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 장관이 각별히 신임하는 참모로 알려진 L검사에 대한 징계 문제는 그동안 법무부와 검찰 간 갈등 기류에 직접적인 원인을 제공한 ‘뜨거운 감자’였다. 강 장관이 대검 감찰부의 조사 결과보다 L검사의 결백 주장을 훨씬 신뢰하고 있다는 소식 때문이었다.
여기에 검찰 내 일부 세력이 강 장관 취임 이후 강 장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법무부 및 검찰 개혁을 추진하면서 ‘실세’로 떠오른 L검사를 견제하기 위해 무리하게 징계를 청구했다는 ‘음모론’이 갈등설에 살을 붙였다.
이와 관련, 법무부 관계자는 “한 참모가 강 장관에게 ‘검찰이 나름대로 뭔가 확인한 게 있으니까 징계를 청구한 것이 아니겠느냐’는 취지의 말을 했더니 장관의 안색이 확 변하더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며 “강 장관은 기본적으로 L검사가 자기 때문에 검찰의 타깃이 됐다는 인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이런 와중에 법무부는 지난달 3일 L검사 등 ‘용산 브로커’ 사건에 연루된 의혹을 받고 있는 검사 4명에 대한 징계위원회를 열었으나, 아무런 결론을 내지 못하고 다시 회의를 소집하기로 했다. 통상 한 차례 회의로 징계 여부와 수위를 결정해온 전례에 비춰 매우 드문 일이었다.
바로 그 다음날 강 장관은 송 총장과 대검 참모들을 과천의 한 보신탕집으로 초빙해 만찬을 함께했다. 강 장관이 송 총장의 팔짱을 끼는 ‘볼거리’까지 곁들여진 이날 회동 이후 L검사 문제는 잠시 사람들의 뇌리에서 잊혀졌다. 그런데 온통 세간의 관심이 송두율 교수 사건에 쏠려 있던 지난 2일 강 장관 주재로 열린 징계위에서 L검사가 최종 무혐의 판정을 받은 것이다. 반면 다른 세 명의 검사에게는 ‘유죄’ 평결과 함께 정직 등 징계 처분이 내려졌다. 당연히 “장관이 중히 쓰는 L검사만 구제받은 것 아니냐”는 뒷말이 따랐다.
이날 회의에는 위원장인 강 장관 외에 법무부 검찰국장, 기획관리실장, 법무실장, 대검 기획조정부장, 대검 강력부장, 서울고검장 등 7명의 위원이 참석해 6시간 동안 난상토론을 벌였는데 결국 대검 기조부장인 문영호 검사장을 제외한 6명이 “L검사의 변소를 뒤집을 만한 증거가 없다”며 무혐의 결정에 동조한 것으로 전해졌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과정에서 대검 감찰부가 지난 9월 징계 청구를 하면서 제출한 조사 결과와 별도로 법무부가 자체적으로 L검사 사건의 진상을 조사해 징계위에 냈으며, 두 기관의 조사 결과가 큰 차이를 보인 것으로 알려진 점이다.
법무부의 자체 조사는 관계 법령에 근거한 것으로 전해졌으나, 그동안 대검의 조사 결과를 거의 그대로 인용해 결론을 내온 관행에 비춰 이례적인 조처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어쨌든 대검 감찰부의 경우, 박씨에 대한 계좌추적 과정에서 박씨의 10만원권 수표 10장이 L검사에게 흘러간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정설이다. 이에 대해 L검사는 “일전에 학교 동창인 이아무개씨와 함께 인도네시아 발리로 여행을 갔을 때 이씨에게 달러 환전을 해주면서 받은 수표”라며 “나중에 알아보니 이 수표는 이씨와 친한 박씨가 ‘발리 면세점에서 양주(발렌타인) 2병을 사다달라’며 이씨에게 준 것”이라고 해명했다고 한다.
대검은 당시 ▲이씨 부인이 “남편이 양주를 사온 적이 없다”고 진술했고 ▲L검사와 이씨가 발리에서 술을 샀다는 시각에는 이미 면세점 영업이 끝난 뒤였으며 ▲이씨와 박씨가 친한 사이라고 볼 근거가 부족하다며 L검사 주장을 일축한 것으로 전해졌다.
