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그래픽=장영석 기자 zzang@ilyo.co.kr | ||
최근 법원은 지하철에서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일삼아 온 한 30대 직장인 남성에게 징역 6월의 실형을 선고했다. 직접적인 신체 접촉이 비교적 덜한 지하철 성추행에 대해 법원이 실형을 선고한 것은 극히 이례적이다.
성추행 혐의로 실형을 받은 홍아무개씨(34)가 현장에서 검거된 것은 지난 8월7일 오전 11시경. 하지만 그는 이미 네 차례나 같은 혐의로 검거된 적이 있었다. 최초의 사건에서 벌금형을 받은 후 지금까지 모두 피해자와의 합의를 통해 풀려났지만 이번만큼은 빠져나가지 못했다. 당초 합의를 고려했던 피해 여성이 “상습적 성추행범은 용서할 수 없다”며 합의를 거부했기 때문이다.
홍씨의 연쇄 성추행은 지난 2001년 11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지하철 4호선의 한 역사에서 검거된 그는 당시 2백만원의 벌금형을 받고 풀려났다. 하지만 그의 ‘못된 버릇’ 은 벌금형으로 고쳐질 성질의 것이 아니었다.
그로부터 1년 뒤인 지난해 11월, 또다시 성추행혐의로 검거된 그는 피해자와의 합의를 통해 겨우 풀려났다. 그의 정신병적인 지하철 성추행 행각은 올들어 더욱 심해졌다. 올들어서만 무려 세 차례나 검거된 것. 지난 3월과 7월에도 역시 피해자와 합의해 ‘공소권 없음’과 ‘공소기각’ 판정을 받았다.
그러나 지난 8월 사건만큼은 그리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피해자인 20대 중반의 직장 여성은 “절대 합의를 하지 않겠다”고 버텼고, 이에 재판부(형사 8단독 심갑보 판사)는 실형을 선고했다.
심갑보 판사는 “가해자가 비록 반성하고 있다고는 하나 상습적으로 성추행을 일삼았고, 지하철 밀집 지역에서 항상 성충동이 일어난다고 진술했기 때문에 일정기간 격리시킬 필요가 있었다”고 말했다.
지하철수사대측에서는 홍씨의 경우 검거된 것만 다섯 차례일 뿐, 실제로는 수십 차례에 걸쳐 성추행을 해왔을 것으로 단정짓고 있다. 성추행은 피해 여성이 직접 신고를 해야 범죄성립 요건이 되는 점을 고려하면, 대개의 여성들은 불쾌한 마음에도 불구하고 신고를 꺼리는 경향이다.
경찰 관계자는 “대개 성추행범은 너무나 멀쩡한 샐러리맨이나 대학생들이 많다. 한두 차례 검거되면 더이상 그런 짓을 하지 않는다. 하지만 홍씨는 갈수록 그 정도가 더 심해짐을 알 수 있다. 정신병적인 요소가 있는 것이 아닌가 의심스럽다”고 밝혔다.
‘간 큰 남자’ 홍씨의 직업은 모회사의 영업사원. 이전에는 한 은행에서 청원경찰로 일하기도 했다. 그런 만큼 깔끔한 외모와 건장한 체격을 가지고 있다는 것. 집안에도 특별한 문제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홍씨 자신도 탁월하지는 않지만 그럭저럭 영업에 소질이 있어 회사 내에서도 어느 정도 인정받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콤플렉스는 서른네 살의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아직 결혼을 하지 못했다는 것. 평소에 성적인 욕구가 강했던 그로서는 욕구를 감당하기 쉽지 않았다고 한다. 경찰에 따르면 ‘평소에는 별로 성욕이 일지 않다가도 지하철 같은 밀집된 장소에서 많은 여자들을 보면 갑작스레 성충동이 생긴다’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마지막으로 홍씨가 검거될 당시의 피해자인 직장 여성 김아무개양(27)은 당초 가해자가 합의 의사가 있을 경우 응할 생각이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하지만 홍씨가 상습범이라는 사실을 알고는 마음을 바꿨다. 김씨는 경찰에서 “이런 사람은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 그동안 피해를 당한 수많은 여성들을 대신해서 죄값을 받도록 하겠다”며 단호한 태도를 취한 것.
그동안 이런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쉬쉬하며 홍씨를 구해주었던 가족들도 더 이상 손을 쓸 수 없었다. 가족측 역시 “이제 도저히 말로 해서는 그 버릇이 고쳐지지 않을 것 같다”며 “실형을 살더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포기했다.
홍씨의 이런 상습적인 성추행에 대해 김혜남 신경정신과 원장(한국정신분석학회 홍보이사)은 “여자들이 많은 밀집된 장소는 범인에게 일종의 자극이 되어 강한 성충동을 일으킬 수 있다고 본다”며 “전형적인 충동조절 장애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고 밝혔다.
재판 과정에서 홍씨는 자신의 ‘상습성’을 부인하며 “아주 우발적으로 저지른 일”이라고 강변하면서 재판부의 선처를 호소했으나 이미 네 차례나 동종 범죄로 검거된 전력이 있는 홍씨에게 법원은 준엄한 벌을 내렸다.
결국 홍씨는 그의 성충동을 자극하던 복잡한 지하철에서 격리되어 남자들만이 득실거리는 썰렁한 감옥에서 6개월 동안 반성의 시간을 보낼 수밖에 없게 됐다.
이남훈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