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년 박인근 원장이 전두환 대통령으로부터 국민훈장 동백장을 받는 모습.
1965년 아동복지시설 인가를 받아 국고로 사업을 확장한다. 75년에는 부산시와 ‘부랑인일시보호위탁계약’을 맺고 수용인원이 크게 늘어났다. 사회복지사업으로 이름을 알린 그는 81년과 84년 국민훈장을 받았다. 81년 역경을 이겨낸 인간 드라마의 주역으로 방송에 출연하기도 했다. 84년 12월에는 전국부랑인복지시설연합회 회장으로 선임됐다. 이후 형제복지원 사건이 만천하에 드러난 직후 회장으로 재선되기도 했다. 승승장구하던 80년대 초반에는 기관장급이 아니면 상대도 하지 않았을 정도로 부산에서는 위세가 대단했던 것으로 전해진다.
1987년 구속 당시에도 그의 만행은 끊이지 않았다. 간수에게 로열젤리, 현금 등의 ‘뇌물’을 주고 자유롭게 출입하며 안마시술소까지 드나들었다. 이후 일곱 번의 재판 끝에 박 씨는 1987년에 2년 6월의 형을 선고받았다. 출소 직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원생들을 언제나 사랑으로 이끌었는데도 혹사, 감금, 폭행치사 등 온갖 나쁜 죄는 다 뒤집어 쓴 것이 너무도 안타깝다”고 하소연했다.
출소 후 형제복지원은 ‘재육원’이라는 이름으로 법인명을 바꿔 운영했다. 이후 욥의 마을, 형제복지원재단으로 명칭을 변경했으며 지난 2월 사회복지법인 ‘느헤미야’를 설립했다. 또한 경남 김해에 대안학교인 신영중·고교를 1986년부터 운영해오고 있으며 현재 사위를 교장으로 두고 있다. 이밖에도 부산을 중심으로 레포츠 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최근 부산시는 ‘느헤미야’ 사회복지법인 설립허가 취소를 검토하고 있다.
서윤심 인턴기자 heart5027@gmail.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