨를 수사한 김도훈 전 청주지검 검사(가운데)가 지 난달 21일 몰카제작 혐의 등으로 구속됐다. 김 전 검사는 검찰 내 이원호씨의 비호세력이 있다고 주장했는데, 그 파문이 가시지 않고 있다. 충청리뷰 | ||
당시 형사2부에 소속되어 있었던 김도훈 전 검사는 수사팀에서 제외되었다. 김 전 검사는 그동안 심혈을 기울여 수사해왔던 자료들을 강 부장검사에게 빼앗기듯이 넘겨주면서 어떤 불길함을 느꼈다. 그는 얼마 전 자신에게 “깡패 말만 믿고 14년 전의 일을 수사하느냐”고 면박을 주었던 상사였다고 한다.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청주 몰카 사건’의 본질은 양길승 전 청와대 제1부속실장의 금품 수수 여부와 청주 지방 토호세력 유흥업자 이원호씨의 전방위 로비 및 검찰 비호 의혹이다.
하지만 이런 본질이 엉뚱하게도 검찰 내의 갈등과 대립으로 비화되기 시작한 시발점은 바로 이 부분. 이원호씨를 둘러싸고 김 전 검사와 강 부장검사의 이른바 ‘나와바리(구역)’ 싸움이 빚어낸 결과였던 것이다.
그렇다면 왜 이들은 한낱 지방 유흥업자에 불과한 이씨에게 이토록 집착했을까. 이씨와 청주지검, 그리고 이씨와 김도훈은 어떤 악연이었을까.
이번 파문의 발단은 지난 6월28일 양길승 전 부속실장이 청주에 내려와 이씨 등에게 술자리 향응 접대를 받는 장면이 몰카에 포착되었고, 이 내용이 지난 7월31일 언론에 의해 공개되면서 불거졌다.
하지만 이 사건의 전후로 이미 이씨의 구속 여부를 둘러싸고 청주지검 내에는 검사들끼리 밀고 당기는 치열한 힘겨루기가 벌어지고 있었다. 김 전 검사의 변호인측이 제공한 김 전 검사의 수사일지 메모 문건과 실제 상황을 통해 당시의 상황을 들여다보자.
6월20일(메모). [조세포탈 및 윤락행위 방조 혐의로 이원호씨의 긴급체포를 요청. 부장, 차장검사에게 승낙받음. 검사장 보고 이후 갑자기 부장검사가 “위에서 걱정하신다”며 긴급체포를 유보토록 지시.]
6월28일. 양길승 부속실장이 청주를 방문, 이원호씨 등으로부터 향응 접대 받는 자리에서 몰카에 포착됨.
6월말경. 이씨의 변호인인 검사장급 출신 김아무개 변호사가 청주지검을 방문, 고위층 인사와 만남.
7월1일(메모). [강 부장검사가 자신의 방으로 불러 “야 이 XX야. 14년 전의 이야기인데 그거 되겠느냐. 깡패 말만 믿고 이원호를 왜 구속하느냐”고 질타.]
7월2일(메모). [부장에게 일단 (이씨 사건의) 내사번호 부여받는 것으로 허락받았으나, 차장검사가 “김○○씨(이씨의 살인교사 혐의를 주장한 장본인) 진술 신빙성이 없고 (이씨를) 갈취교사로 보기 어렵다”며 반대. 1시간 동안 논란 끝에 결국 포기.]
7월31일. 언론에서 양길승 몰카 관련 내용 최초 보도.
8월1일(메모). [“이씨를 빨리 구속해야 겠다”고 하자 부장검사 “여론에 밀려 구속하면 되겠느냐”고 언급.]
8월1일. 청주지검 이씨 사건에 뒤늦게 정식내사번호 부여.
8월3일. 청주지검에 몰카사건 전담수사팀 신설. 형사1부에서 담당.
▲ 청주지검 전경 | ||
8월6일(메모). [강 부장검사가 방으로 찾아와 경찰 지휘사건에 대해 묻고 “조세포탈 사건은 천천히 하라”고 요구. 밤 9시께 차장검사의 호출을 받은 자리에서 “이씨를 원칙대로 구속하자”고 건의하자 “내일 당장 구속하라”고 언급. 이 자리에서 강 부장검사와 이씨간의 커넥션 소문에 대해서도 보고.]
8월7일(메모). [위에서 “이씨 구속 시기를 다시 조율하도록 했다”고 언급. 이어 오후 3시 S검사가 “이원호 구속은 신중하 게 하자. 이씨를 음해하는 거대한 음모세력이 있다. 특별수사팀과 협의하고 이씨 내사 사건을 뒤늦게 구속하게 된 경위에 대해 입을 맞추자”고 제의했으나 거절. 부장검사에게 “강 부장검사가 이씨 구속에 개입하려고 하니 막아달라”고 요청.]
8월11일(메모). [S검사와 이씨의 특가법상 조세포탈 혐의점에 대해 협의. S검사는 “5억 이상인 경우 2배의 벌금형 가능하니까 6억5천만원 탈세한 것으로 송치받아서 이원호와 쇼부볼 때 웨이터비용 15%를 감해주면 5억원 이하로 될 것”이라고 발언.]
