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안희정씨 | ||
지난주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의 핵심 측근인 서정우 변호사를 전격 구속하며 기염을 토한 대검 중수부(부장 안대희 검사장)는 “이번주는 대선 당시 노무현 후보 캠프 측에 수사가 집중될 것”이라고 예고했다.
당장 중수부의 주력인 중수1과 수사팀은 11억4천만원의 불법 정치자금을 받은 혐의로 노무현 대통령의 최측근인 안희정씨(38·열린우리당 충남도지부 창당준비위원장)를 지난 14일 구속 수감한 뒤 여죄를 캐고 있다.
또 마포 서부지청에 캠프를 차린 중수3과 수사팀은 곧 출범할 특검팀 수사 대상이기도 한 썬앤문그룹 관련 의혹을 집중적으로 파헤치고 있다.
그 어느 것 하나 간단치 않은 수사 사안들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현직 대통령의 관련성 여부가 조사 대상으로 떠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들 사건의 중심에는 노 대통령의 ‘왼팔’로 불리는 안희정씨가 서 있다.
먼저 안씨는 자신의 정치적 동지로서 노 대통령의 ‘오른팔’로 통하는 이광재 전 국정상황실장이 썬앤문그룹의 문병욱 회장으로부터 받은 1억원을 넘겨받아 사용한 혐의로 소환됐으나, 다른 정치자금 수수 혐의도 줄지어 불거졌다.
검찰은 안씨가 지난해 12월 강금원 창신섬유 회장(51·구속)한테서 두 차례에 걸쳐 4억5천만원을 받아 노 대통령의 친구인 선봉술씨(57·전 장수천 대표)에게 전달한 혐의가 있다고 밝혔다.
특히 안씨는 노 대통령 후보 비서실의 정무팀장으로 일하던 지난해 11월 하순부터 대선 전까지 서울 여의도 새천년민주당사 8층 자신의 사무실에서 10여 명의 기업인들로부터 5억9천만원의 불법 대선자금을 받은 혐의도 받고 있다.
그는 삼성그룹이 계열사 대표 등 명의를 이용해 노 캠프 측에 정치자금으로 전달한 10억원 수수과정에도 일정한 구실을 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가운데 민감한 부분은 강금원 회장한테 받아 선봉술씨에게 전달한 4억5천만원의 성격이다.
문제의 돈은 대선 막바지 나라종금 로비 의혹에 이은 (주)장수천 관련 부채를 둘러싼 의혹과 관련해 한나라당의 거센 공세에 시달리던 시점에 노 후보와 함께 장수천 빚을 지고 있던 선봉술씨에게 ‘채무 변제용’으로 흘러간 것으로 조사됐다. 당시 노 후보는 장수천 실패에 따른 빚 1억원을 떠안고 있었던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 때문에 결과적으로 4억5천만원 가운데 일부가 노 대통령의 개인 빚 변제에 쓰인 것이 아닌지, 곧 노 대통령이 실수령자가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될 수 있는 것이다. 노 대통령 사전인지 여부도 논란거리가 될 공산이 크다.
안씨가 “노 후보를 물밑에서 지원해온 기업인 및 지인들한테 받았다”고 한 5억9천만원 역시 정확한 출처와 사용처가 가려지지 않아 ‘불씨’로 남아 있다.
노 대통령과 관련한 또다른 ‘뇌관’은 썬앤문그룹 감세청탁 연루 의혹이다.
이미 횡령 등 혐의로 서울지검에 구속된 김성래 전 썬앤문그룹 부회장은 최근 대검 조사과정에서 “지난해 안희정씨를 통해 문 회장의 부산상고 4년 후배인 노 대통령에게 감세청탁을 시도했었다”고 진술했다가 번복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썬앤문그룹의 감세청탁 의혹의 개요는, 서울지방국세청이 지난해 3월부터 미란다호텔과 빅토리아호텔 등을 운영하는 썬앤문그룹의 탈세 혐의에 대해 특별세무조사를 벌여 1백80억원을 부과하기로 했으나 문병욱 회장과 김성래 전 부회장 등이 정·관계를 상대로 금품로비 등을 벌인 뒤 1백억원으로 깎였다가 다시 23억원으로 줄었다는 것이다.
