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대기업들의 변호를 맡은 대형 로펌들이 대검 중수부(부장검사 안대희 검사장)의 향방을 좇느라 분주하다. 임준선 기자 | ||
대기업 법무팀이 그곳. 또한 이들 대기업으로부터 사건을 수임해 변호에 나선 김&장, 세종, 태평양 등 대형 로펌들도 때아닌 ‘특수’를 누리고 있다.
삼성그룹의 변호를 맡고 있는 세종은 올해 대검 중수부장, 서울지검장을 지낸 유창종 변호사와 법무부 장관, 검찰총장, 감사원장을 지낸 이종남 변호사를 초빙한 법무법인이다.
LG그룹과 현대차그룹의 대선자금 수사 변호를 맡은 김&장에는 안대희 중수부장과 사시 17회 동기인 이종왕 변호사가 포진해 있다.
이처럼 대기업들이 내로라하는 로펌들에 대선자금 수사 변호를 의뢰한 것은, 총수 소환까지 예고되고 있는 고강도 검찰의 대선자금 수사에 대기업들이 얼마만큼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지를 반증하고 있다.
꼭 전관예우 때문만은 아니겠지만, 최소한 ‘검찰 분위기 파악’이 수월하도록 대검 중수부장 등 수사 책임자급과 전화통화가 가능한 전직 고위 간부들이 포진한 로펌에 사건을 의뢰해 놓고 있는 것이다.
검찰의 대기업 비자금과 대선자금 수사 과정에서 숨가쁘게 움직였던 기업 법무팀과 대기업으로부터 사건을 수임한 로펌들의 활약상을 살펴보자.
검찰이 지난해 대선 당시 정치권에 유입된 대기업 대선자금 전모를 파악하는 데에는 적지 않은 시일이 소요됐다.
특히, 수사 초기에는 대기업들의 비협조적인 자세로 인해 적지 않은 어려움을 겪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 위쪽은 법무법인 세종 사무실 현판. 아래쪽은 김&장이 입주해 있는 빌딩 전경. 임준선 기자 | ||
대기업 가운데 가장 먼저 ‘압수수색’을 당한 것도 LG홈쇼핑이었다.
대기업 총수를 포함한 고위 임원급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가 취해진 이후, 상황은 급변했다.
기업 법무팀이 총출동한 것은 물론, 유력 법무법인에 사건을 의뢰하고 본격적으로 분위기 파악에 나선 것도 이때부터다.
검찰 수사를 받은 대기업의 한 인사는 “발등에 불이 떨어지고 나서야 움직인 꼴”이라며 “(검찰 움직임을) 미리 알고 대처했더라면 최소한 재소환은 막을 수 있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고 말했다.
한 대기업 고위 임원은 첫 번째 소환조사에서 구체적인 자금 규모와 전달방법 등을 제대로 진술하지 않아, 두 번째 소환조사를 받았던 것으로 전해진다.
두 번째 조사가 첫 번째 조사 때보다 훨씬 강도가 높았음은 물론이다.
LG의 경우에는 사건을 의뢰한 ‘김&장’의 역할이 적지 않았던 것으로 알려진다.
LG그룹 법무팀장인 김상헌 상무(사시 28회)와 권오준 LG전자 상무, 진영 LG상남언론재단 감사 등은 모두 판사 출신이다.
구본무 회장까지 출국금지되고 소환 대상자 명단에 올랐던 LG는, 법무팀과 ‘김&장’ 변호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의 결과로 일단 구본무 회장의 소환 조사는 면한 상태다.
특히, 이 과정에서 LG로부터 사건을 수임한 ‘김&장’에서 작성, 검찰에 제출한 변호인 의견서가 적지 않은 영향을 미쳤다는 후문이다.
변호인 의견서에는 ‘대기업 총수의 직접적인 검찰 소환조사가 몰고 올 기업 이미지 타격과 이에 따른 경제적 파장을 고려해 달라’는 등의 내용이 포함된 것으로 알려졌다.