그러나 법무부가 이번에 자체 조사한 결과, 발리의 면세점은 24시간 영업을 하는 곳이고 L검사 주장대로 이씨와 박씨는 절친한 사이임이 새로 드러났다는 것이다. 법무부는 또 “이씨 부인이 ‘남편이 술 사오지 않았다’고 진술한 것은 대검 감찰부 소속 검사의 갑작스런 질문에 순간적으로 당황해서 부인한 것이고, 실제로는 이씨가 발렌타인을 사와 지인들과 나눠마셨다”는 결론을 낸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를 근거로 법무부측은 “대검이 기초적인 사실관계조차 제대로 조사 안하고 L검사를 징계위에 넘겼다”며 공세를 취하고 있다. 특히 L검사측은 “징계위의 무혐의 판정으로 대검측이 ‘표적사정’을 했음이 드러났다”며 L검사에 대한 징계를 추진한 대검 감찰부 등의 사과 및 해명을 기대하고 있는 눈치다.
하지만 대검측은 여전히 L검사의 행적에 대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않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검찰 소식통은 “대검 감찰부는 조사 과정에서 한두 가지 실수를 한 것은 인정하지만 L검사의 결백이 입증됐다는 논리에는 강한 거부감을 갖고 있다”고 전했다.
이런 상황에서 지난 6일 대검찰청에 대한 국회 법사위 국감에서 송 총장이 검찰 인사권과 감찰권과 관련해 예상 외로 강하게 법무부에 대한 견제 의지를 밝혀 주목을 받았다. 송 총장은 이날 한나라당 김용균 의원이 “(법무부 장관의) 인사 외풍을 차단할 대책이 있나”라고 물은 데 대해 미리 작정하고 나온 듯이 “인사에 불리하다고 생각하면 (검사들이) 소신 있게 수사를 못한다”며 “법무장관과 검찰총장 간 인사 협의를 법률상 명문화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송 총장의 이 발언은 지난 8월 검찰 인사를 놓고 “검찰총장이 배제됐다”는 얘기가 돈 이후 처음으로 인사권에 대한 검찰의 공식 태도를 밝힌 것이었다. 이 때문에 법무부와 검찰의 인사권 갈등이 다시 재연되는 것 아니냐는 전망도 나왔다. 송 총장은 이어 감찰권의 법무부 이관 문제와 관련해서도 “일선을 잘 알고 지휘감독하는 대검에 감찰권을 부여해야 한다”고 종전 주장을 거듭 밝혔다.
이날 국감에서는 강 장관과 L검사의 ‘기묘한 인연’이 소개돼 관심을 끌기도 했다. 한나라당 홍준표 의원은“강 장관이 부패방지위원회 위원 시절 L검사가 연루된 다른 비리 의혹과 관련해 고발장을 쓰고 재정신청을 낸 적이 있다”고 주장했다.
10일 열린 법무부 국감에서도 L검사 사건이 다뤄졌다. 민주당 조순형 의원이 “징계회부된 검사 4명 중 장관의 측근 검사 한 명만 무혐의 결정을 받았다”고 지적하자 강 장관은 “‘측근’이라는 표현에 동의할 수 없다”면서 “증거조사 결과 일부가 무혐의 날 수도 있는 것”이라고 응수했다.
이에 조 의원이 “대검 감찰부장은 견해 차이라고 한다”고 하자 강 장관은 “새로운 사실들에 대해 한 달 동안 증거조사를 했다”며 대검측 설명을 일축하고, 징계위 결론에 문제가 없음을 강조했다. 현재 L검사 사건에 대한 법무부와 검찰 내부의 시각은 극명하게 갈리고 있다.
일각에선 L검사가 이 사건 전에 다른 비리 의혹에 연루돼 두 차례나 징계위에 회부된 전력을 들어 “이렇게 자꾸 구설에 오르는 것은 L검사 처신에 문제가 있기 때문 아니냐”며 L검사에 대한 문책 주장에 동조하는 견해를 보이고 있다. 이에 반해 다른 쪽에서는 “검사를 징계하려면 그만한 증거가 있어야지 심증만으로 밀어붙이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며 L검사에 우호적인 입장이다.
서울지검 관계자는 “지금 당장은 법무부와 대검 모두 SK 비자금 사건 파문 등으로 정신이 없어 불편한 속내를 애써 감추고 있지만 언제 다시 갈등 기류가 표면으로 드러날지 예측하기 어렵다”며 심상치 않은 내부 분위기를 전했다.
강 장관과 송 총장이 ‘보신탕집 회동’의 정신을 살려 각종 쟁점 사안들을 큰 마찰이나 충돌 없이 슬기롭게 풀어나갈 수 있을 것인지에 검찰 안팎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이진기 언론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