김 전 검사의 이 메모 일지는 12일자 ‘키스나이트클럽의 명목상 사장 유아무개씨가 돈을 관리하므로 계좌추적하면 확인 가능’이라는 메모로 끝을 맺고 있다.
김 전 검사의 이 메모를 사실로 전제한다면 외압을 행사한 것으로 비칠 만한 검찰 내 인사는 고영주 청주지검장을 뺀 차장검사, 1부장검사, 2부장검사, 선배검사 등 거의 총망라되어 있다. 고 지검장은 8월1일 갑작스레 부임한 터여서 사실상 수사의 핵심에서는 벗어나 있었다.
이후의 상황은 청주지검측과 김 전 검사의 본격적인 대립으로 전개된다. 지난 8월13일 강 부장검사가 이끄는 수사전담팀은 김 전 검사의 이씨 사건 서류 일체를 가져갔고, 이에 반발한 김 전 검사가 다음날 언론에 “검찰 내에 이씨 비호세력의 외압이 있었다”고 폭로하기에 이르렀다. 이원호씨가 15일 조세포탈 혐의로 구속된 데 이어, 강 부장검사는 수사팀장에서 물러났고, 김 전 검사는 긴급 체포되었다.
수사전담팀은 추유엽 차장검사가 맡았다. 대검에서 내려온 감찰팀은 “외압 흔적이 없었다”고 발표했고, 이에 반발한 김 전 검사의 변호인단은 메모 문건을 공개하기에 이르렀다.
▲ 지난 8월25일 언론사 기자들 앞에 선 김도훈 전 검사의 변호인. 이들은 김 전 검사의 메모를 공개하고 ‘외압’을 주장했다. | ||
주목할 만한 것은 신임 변 부장검사가 27일 청주에 부임하자마자 곧바로 추 차장검사로부터 팀장의 지휘권을 넘겨 받았다는 점이다. 검찰에서는 “원래 팀장을 맡아야 할 부장검사급 간부가 인사 대상이어서 잠시 차장검사가 맡아온 것뿐,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김 전 검사의 메모 내용이 공개되면서 분위기가 급변하자 대검에서도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자칫 청주지검의 문제로 그치지 않고 대검에까지 확대된다면 검찰의 권위는 다시 한번 추락할 것이 뻔하기 때문. 이런 상황에서 수사팀장의 교체는 불가피한 상황으로 받아들여지는 분위기.
대검 관계자는 지난 9월1일 오전 “확대간부회의에서 나온 얘기로는 윗선(청주지검 고위층)에서 어떤 식으로든 이 문제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하지 않겠느냐”는 얘기가 나왔다고 전했다.
현지의 시선은 자연히 세 번째 수사팀장을 맡은 변 부장검사에게 쏠려 있다. 변 부장검사는 사시 28회로 대구 대건고와 경북대를 졸업한 이른바 TK 출신. 그는 대구지검과 서울지검 등에서 특수부 검사로 오래 근무한 ‘특수통’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서울지검 소년부 주임검사 시절 원조교제와 청소년 인신매매 등에 관해 광범위한 수사를 벌이며 한때 유명세를 타기도 했다. 부임 전 이미 ‘몰카사건 의혹’의 새 해결사 임무를 부여받은 변 부장검사의 부임에 대해 현지에서는 “사실상 대검에서 제2의 감찰반이 내려온 것 아니냐”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평검사들의 인사 이동도 뒤따르면서 사실상 새 팀이 짜여지고 있기 때문이다.
청주 현지에서는 이씨와 검찰의 커넥션에 대한 의혹이 점점 증폭되고 있다. 몰카를 제작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홍아무개씨는 자술서에서 이씨에 대해 “부동산을 팔면서 폭력배를 동원해 돈을 챙기게 하고 그들과 공생하며 사업을 넓혀 나가는 이 회장을 철저하게 조사해 엄벌해 달라”고 적었다.
이씨를 협박해 돈을 갈취한 혐의로 구속 기소된 조폭 김아무개씨의 한 동료는 법정에서 “우리가 사회의 암적인 존재라면 이씨는 그야말로 세균덩어리”라고 분개하기도 했다.
한편 김도훈 전 검사의 전격 구속 사태에 대한 파장이 평검사들에까지 확대될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주목된다. 서울지검의 한 평검사는 “처음엔 사실 뭐가 뭔지 좀 혼동스러웠다. 하지만 갈수록 김 검사에 대한 상층부의 외압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뭔가 부적절한 압력이 형성된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이것이 비단 청주지검만의 문제로 국민들에게 인식되겠는가”라고 우려했다.
일각에서는 지난 25일 김 전 검사를 수사했던 청주지검 심아무개 검사가 갑자기 내부통신망에 김 전 검사의 부도덕성과 근거없는 외압 폭로를 올린 것도 평검사들의 동요를 감지했기 때문이 아닌가 의심하는 분위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