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4일 청소년보호위원회 이승희 위원장이 성매매 청소년 체험수기 공모 입상자에게 상장을 수여하고 있다. | ||
가출 뒤 티켓다방에 팔려 다니며 어린 나이에 윤락을 강요당했던 이정은양(가명)은 끝내 눈물을 쏟았다.
이양은 청소년보호위원회가 주최한 ‘성매매 청소년 체험수기’ 공모를 통해 자신의 끔찍했던 지난 날들을 고백했다.
이양이 “업소 직원들에게 야구방망이로 심하게 맞고 심지어 저수지로 끌려가 포클레인에 거꾸로 매달려 물속에 처박히기도 했다”는 사실을 털어놓자 그 자리에 모여있던 참석자들도 끝내 눈물바다가 돼버렸다.
지난 12월4일 성매매 청소년 체험수기 공모에서는 우수상을 받은 이양 외에도 11명의 청소년들이 가슴 아픈 사연들을 털어놓았다.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이들의 사연을 모아 <희망까지 잃을 수는 없어요>라는 책을 발간, 청소년 성매매 행위의 심각성을 알렸다.
국무총리실 산하 청소년보호위원회 이승희 위원장은 “현재 티켓다방 등 전국 유흥업소에 일하고 있는 약 3만3천여 명의 여성 청소년들 대부분이 갈수록 늘어가는 빚 때문에 탈출을 시도하기는 커녕 자포자기 상태로 몸과 마음의 상처를 입고 있다”고 지적했다.
다음은 이번 수기공모에 뽑힌 수상작 중 가장 눈길을 끈 10대 소녀 4명의 가슴아픈 사연이다.
[김정희양(가명)]
아빠가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임신한 채 여러 명의 남자와 잠자리를 가져야 했다. 입덧은 심해졌고 아무것도 먹지 못한 채 밤에는 독한 술을 들이켜야 했다. 2년여의 화류계 생활 동안 빚은 늘어나 어느새 1천5백만원. 분명히 한 달에 평균 5백만원은 벌었는데 내 수중에는 차용증만 남아있었다.
그러던 중 급성장염과 급성위경련, 골반 염증으로 3주간 입원을 했고 설상가상으로 할머니가 돌아가셨다. 이런 상황에 업주는 결근비로 하루 50만원씩을 나에게서 빼앗아갔다. 과연 인간이 맞는지 싶었다.
6개월 후 업주가 뽑아 놓은 빚은 2천4백만원이었다. 휴일없이 일을 했지만, 결근비, 지각비, 병원 입원비로 빌렸던 돈의 이자 등으로 9백만원이 늘어난 것이었다. 도망치고 싶었다. 그러나 엄두가 나질 않았다. 대부분의 업주들은 전국 폭력배와 연관이 깊었고, 도망가던 아가씨들은 어김없이 잡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소문에는 도망가다 잡힌 아가씨들을 다시 본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한다.
[조진영양(가명)]
나는 어려서부터 ‘니 어미처럼 X녀가 될 팔자’라는 말을 듣고 자랐다. 엄마는 미아리 접대부였다. 아빠가 포주에게 빚을 갚아주고 데려와 결혼했고 나를 낳았다. 하지만 엄마는 끝내 나를 버리고 다시 그 생활로 돌아갔다.
나는 열일곱 살 때부터 다방에서 일했다. 특히 두 번째 다방에서 고생을 많이 했다. 손님에게 테이블 위에서 옷을 벗지 않는다는 이유로 멍이 들 때까지 얻어맞은 적도 있고, 가슴을 만지지 못하게 했다고 칼로 찔린 적도 있다. 한 번은 5천원짜리 커피를 시켜 놓고는 세 남자가 음부에 라이터 불을 붙이기도 했다.
[최지민양(가명)]
룸살롱에 근무하던 나는 임신을 하게 됐다. 어디에도 하소연할 곳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나는 어느날 아침 산부인과 수술대에 올랐다. 그리고 그 날 오후 7시 업소로 출근을 했다. 안 나가면 결근비 30만원을 내야 했기 때문이었다. 할 수 없이 나는 술 마시고 웃고, 노래하고 그날 2차까지 나갔다….
[박지영양(가명)]
사춘기 시절의 엄마의 죽음. 그로부터 이어지는 방황. 세상이 불공평했다. 친구들과 어울리며 술과 본드를 마시며 하루를 보냈다. 흔들렸던 나는 한 달만 일할 마음으로 다방에 나갔다. 무서운 마음도 있었지만 금세 난 그 생활에 익숙해져 갔다. 손님에게 몸과 웃음을 팔며 천한 여자가 되어가고 있었다.
티켓을 끊은 손님과 일을 치른 후였다. 손님이 계속 차를 세우며 ‘가슴 만져도 되니? 너랑 자고 싶다’며 추근댔다. 순간 손님의 차와 앞에 오는 차가 충돌했다. 하늘이 노랬다. ‘이제 죽었다’고 생각했는데 천만다행으로 약간의 타박상만 입었다. 업주의 성화로 병원에 입원을 하기는 했지만 아무도 병실을 찾아오지 않았다. 나는 철저하게 혼자였다. 업주에게는 술과 웃음으로 매상만 올려주면 되는 로보트에 불과했다. 나는 그저 얼굴과 신체 사이즈, 빚이 얼마인지에 따라 1, 2, 3등급으로 분류되는 물건에 지나지 않았다.
[홍수빈양(가명)]
처음 다방에서 일한 지 두 달. 정말 힘들고 할 게 못된다는 생각에 짐을 싸고 도망가다 사장에게 붙들려 심하게 맞았다. 그 후 보름쯤 지났을 때였다. 사장은 어디선가 사채를 쓰고 그 돈을 갚을 수 없게 되자 나와 다른 아가씨들을 차에 태워 줄행랑을 쳤다. 나는 2백만원에 다른 다방으로 팔렸다. 거기에서도 빚은 계속해서 늘어났다. 결국 나는 다른 다방에서 선불금을 받고 일하기로 했다. 그 선불금을 받아 업주에 주었다. 더 이상 안되겠다싶어 업소에서 도망을 나왔다.
무작정 기차를 타고 아는 언니에게로 갔다. 그 언니의 소개로 주유소에서 일을 했다. 한 달이 지난 후 주민등록증을 발급받기 위해 다시 업소가 있던 지방으로 내려갔다. 이런 악연이 또 있을 수 있을까. 도망 나온 업소 사장과 마추친 것이다. 사장은 빚이 있으니까 절대 갈 수 없다며 붙잡았다. 할 말이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