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코배에 참석한 아이들. 바둑을 끝낸 어린이들은 부모들과 ‘알까기’ ‘신발 멀리차기’ 게임을 즐기기도 했다.
바둑판 세트와 탁자-의자를 비롯해 계시기 대진표 현수막 배너 선수이름표 등을 갖추고, 현장에서 참가접수, 상장 트로피 상품 참가기념품 준비, 진행 사회 등 아무튼 일체를 대행하며 요즘은 대회방식도 제안하고 있다. A7의 홍시범 대표(57)는 현재 일본 관서기원 프로기사로 주가를 올리고 있는 홍맑은샘 2단의 아버지. 바둑계에서는 언제부터인가 홍 대표를 ‘홍 감독’이라고 부르며 “바둑대회 진행을 도맡아 좌지우지할 정도니, 말하자면 바둑계의 ‘실세’ 중 한 사람”이라고 말한다.
홍 감독은 바둑계에 사은한다는 뜻으로 15년 전부터 ‘거리축제’를 자비로 주최했다. 1년에 두세 번, 시청 광장 같은 곳에 바둑판을 펼쳐 놓고 프로-아마 고수들과 바둑팬들의 지도다면기 잔치를 벌였다. 그게 이번 서귀포 행사로 스물일곱 번째를 맞았다. 그러다가 10년 전, 홍시범 황원순(57) 백규환(57), 세 사람이 만났다. 황원순 씨는 탄탄한 중견기업인 ‘한창전기안전관리 주식회사’의 대표. 바둑 실력도 한양대 OB기우회의 주요 멤버인 아마 고수인 데다가 마당발. 10년 전부터는 해마다 여름이면 하루 날을 잡아 서울 근교 계곡으로 바둑계 지인들을 초청해 족탁(足濯)의 여흥을 베풀고 있다. 입소문이 나면서 요즘은 친-불친에 관계없이 한국기원이나 대한바둑협회 임직원, 프로-아마기사, 바둑기자-필자, 바둑강사 등 100명 가까운 손님이 모이고, 사람들은 날이 더워지기 시작하면 올해는 ‘황스데이’가 언제냐고 묻는다. 홍 감독과도 물론 교분이 깊다.
황 대표가 친구 백규환 씨를 홍 감독에게 소개했다. 백규환 씨는 ‘주식회사 인코(건자재업)’의 대표. 황 대표는 한양대 전기과 동기동창이자, 바둑 친구인 백 대표에게 “자네도 바둑계를 좀 도우라”고 권했고 백 대표는 흔쾌히 수락했다. 백 대표와 홍 감독은 의기투합했다. 홍 대표가 아이디어를 냈다. 홍 대표는 제주도가 고향이다. 백 대표는 절친 하나가 제주도에서 활동하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뜬 가슴 아픈 사연이 있었다. 두 사람은 제주도의 바둑을 가꿔보자고 했다. 그게 10년 전이고, 그때를 기점으로 ‘거리축제’는 ‘제주도 축제’로 변신했다. 처음 두 번은 제주시에서 마당을 펼쳤는데, 바람이 너무 불어 거리에서 바둑을 두기가 힘들었다. 장소를 그래도 바람이 좀 덜 부는 서귀포로 옮겼다. ‘제주 축제’는 다시 ‘서귀포 축제’로 간판이 바뀌었다. 서귀포 해안이 약 70리란다. 그리고 서귀포의 한공민 사범(53)이 합류했다. ‘서귀포 바둑교실’ 원장이다. 제주시에는 바둑교실이 7~8곳 있지만, 서귀포에는 하나다.
서귀포 축제에는 한 원장의 제자들과 학부모들이 참가한다. 중-저급 어린이는 끼리끼리 대회를 하고, 고급 어린이들은 한 사람씩 서울에서 내려간 아마 7단급 사범들과 짝을 이루어 연기로 승부를 가렸으며, ‘바둑을 하나도 둘 줄 모르는’ 학부모들은 관중석에서 대형 바둑판을 바라보며, 바둑TV의 해설진행자로 낯익은 심우섭 7단의 입문 강의로 바둑을 배웠다.
