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금실 법무장관(오른쪽)과 송광수 검찰총장이 지난 4일 ‘보신탕 회동’을 가졌다. | ||
지난 4일 밤 9시20분경 과천 정부종합청사 근처의 한 보신탕 전문 음식점. 약간 취기가 오른 모습의 강금실 법무부 장관이 식당 안뜰에서 자신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던 취재진들에게 밝은 표정을 지으며 한마디 했다. 강 장관의 옆에는 역시 적당히 불콰해진 얼굴의 송광수 검찰총장이 바짝 붙어 있었다. 강 장관은 주차장으로 이어진 오솔길을 내려오다 송 총장의 팔짱을 끼며 다정한 모습을 연출했다.
두 사람을 뒤따르던 법무부와 대검 참모들은 웃음꽃을 피웠고, 사진 기자들의 카메라는 연신 플래시를 터뜨렸다. 일명 ‘개고기집 회동’으로 인구에 회자된 강 장관과 송 총장의 이날 만찬 모임은 이렇게 막을 내렸다.
처음 만나는 것도 아닌데 두 사람의 회동에 세간의 눈과 귀가 쏠린 까닭은 최근 잇따라 불거진 법무부와 검찰의 ‘갈등설’ 때문이었다.
그 내용은 지난달 단행한 검찰 중간간부 인사와 검찰 감찰권의 법무부 이관 추진, 강 장관의 최측근으로 비리 의혹이 제기된 법무부 L검사에 대한 대검의 징계 청구 등을 둘러싸고 두 기관이 불편한 관계에 있다는 것이다.
이에 대한 언론 보도를 의식한 듯 강 장관은 이날 “기사에 갈등이 있다고 나오는데 오해이며, 우리는 마음이 같다”고 강조했고, 송 총장도 “이견이 있다고 하는 것은 언론에서 하는 얘기지 우리는 이견이 없다”고 거들었다. 두 사람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이날 회동은 그동안의 갈등 기류를 해소하기 위해 ‘기획’된 자리였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이례적으로 법무부와 대검 간부들의 식사자리가 언론에 공개된 것이나 강 장관이 두 차례나 송 총장의 팔짱을 끼는 등 ‘오버’를 한 것 등이 그런 추정을 가능케 하는 대목이다.
법무부는 “이날 만찬은 두 달 전에 예약됐던 것”이라고 밝혔으나 검찰의 한 중간간부는 “송 총장이 진작부터 강 장관에게 회동을 제의했는데, 강 장관이 답을 주지 않다가 지난 3일 L검사 징계 청구 관련 언론보도 등으로 갈등설이 증폭되자 서둘러 날짜를 잡은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이날 모임에서 강 장관은 ‘폭탄주’를 9잔이나 마시는 등 몸을 아끼지 않았고, 평소 술을 가까이 하지 않는 송 총장도 연거푸 ‘폭탄주’를 들이켰다고 한 참석자가 전했다.
법무부 관계자는 “원래 보신탕을 먹지 않는 강 장관이 굳이 보신탕집을 약속 장소로 정한 것도 송 총장 등 검찰 간부들의 식성을 배려해서였다”며 “강 장관은 보신탕 대신 삼계탕을 시켜 들었다”고 말했다.
이날 강 장관과 송 총장은 식사 도중 음식점 2층 방으로 올라가 30분간 독대하며 밀담을 나눈 것으로 확인됐으나, 그 내용은 일체 공개되지 않았다. 대검의 한 참모는 “상식적인 선에서 유추한다면, 서로간에 섭섭했던 부분에 대한 진솔한 대화가 있었을 것이고, 앞으로 갈등설이 재발하거나 커지지 않도록 ‘커뮤니케이션’을 활발히 하자는 얘기가 오가지 않았겠느냐”고 했다.
강 장관의 ‘검찰 껴안기’ 행보는 다음날에도 이어졌다. 그는 5일 서울지검과 수원지검을 잇따라 방문해 청사 구석 구석을 둘러보고, 직원들과 간담회를 열어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도 했다.
그는 이날 서울지검에서 한 훈시에서 “처음엔 (검찰에) 사랑하는 마음이 없었는데 이제는 한분한분 마음으로 받아들이게 됐다”고 하는 등 검찰에게 ‘러브 콜’을 날렸다. 또 덴마크 영화 <바베트의 만찬>을 소개하며 “여주인공이 정성들여 만든 음식으로 경직됐던 동네 사람들의 마음을 열었다는 내용이 인상적이었다”면서 “우리 검찰도 서로 마음을 열고 이해하기 위해 노력하자”고 당부했다. 그러나 강 장관은 “제도를 바꾸는 것은 몸이 컸을 때 옷을 바꾸는 것과 마찬가지이며 마음을 열면 바꿀 수 있다”고 개혁의 당위성을 역설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어찌됐든 ‘보신탕 회동’을 계기로 강 장관과 송 총장간의 갈등설은 일단 수면 아래로 가라앉은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두 사람 사이에는 여전히 언제든지 터져 나올 수 있는 ‘뇌관’들이 도처에 깔려 있기 때문에 이번 ‘화해’는 일시적인 봉합에 불과하다는 분석도 있다.
