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룸살롱 경기에 민감한 명품매장들이 불황으로 울상을 짓는 반면 대여점들은 때아니 호황을 누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 특정 사실과 관련 없음. | ||
이에 따라 업계의 희비도 엇갈리고 있다. ‘밤 경기’에 민감한 대형 명품관들은 매출 부진에 울상을 짓는 반면, 명품 대여점들은 때아닌 호황을 누리고 있다. 이들은 아예 나가요걸을 대상으로 하는 전문 ‘명품 렌털회사’를 노리고 있을 정도다. 최근에는 명품 드레스만을 전문적으로 대여하는 업체까지 생겨 ‘나가요걸’들로부터 큰 호응을 얻고 있다.
서울 강남구 삼성동 A룸살롱에서 일하는 최지은양(24·가명)은 일주일에 한두 번은 명품관에 들르는 ‘명품족’. 고급 룸살롱으로 통하는 속칭 ‘텐(10%)집’에서 일하면서 “웬만한 중소기업 사장보다 벌이가 좋아 한번 눈독들인 명품은 꼭 사야 직성이 풀린다”고 한다.
하지만 이도 경기가 좋았을 적 얘기. 불황 여파로 수입이 줄면서 그는 단골로 다니던 명품관에서 중고 명품점으로 발걸음을 옮겨야 했다. 그런 그녀에게 눈이 번쩍 뜨일 만한 희소식이 날아들었다. ‘나가요걸을 대상으로 아주 싼 가격으로 명품을 대여하는 업체가 생겼다’는 얘기였다.
최양은 “며칠 전 대여점에서 샤넬 숄더백을 빌린 적이 있는데 비용도 저렴하고 물건도 괜찮았다”면서 “꼭 사고 싶은 게 생기면 일년에 한두 번 무리를 해서 살 수도 있겠지만, 업소에 나갈 때 입는 옷이나 액세서리는 앞으로도 대여점에서 빌릴 계획”이라고 밝혔다.
최양의 경우처럼 명품 대여에 관심을 쏟는‘나가요걸’이 최근 들어 부쩍 늘어나고 있다.
논현동 L룸살롱 정아무개 마담(30)은 “명품을 입어야 몸도 명품으로 인정받는 게 이 바닥 현실이다. 명품으로 세련되게 꾸며야 인기도 끌고 또 손님들이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 자신의 상품가치를 높이기 위해서 명품을 선호할 수밖에 없다. 그러다보니 명품 때문에 마이킹(선불금)이나 일수를 찍는 애들이 많았다”면서 “대여점에서 빌릴 수 있다면 그 편이 훨씬 낫다”고 설명했다.
명품 대여업체에서도 이러한 점을 간파하고, 고객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우선 저렴한 사용료를 최대 강점으로 내세우고 있다. 대여업체마다 다소 차이는 있지만 루이뷔통 가방이나 로크만 시계 등 소품이나 액세서리가 2만∼3만원, 샤넬 원피스나 알마니 투피스 등 여성용 명품 드레스가 4만∼5만원 정도다. 1회 대여료로는 만만치 않은 금액이지만 구입하려면 대부분 수백만원을 웃도는 고가품이라는 점에서 고객들이 흡족해 한다는 게 업체들의 설명이다. 장기간 대여할 경우 할인을 해주거나 장기 회원권을 이용할 경우 무료 이용 혜택을 주면서 단골 회원 확보에 나서고 있다.
다양한 브랜드의 명품을 번갈아가며 이용할 수 있다는 점도 강조하는 대목 중 하나. 명품의류를 대여하고 있는 A업체는 30여 브랜드의 드레스 1백50여 벌을 마련해 규모에서 타 업체를 압도하고 있다.
드레스별로 전문코디의 패션 조언도 들을 수 있도록 하는 등 차별화된 전략도 펼치고 있다. 액세서리류를 대여하고 있는 B업체도 조만간 대여 상품수를 늘려 선택의 폭을 넓힐 계획이다.
매번 같은 옷이나 액세서리로만 근무할 수 없는 ‘나가요걸’에게는 최적의 조건인 셈. 한 대여업체 대표는 “루이뷔통 핸드백에 샤넬 옷 한 벌만 구입해도 3백만∼4백만원은 쉽게 넘어선다. 다른 동료들보다 뒤처지기 싫어 이것저것 명품을 구입하다보면 그 비용이 엄청날 수밖에 없다. 이런 경험을 해봤거나 잘 아는 20대 중반 이후의 베테랑급 업소 여성들이 주로 대여점을 찾는다”고 귀띔했다.
대여된 상품이 흠집이 날 경우를 대비해 업체에서는 상품 가격의 30% 정도를 보증금으로 예치하도록 하고 있다. 대부분 업체들이 자그마한 흠집이 난 경우는 몇 번 있었지만 큰 ‘사고’는 아직까지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분실이나 도난을 방지하기 위해서 별도의 계약서를 작성하기도 한다.
한편, ‘업소 여성’의 경우 일반 고객과 다른 그들만의 독특한 명품 취향이 있다고 한다. 일반 명품족들이 면접, 맞선, 결혼식, 나이트클럽, 파티 등 장소나 목적에 맞는 디자인의 상품을 선택하는 반면, 이들은 새로 소개되는 명품보다는 인지도 있는 브랜드를 선호하고 장식이 화려하며 브랜드 심벌이 크고 선명하게 드러난 상품을 찾는다는 것. 짧은 시간 내에 자신을 드러내야 하는 직업이다보니 명품임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상품을 선호한다는 설명이다.
안성모 프리랜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