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계종 총무원장 법장 스님(왼쪽)과 문희상 비서실장(오른쪽)의 간접회동에서 ‘정치적 보호’ 얘기가 불거지며 일어난 파문이 가실 줄을 모르고 있다. | ||
진위 여부에 따라서는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킬 수도 있는 이 의혹의 불씨는 여전히 가시질 않고 있다. 정작 당사자인 양측은 모두 적극적으로 부인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당초 이 문제를 처음 제기했던 불교의 한 단체도, 양측의 메신저 역할을 한 대통령 측근의 한 불자도 “애써 참겠다”는 말로 묘한 여운을 남기고 있다.
청와대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이고, 종단측은 “해프닝성 오보”라고 덮기에 급급한 인상. 그렇다면 청와대에서 나왔다는 “북한산 관통 도로에 협조하지 않으면 총무원장의 정치적 보호도 보장할 수 없다”는 협박성 발언의 출처는 과연 어디일까.
애초 이번 파문이 불거지기 시작한 것은 지난 8월29일. 불교환경연대는 이날 밤 “여권의 한 정치권 인사가 청와대 고위 책임자와 대화하는 과정에서 북한산 문제에 대한 불교계의 협조문제를 이야기하면서 총무원장에 대한 ‘정치적 보호’ 문제에 대해 논의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고 주장했다.
이 단체는 “지금이 어떤 세상인데 군사독재 시절에도 쉽게 할 수 없는 협박을 종교계에 하는가”라며 강력히 반발했다.
마감을 앞둔 <불교신문>은 다음날 신문 1면 톱기사로 ‘청와대, 총무원장 스님 협박’이라는 제하의 기사를 게재했다. 하지만 총무원장인 법장 스님이 “확인작업이 치밀하지 못해 오보를 낸 것 같다”며 “자칫 청와대와 종단이 대립하는 것으로 비칠 수도 있다”며 신문을 전량 폐기할 것을 지시했다.
이에 신문사 노조측은 “정말 명백한 오보라면 우리 신문사의 명예가 걸린 문제”라며 공정보도위원회의 소집을 요구하고 나서는 등 반발했다.
지난 9월2일 이 문제가 외부에 알려지면서 파문이 확산되자 이날 <불교신문>의 사장과 부사장 및 주간이 책임을 지는 차원에서 모두 사표를 제출했다. 법장 스님은 아침 일찍 스리랑카 수재민 마을 방문차 출국했다.
종단과 청와대측은 “사실과 다른 해프닝”임을 강조했고, 불교계에서도 “더이상 파문이 확산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는 입장을 나타냈다.
▲ 청와대 협박설’을 실은 지난 2일자 <불교신문>. 우태윤 기자 | ||
양측의 관계가 극도로 불편해진 상황에서 최근 Y씨가 양측의 메신저로 등장했다. 재가 불자인 Y씨는 지난 대선에서 노무현 후보의 특보를 맡는 등 양측 모두에 선이 닿는 인사였다.
Y씨는 청와대 문희상 비서실장을 먼저 만나 이 문제를 의논했고, 다시 법장 스님을 만났다. 하지만 법장 스님은 Y씨와 만난 이후에 상당히 불쾌해 했다는 전언. 이후 법장 스님은 오랜 문도인 불교환경연대 대표 수경 스님을 만났고, 이어서 불교환경연대는 “청와대가 사실상 총무원장을 협박했다”는 성명서를 발표하기에 이르렀다.
이번 파문은 현재 4각으로 형성된 채 진실게임 공방을 벌이고 있다. 핵심 당사자인 청와대와 법장 스님의 주장을 시작으로 추적해보면 이번 파문의 진원지로 궁지에 몰리는 이는 결국 수경 스님이 된다. 문 실장과 법장 스님은 “협박 운운한 것을 말한 적도 없고 들은 바도 없다”고 주장하고 있고, Y씨 역시 절대 그런 말은 없었다고 항변하고 있기 때문.
이에 불교환경연대의 한 관계자는 “지금 우리가 침묵하면 마치 우리 스스로가 잘못을 인정하는 것처럼 비치는 등 신뢰도에 치명타를 입게 된다. 그런 불이익을 감수해야 하는 상황이 정말 억울하지만 대승적인 차원에서 자제하겠다”고 말을 아꼈다.
그렇다면 공은 다시 Y씨에게 넘어간다. 불교계 관계자들은 같은 문도이면서도 세속적 관계로는 6촌간인 법장 스님과 수경 스님의 오랜 신뢰도를 고려할 때 양측간에 오해가 생겼을 가능성은 전무한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하다.
한 관계자는 “오히려 이번 파문으로 법장 스님의 입장이 난처해지자 수경 스님이 애써 침묵하고 있는 것이 아니냐는 얘기가 많다”며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따라서 문 실장과 법장 스님 사이에서 말을 잘못 전달한 것이 결국 Y씨가 아니냐는 것이다.
이에 대해 <불교신문>의 한 관계자는 “Y씨는 그동안 불자로서 재야 민주화 운동을 해오면서 불교계 내에서도 꽤 신망이 두터운 인사”라고 소개하면서 “함부로 없는 말을 부풀려 옮기는 사람이 아니라는 평이 지배적”이라고 전했다.
결국 시선의 끝은 다시 청와대로 향하게 되는 셈. 불교환경연대의 한 관계자는 “‘정치적 보호’라는 표현이 언급되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면서 “현재 ‘총무원장 당선무효’ 소송에 계류중인 총무원장에게 정치적 보호 운운하는 표현이 나왔다는 자체부터가 시비거리를 제공한 것 아니냐”고 반문했다.
다시 지목의 대상자가 된 청와대측은 “정치적 보호라는 표현을 쓴 바가 전혀 없다”고 밝혔다. Y씨도 “그런 말을 전한 적이 없다”고 주장했다.
그럼에도 이들은 이 발언의 진원지인 불교환경연대측과 <불교신문>에 대해 어떠한 책임도 묻지 않고 있다. 더군다나 불교환경연대측은 여전히 성명서 내용을 철회하지 않고 있고, <불교신문> 노조도 ‘오보’를 인정하지 않는 상태다.
이들은 기사에 대해서도 책임을 묻지 않겠다는 입장이다. Y씨도 “내 입장에서 할 말은 많지만 참겠다”라고 언급했다. 다들 “더이상 확산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는 식이다. 당사자들의 이런 태도가 ‘진실이 감춰지고 있는 게 아니냐’는 의심이 가라앉지 않는 배경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