실제로 두 사람을 애초 갈등설에 휘말리게 한 사안들, 곧 감찰권 이양 및 인사문제 등은 폭탄주를 주거니받거니 하고 팔짱을 낀다고 해서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다.
감찰권 이양 논란만 해도 그렇다. 강 장관은 지난달 18일 청와대 국무회의에 참석하기 전 기자들과 만나 “검찰 감찰권을 법무부로 가져오는 방안을 올해 안에 결정할 것이며 대통령도 이를 하라는 취지”라고 밝혔다. 문재인 민정수석도 “검찰의 중립성과 독립성 보장은 정권이 바뀌더라도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라며 “그에 맞춰 감찰권 강화가 필요하다는 맥락에서 법무부로 감찰권을 넘기는 방안이 법무부 내 제도개선연구팀에서 개혁과제의 하나로 논의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검찰은 즉각 반발했다. 송 총장은 다음날인 19일 오전 기자들에게 “법무부에 감찰부서를 신설하더라도 검찰조직 안에 감찰 기능은 그대로 존속할 필요가 있다”며 반대의 뜻을 분명히 했다. 대검에서는 “법무부가 인사권에 이어 감찰권까지 갖겠다면 수사지휘권은 완전히 포기해야 할 것”이라는 등의 불만이 터져나왔다.
설상가상으로 같은달 22일 발표된 검찰 중간간부 인사에 송 총장의 의중이 거의 반영되지 않았다는 소문이 번지면서 일이 더욱 꼬이기 시작했다. 이 추정의 근거는 무엇보다 송 총장이 애초 ‘소폭 인사’를 점친 것과 달리 서울지검 부장들이 대거 바뀌는 등 ‘중폭 인사’가 됐다는 점이다. 게다가 관행적으로 검찰총장의 몫인 서울지검 특수1부장에 송 총장과 무관한 뜻밖의 인사가 임명된 것이다. 법무부 관계자는 “강 장관이 송 총장과 충분히 상의해 인사를 했다”고 강조했지만, 검찰 안팎에서 이를 곧이 믿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여기서 한 가지 되짚어 볼 대목은 서울지검 특수1부장 인사의 상징성이다. “역대 검찰총장 모두 특수1부장은 자기 사람을 앉혔다. 법무장관에 아무리 힘센 실세가 와도 그 자리만큼은 총장에게 양보하는 것이 관례였다. 이번 인사 전까지 특수1부장을 지낸 서우정 부장검사 역시 한때 일선에서 송 총장을 직접 모셨던 측근이었다. 그런데 새로 온 김태희 부장은 송 총장과 그 어떤 연고로도 이어지지 않는다. 한마디로 송 총장이 앉힌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
서울지검 관계자의 말이다.
그렇다면 도대체 특수1부장은 어떤 자리인가? 서울지검 특수부는 1·2·3부로 나눠지는데, 그 중에서 1부는 정치인 및 고위 공직자 비리와 대형 경제사건 수사를 주로 한다. 또 1부장은 특수부 선임부장으로서 서울지검에 집중되는 범죄정보를 총괄하고, 각종 진정사건을 다른 부에 배당하는 권한도 갖고 있다. 또 2, 3부보다 두 배나 많은 80여 명의 수사인력을 지휘하고 있으며, 이들 모두 최고의 정예 요원들이다. 여기에 더해 1부는 거짓말탐지기와 감청시설 등 첨단 장비를 자체적으로 보유하고 있다.
대검 중수부와 달리 수사 결과에 대한 부담이 곧바로 검찰총장에게 미치지 않기 때문에 중요하면서도 민감한 사안은 특수1부에 배당되곤 한다. 역대 총장들이 특수1부장에 자기 사람을 심어온 까닭이 여기에 있다.
차츰 점증되던 강 장관과 송 총장 사이의 긴장 기류는 지난 3일 법무부 L검사에 대한 징계위원회 소집 건으로 폭발 일보 직전까지 다다른 것으로 보였다. 강 장관의 검찰 개혁 구상을 실무적으로 뒷받침해온 L검사가 일전에 용산경찰서에서 수사한 ‘법조브로커’한테 1백만원을 받은 정황이 있다며 대검이 징계를 추진한 데 대해 강 장관은 “L검사는 물론 나까지 겨냥한 처사”라며 발끈한 것으로 알려졌다.
다행히 4일 ‘보신탕 회동’으로 급한 불은 껐지만, 강 장관으로서는 그렇다고 L검사 징계 및 감찰권 이관 문제 등 ‘뜨거운 감자’들에 대한 결론을 마냥 미룰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