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해자들만 곳곳에서 아우성이고 책임질 사람은 없는 분양사기사건이 또 다시 벌어졌다. 서울 강남역에 위치한 대우벨라채 오피스텔. | ||
서울 강남 한복판에서 또 하나의 희대의 분양사건이 벌어졌다. 노른자위 땅의 오피스텔 분양이라는 대대적 광고에 수많은 투자자들과 분양자들이 넣은 돈과 이 건물을 담보로 금융권으로부터 무분별하게 대출받은 돈 등 약 7백억원의 돈이 어디로인지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피해자들만 곳곳에서 아우성이고 책임질 사람은 그 어디에도 없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 강남에서 벌어지고 있는 것.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일까.
서울 강남 중심가의 강남역 사거리에 위치한 ‘대우벨라채 오피스텔’에 대한 분양광고가 처음 난 것은 지난 2001년 9월이었다. 시행사는 ‘(주)ASP홀딩스’(이하 ASP)였고, 당시 시공사는 ‘삼성중공업’이었다. 총 1백80여 세대는 1차 분양에서만 80% 이상이 분양될 정도로 성황을 이뤘다.
하지만 ASP는 1차 분양을 모두 끝냈음에도 불구하고, 이후 2중, 3중, 심지어는 4중까지 분양을 남발하면서 막대한 분양금을 챙겼다. 이로 인해 한 세대에 주인이 4명이나 있는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발생했다.
이에 앞서 ASP측은 “1억원을 투자하면 1년 만에 6천만원의 이자를 준다”며 투자자들을 대거 유치, 수십 명으로부터 약 3백억원을 모금하기도 했다.
분양 피해자들이 자체 조사를 통해 집계한 중복계약 현황을 보면 현재 확인된 것만 55세대에 이르고 있다. 하지만 아직 피해 사실을 모르고 있거나, 알고 있더라도 행여 자신에게 피해가 돌아갈까봐 쉬쉬하는 경우까지 감안하면 중복분양은 최소 70여 세대에 이를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이처럼 어이없는 중복분양은 어떻게 빚어진 걸까.
ASP측은 “당초 최초 분양 계약을 맺었던 전 대표가 분양금을 모두 갖고 잠적해버려 해약사태가 촉발하자 부득이 새 대표 체제에 의해 재분양을 했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회사측은 최초 분양자들에게 해약금을 지급하지 않은 상태에서 재분양을 남발해 결과적으로 중복 분양을 초래했다.
뿐만 아니라 해약의사를 밝히지 않은 세대에 대해서도 중복분양을 한 것으로 밝혀졌다. 피해자 안아무개씨는 “내 것하고 똑같은 호수에 똑같이 분양한 세 명의 인물이 있었다”며 취재진에게 두 개의 분양계약서를 그 증거로 보여주기도 했다.
이 오피스텔 1111호의 경우는 최초분양자가 김아무개씨였으나, 똑같은 이 세대에 이후 장아무개씨, 오아무개씨, 이아무개씨 등 세 명이 추가로 분양을 받기도 했다.
이들의 사기행각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이들은 피라미드 형식의 사기수법까지 동원했다. 일반인들을 상대로 1차분양을 모두 완료한 이들은 이후 2중 분양을 했는데 이 과정에서 S사라는 한 유령회사까지 등장하고 있다.
이 유령회사 명의로 분양된 세대만 해도 13개 세대. 이 회사는 10%의 계약금을 냈음에도 불구하고, 분양 계약서상에는 100% 완납한 것으로 기록돼 있었다.
취재 결과 이 S사는 상식적으로 납득하기 어려운 거래를 통해 자신들이 분양받은 오피스텔을 다른 사람에게 넘겼다.
예를 들면 S사는 자신들이 10%의 계약금을 내고 받은 오피스텔 분양권을 A씨에게 분양가의 70~80%를 받고 팔았고, A씨는 다시 분양가를 기준으로 60% 가격에 B씨에게 넘기고, B는 다시 C씨에게 이보다 더 싼 값으로 파는 피라미드식 매각을 했다.
결국 최종적으로 이 오피스텔을 산 C씨는 아주 싼 가격에 매입한 것으로 생각하지만, 막상 입주를 위해 시행사를 찾아가 보면 S사가 계약금 10%만 내고 여러 손을 거쳐 넘겼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ASP는 이 모든 책임을 실체도 없는 S사의 사기 행각으로 떠넘기지만, 피해자들은 이 회사 역시 ASP에 의해 만들어졌거나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주장이다. 실제 취재진이 입수한 1114호와 1205호 세대에 대한 ASP 발행의 결제 입금표에 의하면 S사가 모두 분양금을 100% 완납한 것으로 되어 있었다. 그러나 한미은행의 입금내역을 확인해보면 입금된 돈은 계약금 10%였다. 결과적으로 ASP가 S사를 통해 허위전표를 끊었거나 이면계약서를 작성했다는 책임을 면키 어려운 셈이다.