자사 법무팀에 검찰 출신이 많은 삼성이 법무법인 ‘세종’에 변호를 의뢰한 것도 검찰의 LG에 대한 강도 높은 수사가 진행되던 시점 전후로 알려지고 있다.
삼성에는 남기춘 대검 중수과장과 사시 동기인 김용철 전무가 법무팀장으로 있다. 이밖에 이현동 상무와 엄대현 상무, 김영호 상무, 이기옥 상무 등도 검사 출신이다.
그러나 막강한 검사 출신 법무팀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이었지만 법무법인 ‘세종’에까지 변호를 의뢰, 가장 적극적으로 검찰 수사에 대비하는 모습이었다.
그만큼 검찰의 이번 대선자금 수사 강도가 간단치 않았음을 반증해 주고 있다.
그렇다면 대기업들로부터 사건을 수임한 법무법인은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일까.
일단 사건을 수임한 법무법인은 수사 초기에는 주로 인맥을 동원, ‘수사진의 내부 분위기를 파악’하고 수사 협조를 위한 서면작업 등을 하는 것으로 전해진다. 이 때문에 기소단계까지에는 검사 출신 변호사들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그러나 막상 기소된 이후, 법정으로 무대가 옮겨지면 판사 출신 변호사들이 역할을 맡는다고 한다.
검사들과 법리논쟁을 벌여야 하고, 법리 대결을 통해 판사로부터 유리한 판결을 이끌어내기 위해서는 검사 출신보다는 판사 출신이 더 유리하다는 것이다.
이번 대선자금 수사과정에 삼성이 ‘세종’에, LG와 현대차가 ‘김&장’에 각각 사건을 의뢰한 것도 이 같은 법조계 관행과 무관치 않다.
즉, ‘세종’에는 대검 중수부장을 지낸 유창종 변호사와 검찰총장을 지낸 이종남 변호사가 포진해 있고, ‘김&장’에는 대선자금 수사를 진두지휘하고 있는 안대희 중수부장과 사시 동기인 이종왕 변호사가 포진해 있었던 것.
검찰로부터 수사를 받아야 하는 기업 입장에서는 검찰의 ‘수사의지’ ‘강도’ ‘수사방향’ 등을 파악하는 것이 급선무. 이 때문에 이들 검찰 고위직 출신 변호사들의 역할이 클 것으로 기업들이 기대한 것이다.
대기업들은 사건을 의뢰한 로펌 등의 도움으로 비교적 발빠르게 대응, 급한 불은 어느 정도 끈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그룹 총수의 소환도 피했고, 그룹 전체 비자금 수사로 확산되는 것도 어느 정도 유보해 놓았기 때문이다.
이처럼 중대한 역할을 수행한 이들 ‘로펌’은 기업들로부터 얼마만큼의 수임료를 받고 있을까.
사건을 의뢰한 기업이나, 사건을 수임받은 법무법인 모두 공식적인 언급은 피하고 있다.
그러나 변호사업계에서는 ‘최소한 억대의 수임료가 건네지지 않았겠느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검찰의 수사 강도가 세지면 세질수록 검사 출신 변호사의 몸값은 그만큼 더 천정부지로 높아지는 셈이다.
그러나 법무법인의 경우 아무리 많은 사건을 맡았다 하더라도 변호사 개인에게 특별한 혜택이 돌아가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사건 수임 자체가 법무법인을 통해 이뤄지기 때문이다. 다만 특별히 많은 이익을 발생시킨 변호사에게는 연말 혹은 사건 종료 이후에 별도 ‘보너스’가 주어지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한다.
아무튼 변호사업계 전반적으로 찬바람이 불고 있는 가운데에서도 고위 검찰 간부 출신 변호사를 대거 확보하고 있는 대형 로펌들은 검찰의 강도 높은 대기업 대선자금 수사로 때아닌 ‘특수’를 맞아 묘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