▲ 검찰 칼날이 노 대통령 측근들에 바짝 다가선 가운데 정가 일각에서는 사상 초유의 현직 대통령 조사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거론하고 있다. | ||
당시 문 회장 등이 접촉했던 인사들로는 손영래 전 국세청장 이외에 민주당 P의원, 한나라당 S의원 등 정치인 4~5명, 청와대 파견 경찰관 P씨 등이 거론된다.
김 전 부회장은 지난 5~6월 서울지검 조사부 수사과정에서 이들을 상대로 로비를 시도한 정황들을 구체적으로 진술했으나, 나중에 말을 뒤집은 것으로 전해졌다. 당시 검찰은 김 전 부회장 등의 진술을 토대로 감세청탁과 함께 5천만원을 받은 서울지방국세청 직원 홍아무개씨와 중간에서 뇌물수수를 중개한 세무사 박아무개씨 등을 구속기소했으나, 정·관계 고위층에 대한 수사는 이뤄지지 않았다.
이를 두고 검찰 주변에서는 “혹시 검찰이 노 대통령 관련 내용 등 정치적으로 예민한 문제가 있어 수사를 유보한 게 아니냐”는 의혹의 눈초리를 보내고 있다.
그러나 검찰은 “사건의 전모를 알고 있는 김 전 부회장 등이 자신들의 이해관계에 따라 진술을 자주 바꾸는 데다 홍씨 등 이외 인사들의 금품로비 혐의를 입증할 만한 단서가 없어 수사를 확대하지 못했다”면서 의혹을 강력히 부인했다.
이들 현안 외에도 검찰이 노 대통령의 또다른 최측근의 불법 대선자금 모금 혐의를 포착해 조만간 사법처리 수순을 밟을 것으로 전해져, 노 대통령의 ‘마음 고생’이 더해질 전망이다. 안대희 중수부장은 그동안 몇 차례 대선 당시 노무현 캠프 쪽에서 불법 선거자금에 손 댄 ‘뉴 페이스’(New face)가 등장할 것임을 예고한 바 있다. 안 검사장은 그 중 한 명이 안희정씨임을 사실상 인정한 뒤, “또다른 ‘뉴 페이스’에 대해 출국금지 조치를 한 상태”라고 밝혔다.
문제의 인물은 현재 정치인 S씨와 J씨 중 한 명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점쳐지고 있으나, 일각에서는 노 대통령의 친인척이라는 ‘설’도 돌고 있다.
그리고 이 ‘뉴 페이스’의 혐의는 노 캠프측에 지금까지 닥친 것보다도 훨씬 강한 타격을 줄 수 있는 사안이라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이처럼 노 대통령 주변 의혹들이 잇따라 불거지면서 검찰 안팎에서는 벌써부터 “수사팀이 노 대통령에 대한 조사 여부를 진지하게 고민해야 하는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관측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물론 안희정씨 등 측근들이 노 대통령을 물고 들어갈 가능성은 희박하지만, 수사 과정에서 노 대통령측으로 흘러든 정치자금의 흔적 등 구체적인 ‘물증’이 나올 경우 불과 20여 일 뒤 특검에 사건을 넘겨줘야 하는 검찰로서는 이를 묵살하기 어려울 것이라는 추론 때문이다.
하지만 검찰 내부에서는 대통령 조사 가능성에 대체로 회의적인 시각을 보이고 있다. 한 부장급 검사는 “재임중 형사소추의 대상이 되지 않는 현직 대통령을 조사하는 것이 가당한지 모르겠다”며 “대통령을 수사하는 것은 곧바로 국가적 혼란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반면,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소모적인 정국 혼란을 조기에 매듭짓는 방안으로 노 대통령이 관련 의혹들에 대한 조사를 자청하는 등 ‘정면 돌파’를 하는 게 나을 수도 있다”며 “미국의 경우 클린턴 대통령이 르윈스키와의 섹스 스캔들과 관련한 특검 수사 당시 영상 장비를 이용한 ‘화상 조사’를 받은 사례가 있다”고 지적했다.
과연 현직 대통령이 헌정 사상 처음으로 검찰의 수사선상에 오르게 될 것인지에 온 국민의 눈과 귀가 쏠리고 있다.
이진기 언론인