이런 사례로 피해를 본 대표적인 경우인 구아무개씨는 지난해 8월 정아무개씨로부터 처음 이 오피스텔을 소개받았다. 자신의 절친한 친구가 분양받은 것을 싸게 되판다는 얘기에 구씨는 분양가의 60%에 이 오피스텔 3개 세대를 매입했다.
그러나 얼마 뒤 현장을 방문해본 결과 그는 깜짝 놀랐다. 이미 그 3개 세대는 다른 사람에 의해 분양이 되어 있는 상태였다.
구씨는 회사측에 이를 강력하게 항의했다. 그러자 회사측에서 실수라고 해명하면서 똑같은 조건의 다른 3개 세대를 주겠다고 했다. 그렇게 해서 지난 10월 다른 3개 세대를 분양받았다. 하지만 이 역시도 모두 2중, 3중 분양된 상태였다.
▲ 대우벨라채 분양 광고. | ||
당시 구씨에게 이 오피스텔을 소개한 정씨는 한국실업사격연맹 회장과 새천년민주당 국정자문위원 등의 직함을 갖고 있으며, 이들이 이 오피스텔 분양에 적극 가담한 것으로 확인됐다. 구씨에 의하면 정씨는 이 회사의 실소유주로 알려진 인사는 물론 현경영자들과도 밀접한 사이였다는 것.
확인 결과 이 회사의 실소유주는 양아무개 회장으로 통하고 있는 사람이었다. 양 회장은 그의 부인 김아무개씨가 ASP의 전 감사로 있었다. 양 회장의 측근으로 알려진 정씨의 경우 분양 피해자들의 고소로 현재 서초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지난 2001년 5월에 설립됐던 ASP의 최초 사장은 구아무개씨였으나 구씨는 지난 2001년 11월자로 사임했으며, 현재 이 사건과 관련해 잠적했다. 구씨에 이어 두 번째 사장을 맡은 김아무개씨 역시 똑같은 중복 사기 분양 행각을 저지르고 달아났다가 지난 8월 경찰에 검거되어 현재 강남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있다. 현재 이 회사의 사장을 맡고 있는 이아무개 대표는 지난해 3월 대표이사로 취임했다.
이 사장을 비롯한 ASP측은 모든 책임을 구씨와 김씨에게 전가한 채, “우리는 전혀 모르는 일”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이 또한 회사측의 궁색한 변명에 불과하다는 게 피해자들의 지적이다.
투자 피해자들과 일부 임원진 등은 지난 2001년 ASP 설립 당시부터 구 전 사장, 김 전 사장, 이 현 사장, 그리고 양 회장, 현 부사장인 홍아무개씨, 실장 윤아무개씨 등이 모두 절친한 사이였던 것으로 전하고 있다.
실제 이 회사의 임원인 이아무개 이사가 취재진에게 넘겨준 지난 2001년 12월 당시의 회사 동계연수 합숙훈련에는 당시 잠적중인 구씨를 제외한 나머지 인사들이 모두 함께 합숙훈련에 참가한 것으로 확인되고 있다.
ASP의 사기행각에 의해 현재 드러난 피해액만 해도 7백억원대에 이르는 것으로 드러났다. 투자자들로부터 거둬들인 금액만 3백억원에 이르고 있으며, 여기에 분양 등으로 받은 금액이 80억원이 넘는 것으로 파악됐다. 또한 회사측이 한미은행으로부터 대출받은 2백억원과 전일금고로부터 대출받은 53억원 등을 포함한 금융권 대출액도 3백억원이 넘고 있다.
더욱 의아스러운 것은 피해자들은 넘쳐나는데, 책임질 사람은 현재 아무도 없다는 것. 특히 피해자들과 일부 임원들은 수백억원대의 돈이 용처가 불분명하게 사라진 것에 대해 의심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윤창렬씨의 굿모닝시티 사태와 흡사하다는 주장이 제기되기도 한다. 사기행각 시기가 지난 2001~2002년 사이에 집중된 것도 주목할 부분. 이 사건을 제보한 ASP의 이아무개 이사는 “양 회장 및 그의 측근들로부터 회사의 얼굴마담으로 삼기 위해 고위공직자 출신인 이아무개 사장을 영입했다는 얘기를 자랑삼아 늘어놓는 것을 여러 번 들었다”며 “실제 이 사장이 대우건설의 고위층과 절친했던 탓에 대우건설을 시공사로 계약할 수 있었다는 등의 루머가 나돌았다”고 전했다. 일각에서는 “이 사장은 말 그대로 월급 사장에 불과하다”는 얘기도 전하고 있다.
이에 대해 이 사장은 “나도 한미은행 2백억원 대출 보증 때문에 난처한 입장이다. 솔직히 자세한 내용은 잘 모르고 있다”며 곤혹스러워 했다.
이 사장은 국회 의사국장, 국회 법제예산실장 등을 거쳐 국회 건설교통위원회 수석전문위원을 지냈다. 그러다 지난해 3월 이 회사의 대표이사로 영입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