바둑이 끝난 후에는 고급자 어린이들은 복기를 받았고 중-저급 아이들과 엄마들은 ‘알까기’와 ‘신발 멀리차기’ 게임을 즐겼다. 그리고 모두가 트로피와 상품을 받았다. 이긴 어린이는 우승, 진 어린이는 준우승…^^. 축제에 들어가는 비용은 백규환 대표가 주로 부담하고 황원순 대표, 홍시범 대표, 한공민 원장 등이 힘을 보탠다. 합하면 1000만 원이 훌쩍 넘는다.
홍 감독의 어린 시절은 불우했다. 보육원 출신이다. 네 살 땐가, 어느 날 아침 눈을 떠보니 부모님이 안 보이더란다. 그래도 공부는 잘했다. 제주제일중에서도 선두그룹이었다. 일찍 생업에 뛰어들어 삼양동 정릉 장위동을 전전하며 열심히 살았다. 업종은 편물(編物)이었다.
“30년을 어둡게 살았지요. 그래서 자식들한테는 나와는 다른 길을 걷게 하고 싶었습니다.” 아들-딸, 이름부터가 특이하다. 아들은 맑은샘, 딸은 맑은비. 둘 다 초등학교만 다니게 했다. 우리나라 같은 교육 환경에서는 초등학교 이상은 다닐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라고. “혼자 힘으로 먹고 살 길을 가르쳐 주고 싶었어요. 샘이(맑은샘)는 바둑을 배우자 금방 좋아했어요. 비(맑은비)는 그림을 좋아하더군요. 네가 하고 싶은 것, 잘 할 수 있을 것 같은 걸 하라고 했지요.”
맑은샘은 한국에서 프로가 될 실력이 충분했다. 언제나 입단 후보 1순위였다. 그러나 운이 따르지 않았다. 맑은샘은 아버지에게 일본에 건너가 보겠다고 했다. “오케이. 단, 조건이 하나 있다. 입단하지 못하면 돌아오지 말라고 했지요.” 험난한 길이었다. “샘이가 통 말을 하지 않아서 그때는 몰랐는데, 얼마 전에 비가 말해 주더라구요. 오빠가 1000엔으로 일주일을 산 적이 많았다는 겁니다.” 집념 앞에 길이 열렸다. 관서기원 프로가 되었고, 그 후 얼마 있다가 도쿄 시내에서 바둑도장을 열어 후진을 양성하고 있는데, 지금은 일본에서 명문 도장으로 손꼽히고 있다.
백 대표는 대학에 들어와서야 바둑을 배웠다. “너무 빠져서 한때는 프로기사가 될 생각도 했었습니다. 조금만 더 잘 두었더라면 그쪽으로 매달렸을 텐데…^^ 지금 생각해 보면 더 잘 두지 못한 게 다행인 것 같아요…^^” 백 대표는 후원만 할 뿐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일절 의견을 말하지 않는다. “전권을 홍 감독에게 위임했습니다. 바둑계 사정은 저보다 훨씬 잘 아실 테니까요. 후원이요? 제가 처음에 황 대표에게 약속한 게 있습니다. 회사가 망하지 않은 한 계속한다고. 제주도는 아무래도 좀 떨어져 있는 곳인데, 어린들이나 학부모님들에게 바둑을 보급하는 일이 의의가 있을 것 같구요, 아마추어 사범님들도 이삼일 잠깐 내려 오셔서 바닷바람 좀 쐬시는 것도 좋구요, 보람도 있고, 바둑을 통해 좋은 분들하고 교류하는 것도 즐겁습니다.”
백 대표의 회사는 잘 나가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백 대표는 회사 돈이 아니라 자비를 쓴다. “직원들은 회사 돈으로 후원해도 인정하겠다고 하지만, 저는 싫습니다. 그러면 왜 ‘인코배’라고 회사 이름은 가져다 쓰냐고 하기에 아, 그건 홍 감독이 그냥 붙여 준 거라고 했지요.”
백규환 황원순 홍시범, 세 갑장이 아름답다. 소리 없이 자유롭게 피는 꽃이다. 대안학교, 재능 나눔, 익명의 기부, 그런 것들은 선동으로 될 일이 아니다. 프로파간다가 아니다.
이광구 바둑전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