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이혼율이 급격히 증가하는 등 부부간의 불륜과 외도가 새로운 사회문제로 등장한 가운데 배우자의 이메일을 해킹해주는 ‘해킹족’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지극히 사적인 내용이 오가는 개인 이메일의 비밀번호가 사이버 공간을 통해 은밀히 거래되고 있는 것. 이는 최근 인터넷 채팅 등으로 인한 불륜 커플이 등장하면서 나타난 신풍속도 중의 하나다. 현재 인터넷 포털사이트 등에서는 배우자의 불륜을 의심하는 남편 또는 아내의 해킹 청탁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 발생하고 있는 연예인 해킹사건도 이런 분위기와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 이메일 해킹을 요청하는 글들과 거기에 달린 수많은 답글들. 대체로 건당 3만원선에서 거래된다는 후문이다. | ||
아직까지도 ‘진행’중인 이 설문에 참여한 인원은 1천1백30명. 응답자 중 ‘절대 안된다’는 대답을 한 사람은 2백93명(25.9%)에 불과하다. 대신 ‘사정을 참작해 수긍이 가면 해줘도 된다’가 2백90명(25.6%), ‘부탁하는 사람의 신상이 확실하다면 가능하다’가 1백76명(15.5%)이나 된다. 심지어 3백17명(32.8%)의 해커들 스스로도 ‘메일을 훔쳐보고 싶다’고 답해 상황의 심각성을 짐작케 했다.
설문을 실시한 동호회 운영자측은 “최근 게시판을 통한 이메일 해킹 의뢰가 많아 이같은 설문을 실시하게 됐다”며 “법적인 문제를 떠나 해커들의 생각을 물어본 것이었는데 이같은 결과가 나와 적지 않게 당황스럽다”고 말했다.
이렇듯 최근 타인의 이메일을 해킹해주는 ‘해킹족’들이 사이버 공간을 통해 기승을 부리고 있다. 의뢰인들은 자신이 원하는 사람의 비밀을 엿볼 수 있어서 좋고, 해커들은 짭짤한 부수입을 올릴 수 있어 ‘누이좋고 매부좋은’ 셈이다.
물론 해킹 의뢰의 대부분은 불륜이 의심되는 배우자나 이성 친구의 파트너. 이를 위한 적정가격도 형성돼 있다. 이메일을 해킹한 대가로 받는 돈은 보통 3만원 선. 때문에 일부 부도덕한 해커들은 포털사이트의 게시판을 통해 장사를 하기도 한다는 게 업계의 귀띔이다.
실제 한 해킹 동호회에 접속해 보았다. 게시판을 클릭하자 아내나 여자친구를 의심해 이메일을 해킹해달라는 주문이 즐비하다. ‘여자친구가 바람을 피우는 것 같다. 알 수 있는 방법이 없느냐’ ‘아내가 이상해요. 아내의 이메일 비번을 알려주시면 사례하겠습니다’ 등 사연은 대체로 엇비슷하다. 글 아래로는 서로 자기가 하겠다는 답변이 올라와 있다. 일부의 경우 질책성 글을 올리기도 하지만 대부분이 ‘아이디만 알면 비번 알려드림’, ‘OOO@hanmail.net으로 연락 바람’ 등의 내용이 대부분.
문제는 보안 관련 동호회 등을 통해 해킹 정보가 아무런 제재 없이 유포되고 있다는 점이다. 물론 해당 커뮤니티측은 “보안 정보를 강의하기 위해 해킹 정보의 오픈은 불가피하다”고 해명한다. 그러나 이곳에 게재된 각종 해킹 정보들이 아무런 제재없이 실전(?)에 응용되고 있어 책임을 회피하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보안 전문가들의 한결같은 지적이다.
보안 컨설팅 업체인 한국통신보안의 한 관계자는 “상대가 해킹 프로그램이 심어진 메일을 열면 키보드 입력 내용이 자동으로 전송된다”며 “원리만 알면 초보자라고 해도 자신의 메일처럼 상대방의 메일을 훔쳐볼 수 있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 성동경찰서는 최근 아내의 이메일을 훔쳐본 남편 김아무개씨(31)에 대해 구속영장을 신청했다. 경찰에 따르면 김씨는 아내가 이혼을 요구하자 불륜을 의심, 이메일을 해킹하기로 결심을 했다. 경찰 조사 결과 김씨는 보안 관련 커뮤니티를 돌며 정보를 수집한 것으로 밝혀졌다. 심지어 범행에 사용된 해킹 프로그램도 이곳에서 다운받았다. 이렇게 해서 준비를 마친 김씨는 아내에게 “화해하자”며 집으로 불러 이메일을 사용하게 한 뒤 프로그램에서 기록된 내용을 훔쳐볼 수 있었다.
이와 관련, 경찰측은 본인이 요청해왔을 경우에만 수사가 가능하다는 입장이다. 서울경찰청 사이버수사대의 한 관계자는 “이메일 해킹의 경우 피해 당사자가 신고를 하지 않을 경우 수사를 할 수 없다”며 “때문에 피해를 당할 경우 적극적으로 대처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이석 프리랜서 zeus@newsbank21.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